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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을밤 Feb 23. 2024

독일치과의 섬세함

무엇에 섬세한지 잘 보아야 한다

치아는 오복 중 하나라고 하는데, 안타깝게도 나는 치아 복은 타고나지 않았는지 어릴 적 치과 신세를 많이 졌다. 다행히 성인이 되고부터는 매년 2회씩 꼬박꼬박 치과에 간 덕에 충치치료 빈도가 현저히 줄었다. 한국에서도 독일에서도 꾸준히 정기검진을 다니는 병원 중 치과가 나의 1순위다. 


그러다 몇 년 전, 독일에서 큰 치과치료를 받아야 할 일이 생겼다. 정기검진차 간 병원에서 어금니 하나를 가리키며 치료를 서두르길 권했다. 독일에서 매년 PZR(Professionelle Zahn Reinigung: 전문 스케일링, 가격은 보통 100-150유로이며 공보험으로 커버되지 않는다)을 받았던 것 이외에 처음 제대로 된 치료를 권유받은지라 큰 고민하지 않고 진행하기로 했다. 치아는 미룰수록 목돈지출이 되기 때문이었다. 




사실 독일 치과는 한국인들 사이에서 암암리에 '피하면 좋은 진료과' 혹은 '병원이 아주 중요한 진료과'에 속한다. 대체적으로 한국 치과보다 손이 무디고 충치치료 시 치아 삭제량이 많기에, 대충 괜찮다고 들은 아무 병원이나 갔다가 덤터기는 기본이고 살릴 수 있는 치아까지 죽인 사례를 적지 않게 보았다. 그래서 독일인들도 아무 치과나 가지 않고 십 년 이상 다닌 치과나 몇 대에 걸쳐 운영하는 병원을 수소문하여 가는 편이다. 


물론 한국도 이러한 '사'자 냄새나는 치과들이 많지만 독일도 마찬가지이기에 대충 이미지만으로 '독일은 정확하니까 치과도 잘할 거야' 혹은 '친절하니까 잘해줄 거야'라는 주관으로 병원을 선택하면 안 된다는 말이다. 특히 구글 평점이 칭찬 일색이거나, 처음 상담만 받았는데 대놓고 평점을 요구하는 병원은 뒤도 돌아보지 말고 피하자. 


독일치과 내부 모습. 대부분 진료실 하나에 환자 한 명씩 들어간다. (출처=unsplash)


이는 치아와 돈을 모두 잃어본 나의 경험에서 하는 말이다. 당시 치과 권유로 치료를 시작한 그 어금니는 일반 충치치료 마무리 이후 (200유로 지출) 정확히 일주일 만에 뿌리에 염증이 생겨 잠도 못 자고 다시 병원으로 달려가야 했다. 그러자 치과는 신경치료를 해야 한다며 나에게 500유로짜리 치료를 권했고, 실제 치료 후 영수증에 찍힌 금액은 700유로였다. 이어서 크라운을 해야 하므로 세라믹과 금 중 선택하라고 했으며 나는 금을 선택했다. 그리고 정확히 2주 뒤, 병원에서 만들어 온 크라운은 금이 아닌 '세라믹'이었다. 


독일병원은 치과를 포함, 추가비용이 발생하는 진료에 대한 견적을 주고-> 환자가 비용을 컨펌하면 진행된다. 물론 진료 중 부득이하게 비용이 변하는 경우도 있기에 신경치료 금액이 좀 오른 건 뭐라고 하지 않았다. 그러나 약속과 완전히 다른 크라운을 만들어온 건 엄연히 환자기만이자 약속 위반이었다. 게다가 의사는 세라믹 재료에 대한 장황한 설명을 덧붙이며 금보다 가격이 200유로가량 비싸다고 했다(이 또한 말이 안 된다). 나는 화를 내며 치료를 거부하고자 했으나, 타 병원으로 옮기면 신경치료부터 다시 해야 하고 + 출국을 앞두고 있었고 + 한 달이 넘게 식사를 제대로 못했기에 빨리 결정해야만 했다. 게다가 의사는 "세라믹이 금보다 치아 삭제량이 적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늘어놓았다. 물성이 무른 금이 치아 삭제량이 적다는 건 초등학생도 이해할 텐데 이 의사라는 사람은 완전히 반대 소리를 했다. 나는 한국의 단골치과 및 여러 의사들에게 조언을 구했고, 단 한 명도 빠짐없이 "세라믹 크라운의 치아 삭제량이 금 크라운보다 많다"는 답변을 받았다. 


이를 독일 치과에 전달하자, 의사는 "누가 그런 소리를 하냐"라고 역정을 냈다. 물증은 없지만 심증으로 그는 이미 처음부터 금이 아니라 세라믹으로 할 작정이었고 그에 맞춰 치아 삭제를 엄청 해 둔 것이다. 이미 죄다 파고 갈아놓은 치아에 세라믹을 들이밀면 안 하고 버틸 환자가 있을까. 처음부터 다 계획된 것이었다. 


그렇게 내 어금니 하나에 들어간 비용은 초기 충치치료 200유로, 신경치료 700유로, 세라믹 크라운 900유로로 약 250만 원이었다. 공보험 커버 제외, 순수하게 내 주머니에서만 나간 금액이다. 말도 안 되는 진료 과정과 커뮤니케이션 그리고 생활비에 타격을 입는 지출을 경험한 이후, 나는 독일 치과의사를 Arzt(의사)가 아닌 'Techniker(기술자)'라 부른다. 환자 건강을 빌미로 돈을 노리는 사람들은 의사칭호를 들을 자격이 없다. 


가장 소름 돋는 건, 사실 그 치아는 치과에 가기 전까지 통증조차 없던 멀쩡한 치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치과가 아주 섬세하게 다루는 부분은 '영수증 발급'이다. 영수증에는 크고 작은 모든 치료 항목이 소상히 나열되어 있는데, 일단 의사 손이 왔다 갔다 하면 다 돈이라고 보면 된다. 솜으로 잇몸을 한 번 두드리는 - 소독하는 것까지 전부 돈으로 계산되어 있다. 항목은 GOZ(Gebührenordnung für Zahnärzte: 치과의사 요금표)에 따라 나열되며 병원에 따라 항목 개수와 가격이 다르므로 같은 치료라고 해도 병원마다 수 십에서 수 백유로의 금액 차이가 난다. 영수증이 워낙 세부적이고 길어서 일반 환자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데다, 가격 조정을 요청하면 대부분 거절한다. 


그러므로 독일에서 치과진료를 받아야 한다면 다음의 절차를 추천한다. 

1. 최소 3군데 이상 견적을 받는다.

2. 금액을 알기 전까지 진료를 진행하지 않는다.

3. 신경치료+크라운을 해야 한다면 최소 1000유로(140만 원) 이상 목돈을 준비한다.

4. 치과 추가보험이 있다면 얼마까지 보장되는지 확인 후 진료를 결정한다.(10-20일 소요)


정말 솔직한 의견으로는 나의 치아역사를 소상히 알고 정직하게 치료할 수 있는 의사를 찾기 전까지 독일치과에서 스케일링 외 어떠한 치료도 권하고 싶지 않다. 치아를 지키고 싶다면 말이다.



제목 사진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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