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가을밤 Dec 21. 2023

독일에서 목돈 쓰기 전 가격 깎는 법

느긋함을 가지고 근거 들이밀기

독일에 산다는 건 여러 방면에서 완고함과 정형적인 틀 속에서 살아가는 것과 비슷하다. 

이곳에서 무려 30년을 산 지인이 표현하길, 


"뭐 하나 하려고 하면 틀 안에 틀 안에 틀 안에 틀이 있어. 그리고 그 작은 네모 속에 갇혀서 결국은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


정확하다. 이런저런 규제와 규칙이 너무 많아서 자유의지를 앞세우기 전에 '그게 내 의사로 실현 가능한 영역인지'부터 알아봐야 하는 것들이 즐비하다. 예를 들어, 내 집 현관문 열쇠구멍 하나도 주민회의를 거치지 않으면 바꿀 수 없다.




이러한 문화를 가장 쉽게 느낄 수 있는 경우는 물건 살 때와 일을 맡길 때다. 독일에서 가격이 매겨진 모든 대상에서 할인(공식세일 말고 판매자 재량) 받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물론 가격문제는 규제/규칙과는 성격이 다르지만 '누구 소개로 왔다, 할인권이 있는데 놓고 왔다, 소개 많이 할 테니 깎아달라'는 등 인지상정에 의해 단 한 푼이라도 저렴해지는 한국의 방식이 거의 통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또다시 완고함을 경험한다. 


그렇지만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고 자영업자가 많은 곳. 할인이 없을 리가 없다. 단, 할인을 받으려면 '그들의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특히 집수리와 같이 큰 일을 맡기거나 차나 부동산 구매 등 목돈 돈을 써야 하는 일이라면 이 점은 매우 중요하다. 




집 발코니에 유리벽을 설치한다고 가정해보자.  

설치를 시작하기에 앞서, 빠르면 수개월 전 고객은 여러 회사에 Angebot(견적)을 요청한다. 견적을 주는 주체는 규모가 있는 회사 혹은 개인 자영업자일 수 있으며 같은 작업이라도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독일 집의 발코니는 대부분 사방이 뻥 뚫려있기 때문에 유리벽을 설치하는데 최소 5000-10000유로(750-1400만 원) 이상이 든다. 어떤 업체는 6000, 어떤 업체는 12000을 제안할 것이다.


이렇게 받은 견적은 대부분 unverbindliches Angebot(구속력 없는 견적)이라고 하는데, 금액 입금 전이라면 언제든 양측의 변경 여지가 있다는 뜻이다. 심지어 가격이 너무 좋아서 고객이 선입금을 해버렸어도 업체 측에서 환불해 주고 '견적을 바꾸겠다'라고 하면 할 말이 없다. 법적으로 구속력이 있는 견적서라도 서류 말미에 'freibleibend(변경가능)'이나 'ohne obligo(의무 없음)'이란 문구 하나만 넣으면 언제든 변경 가능한 견적서로 바뀐다. 


이사견적서 예시. 항목이 세분화된 견적서가 비교하기 용이하다 (출처=직접촬영)


그리고 이 견적서가 가격흥정의 출발점이 된다. 


맘에 드는 업체를 결정했는데 가격을 깎고 싶다면 먼저, 전화로 '타 업체가 더 저렴하니 다음 기회에 이용하겠다'는 말을 흘린다. 절대 조정이 안 되는 곳은 알겠다고 하고 끊겠지만 대부분은 '그 업체는 얼마냐'는 질문이 돌아올 것이다. 그러면 타 업체의 견적서를 (상호는 지우고) 보여주거나, 구두로 말해준다. 고객 한 명이라도 놓치고 싶지 않은 업체라면 하루 이틀 내로 저렴한 업체 가격에 맞춰진 새 견적서가 올 것이다. 이렇게 하루 만에 300유로 이상을 깎은 적도 있다.


그리고 견적을 받을 땐 '최대한 자세하게 쓰인' 서류를 받는 게 좋다. 즉 '유리 설치비=6000유로' 이렇게 통으로 쓰인 견적서가 아니라, 출장비/설치비/자재비/추가작업비 등으로 세분화해달라고 한다. 그러면 인건비와 출장비를 알 수 있는데, 보통 비싼 견적은 인건비와 출장비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인건비는 앞서 말한 타업체와의 비교법으로 조정하면 되고, 출장비는 구글맵을 이용하여 업체와 집의 거리를 계산하여 지나치게 높게 책정되지 않았는지 체크한다.


보통은 거리 km x 0.35센트 + 인건비(이동도 근무시간이므로) = (숫자)이며, 왕복이므로 x2 하면 된다. 업체에 따라 10km 단위로 끊어서 출장비를 책정해 놓은 곳도 있다. 




나라와 항목을 불문하고 모든 소비의 핵심은 조급해하지 않는 것, 그리고 비교이다. 따라서 아무리 급하더라도 견적 하나만 받지 말고, 최소한 3-5군데를 받아보고 가능하면 보험처리가 되는지까지도 알아본 뒤 진행하는 게 좋다. 서류와 팩트를 갖고 말하기 좋아하는 독일의 특성을 고려하여 누구 소개로 왔다, 멀리 왔으니 교통비 빼달라 등의 힘없는 말보다는 타 업체의 견적 그리고 숫자로 계산된 것을 보여주면 어렵지 않고 빠르게 할인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만약 가격할인이 영 불가하다면 하다못해 서비스라도 추가해 줄 것이다. 나는 차를 살 때 이 방법을 썼는데 차가격을 소액(약 50만 원) 할인받고 타이어 교체에 드는 20십만 원 이상의 비용을 아낄 수 있었다.



제목 사진출처: pixabay




매거진의 이전글 쉿! 조용히 하세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