쉿! 조용히 하세요!
독일집의 정숙시간
단독주택이 아닌 이상 우리는 좋든 싫든 크고 작은 이웃의 소리를 들으며 살게 된다. 아파트가 주 거주형태인 한국은 당연하고, 독일도 압도적으로 다가구 주택이 많기에 상황은 비슷하다.
다가구 주택에 사는 사람이라면 특히 소리에 있어서 말하지 않아도 서로 배려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불필요한 언쟁과 큰 싸움이 나기 십상이다. 이전에 다룬 소음으로 인한 싸움 얘기는 아래 링크에서 보실 수 있다.
https://brunch.co.kr/@nomad-lee-in-eu/33
독일어의 쉿!. 바람 빠지듯 프씃!이라고 발음한다. (출처=bahn.de)독일의 공동주택에는 정해진 시간 외에 소음을 못 내도록 'Ruhezeit(루에짜이트: 정숙시간)'이란 게 존재한다. 루에짜이트의 정의를 검색해보면 다음과 같다.
Die ganztägige Sonn- und Feiertagsruhe von 0 bis 24 Uhr gilt für alle Bundesländer (Feiertagsschutz-Verordnung, FSchVO). Die Nachtruhe gilt von 22 Uhr bis 6 oder 7 Uhr (Landesimmissionschutz-Gesetz, LImSchG). Sonnabends greift die verlängerte Ruhezeit von 22 Uhr bis Sonntag um 24 Uhr.
"일요일과 공휴일 0시부터 24시까지의 고요(정적)는 모든 연방주에 적용된다 (휴일보호-조례에 의거). 밤 시간 정숙은 22시부터 다음날 6시 혹은 7시까지다. 토요일은 더 길어진 정숙시간으로 22시부터 일요일 24시까지이다."
즉, 정숙시간은 나와 타인의 휴식을 법적으로 보장하기 위해서 생겨났으며, 이 시간에는 실내공간에서 어떤 형태로든 타인에게 방해되는 소음을 내서는 안된다. 단, 아이들이 건물 근처나 놀이터에서 뛰어노는 소리는 제외된다.
아파트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보통은 평일 오후 10시~ 익일 오전 7시, 오후 1시~3시, 일요일과 공휴일은 24시간 정숙시간이다. 본인이 사는 곳의 정확한 정숙시간을 알고 싶다면 집계약서 혹은 아파트 입구 게시판의 알림란을 보면 된다. 보통은 집계약서의 <Hausordnung(주택규칙)> 문단에 적혀있다.
만약 계약서에 조항이 없다면 앞서 명시된 시간을 암묵적으로 따른다고 생각하면 된다. 따라서 악기연주와 같이 소음이 불가피한 활동을 해야 한다면 정숙시간을 피하거나, 미리 이웃/집주인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정숙시간 외에 헤비메탈 락을 틀거나 악기를 몇 시간 동안 연주하거나 드릴질을 마구잡이로 해도 된다는 뜻이 아니다. 정기적, 규칙적으로 내야 하는 소음은 시간대를 불문하고 적어도 구두상으로라도 미리 양해를 구하는 게 원칙이자 예의이다.
루에짜이트(정숙시간)를 어기는 예시는 다음과 같다.
오전 6시에 세탁기로 빨래를 돌린다.
오후 10시가 넘어 티브이를 크게 틀고 본다.
오후 11시에 파티를 한다.
일요일 오후 2시에 벽에 드릴질을 한다.
공휴일 오전 10시에 가구조립을 위해 소음이 심한 공구를 사용한다.
오해하지 말아야 할 부분은, 정숙시간에 이러한 활동자체를 하지 말라는 게 아니라 이러한 활동을 하면 소음이 발생해서 이웃에게 피해를 줄 가능성이 높으니 자제하라는 의미이다. 만약 소음이 발생하지 않고 피해받는 이웃이 없다면 자기 집안에서 얼마든지 해도 된다.
정숙시간에 피해를 줄 정도의 소음은 공식적으로 처벌 대상이다.
즉 이웃이 경찰을 부르거나 데시벨을 측정하여 관청에 제출하는 행위 등이 정당한 대응으로 간주된다. 일반적으로 대화가 통하는 사람이라면 경찰까지 왔다면 눈치를 보고 알아서 조용히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경찰이든 경찰 할아버지가 오든 아랑곳하지 않는다. 이 경우 수고스럽더라도 소음시간, 종류, 데시벨, 지속시간 등을 적은 프로토콜을 만들어 최대한 상세히 기록하고 증거를 모아 관청에 신고하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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