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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을밤 Dec 27. 2023

외국에서 피부로 느끼는 한국어의 위상

일본어 아니면 중국어

독일 페이스북에는 스팸이나 피싱을 예방하는 회원 약 8만 명의 꽤 큰 그룹이 있다. 최근 부쩍 피싱전화나 메일이 자주 와서 예방차원에서 가입을 해두었는데, 얼마 전 한 게시물이 눈에 띄었다.  


게시물의 내용은 아래 사진과 같은 피싱광고(분실 수하물을 2유로에 판매한다는 프랑크푸르트 공항 계정의 게시물 - 당연히 가짜다)의 진위여부를 묻는 것이었다. 게시물에 한글이 있는 것으로 보아 글쓴이가 한국인이거나 글쓴이의 핸드폰 언어설정이 한국어로 되어있는 것 같았다. 익명으로 작성되어 작성자의 신상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스크롤을 내리자 수 십 개의 댓글 중 유독 몇 개가 눈에 띄었다. 



(왼쪽 댓글)

이거 다 중국으로 배송된 거네 아니면 왜 저기 중국어가 쓰여있지
(+비웃는 어조의 이모티콘)


(오른쪽 댓글)

중국어? 2유로라니 네버. 경찰과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알려요!



그들 눈에는 중국어와 한국어가 구분이 안 되고, 핸드폰 설정에 따라 바뀌는 부분이라는 걸 모른 채 일단 중국어처럼 생긴 게 쓰여있으니 당연히 피싱/스캠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게시물 내용 자체는 나랑 상관없었지만 한국어와 중국어를 전혀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들, 그리고 중국어로 되어있는 건 무조건 걸러야 할 대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즐비한 현실에 한숨이 나왔다. 독일에 거주하며 중국인 배우자를 둔 한국인으로서 이런 상황을 마주할 때면 참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아무리 K로 시작하는 한국문화가 세계적으로 유명하고 심지어 독일 스타벅스에 온종일 케이팝이 나오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독일 및 유럽인들은 한국과 중국이 같은 언어를 쓴다고 생각한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냥 관심 자체가 없다. 


'동아시아'에 한/중/일이 있다는 건 알지만, 언어는 일본어와 중국어가 전부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중국어의 위상이 높다는 뜻이 아니라, 한국의 고유언어가 따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모른다. 직접 알려줘야 그제야 '아 그렇구나'라는 사람들이 태반이다. 얼마 전 직장동료에게도 말해줬더니 전혀 몰랐다며 굉장히 신기해했다. 중국어는 좋은 의미의 유명세보다는 '오명세'라는 말이 더 맞을 것 같다. 그냥 뭐든 중국어로 쓰여있기만 하면 다 거짓이고 속임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 또한 참 안타까운 일이다. 


타문화를 존중하는 마음이 깔려있고, 적어도 아시아에 일말의 관심이 있는 사람들 정도만이 한국어/중국어/일본어를 구분한다. 한국 미디어에서는 마치 대다수의 유럽인들이 한국문화에 환장한 것처럼 보이지만 솔직히 몇몇 대도시, 20대 미만의 어린이와 청소년들, 그리고 일부러 찾아서 보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별로 관심이 없다. 예를 들어 김밥을 내밀면 10명 중 7명은 스시라 하고, 2명은 초콜릿을 입힌 디저트냐 묻고, 겨우 1명 정도가 김밥이라고 한다. 한국 방송 프로그램 중 외국인 친구들을 한국으로 초대해서 함께 여행하는 유명 프로그램도 100% 리얼이 아니다.


그나마 약 13년 전과 비교해서 피부로 느낄 정도로 변한 점은 적어도 나한테 '태국/베트남에서 왔냐'라고 묻는 사람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내 외모가 태국사람 같아서가 아니라, 당시엔 동남아와 한중일을 전혀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이 정말 많았다. '어딜 봐서 그렇게 판단했냐'고 물으면 그냥 아는 아시아 나라들을 전부 나열해봤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아무튼 다시 언어 이야기로 돌아오면 한국어의 독창성 그리고 중국어와의 차이점은 일부러라도 적극적으로 알릴 필요가 있다. 만약 독자님께서 해외여행과 문화비교에 흥미가 있는 외국인을 만난다면 은근슬쩍 언어 이야기를 꺼내서 정확히 구분 지어주자. 한중일의 언어는 명확히 다르다고. 


적어도 '피싱의 나라'라는 오명은 벗어야 하지 않은가. 



제목 사진출처: unsplash

본문 사진출처: 온라인 스크린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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