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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을밤 Oct 18. 2023

굴러들어온 돌과 박힌 돌의 충돌

이웃과의 싸움

굴러들어 온 돌과 박힌 돌이 부딪혔다.

우리는 굴러들어 온 돌, 이웃은 박힌 돌이다. 이 사건이 터지기 전까지 겪은 소소한 텃세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전 글 참고).


사건의 발단은 2022년 9월 경, 윗집에서 나는 소음이었다. 

우리 위층은 분명 언뜻 봐도 70대 후반인 할머니 한 분이 사시는데 소음이 날 리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며칠 내내, 그것도 하루종일 아이들이 뛰고 어른이 발망치로 걷는(발꿈치소리)게 들렸다. 참다못해 얘기하려고 했으나 시간이 늦어(저녁 10시) 벨을 누르진 않고 쪽지를 써서 우편함에 넣어두었다 (문 앞에 붙여놓으면 다른 이웃이 본다고 난리를 쳤던 과거 경험 때문에 일부러 우편함에 넣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아 결국 올라가서 벨을 누르니, 할머니는 갑자기 가슴을 부여잡으며 '그 쪽지 때문에 정말 당신에게 실망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무엇에 그리 실망인고 하니, '직접 말하면 될 걸 쪽지로 썼다는 거'다. 여기서부터 논쟁은 이미 논점을 벗어나고 있었다. 그 집은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손녀와 증손자들(3, 5세)이 일주일에 몇 번이고 와있기에 소음이 심했던 것이다. 아무튼 소음얘기를 해야 하는데 쪽지얘기라니. 그래서 다음번에 원하는 대로 직접 가서 얘기했고, 그래도 이웃인지라 잘 지내보고자 우리는 김밥이랑 과자도 선물했다. 


그러나 소음은 도통 나아지지 않았다. 아무리 애들 뛰는 거 못 막는다 해도 독일주택에는 Ruhezeit(소음금지시간)이 존재하고, 온종일 고통받고 있는 이웃이 있는데 미안하다고 양해를 구하는 게 내 기준에서의 상식이었다. 한국에서 평생 아파트 생활을 했는데 생활소음과 큰 소음 구분도 못 할까.


11월, 그날은 정말 참을 수 없었다. 

헤드셋을 끼고 음악을 크게 틀어도 울리는 벽의 진동은 막을 수 없었다. 무엇보다 나는 큰 음악을 안 좋아하기 때문에 헤드셋을 끼고 생활하는 것도 고역이었다. 아이들만의 잘못이 아니었다. 누구도 아이들을 제지시키지 않거니와, 그 엄마라는 손녀의 발꿈치 소리는 우리 집 식탁까지 울려 전해졌다. 오전부터 시작된 소음이 저녁 8시가 넘어도 나아지질 않자 나는 '조용히 해달라'는 단 한 마디를 하러 올라갔다. 남편이 출장 가서 혼자인 날이었다. 


윗집 할머니는 문만 빼꼼히 열어주고 내 얼굴을 보더니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집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내가 말을 시작하기도 전, 손녀가 현관문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와서 나에게 삿대질을 하기 시작했다. "당신 때문에 내 맘대로 할머니 집도 못 드나들게 생겼다, 우리 할머니 많이 못 보고 돌아가시면 니가 책임질 거냐. 우리 애들은 조용하다. 이렇게 조용한 애들이 어디 있다고 지금 그런 소리를 하는 거냐." 


사나운 개의 견주가 '우리 개는 안 물어요'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나는 쏟아지는 폭격에 낮은 목소리로 답했다. "아이얘기만 하는 게 아니에요. 어른들 걷는 소리가 만만치 않다고요. 실내에서는 실내화 좀 신어달라고 얘기하려고 온 겁니다." 


그러자 생전 처음 본 할머니가 튀어나와 손녀를 거들었다. "당신이 시끄럽다고 한 그 여자야? 그럴 거면 왜 이사 왔어요? 저 옆 건물 꼭대기층 집 비었던데, 거기로 이사 가버려. 아주 별 꼴을 다 보네." 곧바로 손녀가 바통을 이어받았다. "이전에 살던 할아버지는 그런 말이 없던데, 당신 이사 오고 시끄럽다고 하네. 우리 할머니 여기 산지 10 년도 넘었는데 처음이야!"


당연히 처음이겠지. 이전 할아버지께서 12년을 사셨으니. 그리고 나는 할아버지가 아니잖나. 귀가 안 좋으실 수도 있고, 나보다 덜 예민하실 수도 있고, 사람마다 소음을 견디는 정도는 다르다. 무엇보다 이웃 본인이 힘들다고 하는데 사과는커녕 점점 주객이 전도되어 가는 느낌이 들었다. 분명 내가 피해자인데 가해자가 되는 분위기로 변해갔다.


열이 받을 대로 받은 손녀(가해자)는 우리 집주인에게 말해서 나를 그 집에서 쫓아내겠다고 했다. 나는 도대체 내가 왜 그런 소리를 들어야 하는지 모르겠고, 알겠으니 그냥 변호사를 고용하겠다고 했다. 그 말에 또 열받아서 손녀는 내 면전에 어디 한 번 해보라며 소리를 질렀다. 소리가 커지자 옆 집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빼꼼히 문을 열고 보시더니 경찰 불러줄 거냐고 물었다. 물론 나 말고 손녀한테. 


나는 도저히 이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다. 두 달이 넘도록 고통받고 귀에 진물 나도록 헤드셋 끼고 살다가 직접 말하래서 하러 온 건데, 사과는커녕 왜 언어폭력을 들어야 하는 거지? 아무리 봐도 그들은 그냥 내가 맘에 안 드는 것 같았다. 어디서 갑자기 듣도 보도 못한 나라의 아시아인이 와서 감히 시끄럽다고 하는가. 딱 그런 태도였다. 어느새 5명의 화난 독일인들이 내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다. 말 그대로 5:1이었다. 


내가 독일인이었어도 이랬을까?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나는 '내가 외국인이라 지금 이렇게 하시는 거냐'라고 했다. 그게 아니면 설명이 안 됐으니까. 그랬더니 손녀는 자기를 나치라고 했다며 나를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했다. 나는 나치의 N자도 꺼내지 않았는데, 도둑이 제 발 저린 격이었다. 


무서웠다. 독일에 오래 살면서 싸워본 적은 있지만 이렇게 1대 다수로 코너에 몰린 적은 없었다. 분노가 섞인 울음이 터질 것 같았지만 내가 피해자인 판에 울기까지 하면, 더 우습게 볼 것 같았다. 나는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누르며 그만해라, 조용히 해달라는 한 마디가 이렇게 어렵냐는 말을 남기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 현관문을 닫자마자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살면서 그토록 분노에 떨었던 적이 없던 것 같다. 눈앞에 보이는 책상을 내리쳤고, 팔목과 손에 멍이 들었다. 나는 곧장 집주인에게 전화를 걸어 이 상식밖의 상황과 내가 당한 부당한 처사를 정리해달라고 했다. 동네가 작은지라 집 주인과 건물 주민들 모두 알고 지내는 사이였기 때문이다.  


(다음 글에 계속)  



제목 사진출처: Photo by Afif Ramdhasuma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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