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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을밤 Mar 01. 2024

안 아픈데 왜 검사를 합니까?

독일 유학시절 장건강이 좋지 않아 내과 및 가정의를 여러 군데 찾았던 적이 있다. 내 목적은 어떤 극적인 치료나 약물 처방보다 '대장내시경 처방'을 받는 것이었다. 신경성 외에 다른 문제가 있는지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처음 갔던 가정의학과(Hausarzt)에서 '건강검진'을 받고 싶다고 했다. 그랬더니 공보험으로 가능한 건강검진을 진행해 주겠다며 시력, 몸무게, 키를 재고 피를 뽑고 침대에 눕혀 팔다리 관절에 이상이 없는지 육안으로 확인해주었다. 관절이 안 움직일 정도였으면 병원에 스스로 못 왔겠지 이사람들아! 


이어서 소변검사와 대변검사까지 가능하다고 했으나 이미 내 의도를 벗어난 것 같아 이쯤 하기로 했다. 


그리고 들른 내과(Gastroenterologie)에서는 아무 이상이 없어 보인다고 했다. 나는 의사에게 대장내시경을 받아보고 싶다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그랬더니 의사는 "지금 아랫배에 통증이 있냐, 많이 아프냐"라고 물었고, 내가 아니라고 하자 "그럼 내시경을 해줄 수 없고, 할 필요도 없다"라고 하였다. 오히려 내과에 오기 전 산부인과부터 가보는 게 어떻겠냐고 친절한 조언까지 해주었다. "산부인과와 내과 질환을 헷갈릴 정도였으면 이미 알아서 가지 않았겠냐, 이건 명백한 대장 쪽 문제다"라고 하니 그래도 해줄 수 없다며 거절당했다.


이어지는 다른 가정의와 내과에서 모두 대장내시경을 거절당한 나는 결국 독일에서 내시경을 할 수 없었다. 




이처럼 독일은 '예방 차원의 검사'에 매우 보수적이다. 

환자가 스스로 원하고 사비를 들여서 하고 싶다고 해도 Überweisung(처방전)을 써주지 않는 곳이 대부분이다. 일단 '통증이 없는데 몸 내부를 들여다본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든다는 뜻이다. 


나에게 대장내시경을 거부한 의사들 모두 하나같이 "50세 이상이라면 모를까, 그 이하 나이대에서는 필요 없다"라고 하였다. 물론 내시경(Spiegelung)이라는 게 장기에 스트레스를 줄 수 있기 때문에 추천하지 않는 것을 이해한다. 그러나 이미 다른 방법을 다 써보고 증상이 개선되지 않으니 내시경을 요구하는 것인데, 단순히 지금 통증이 없으니 하지 말라고만 하니 참 답답할 노릇이었다. 


10년이 넘도록 어깨 만성 통증을 달고 살다가 병원을 가니 저주파 마사지기 석 달 처방해 줬던 독일 정형외과가 떠올랐다. 저주파 마사지기로 해결될 거였으면 진작 열 대도 넘게 샀겠죠 선생님.




통증 없는 증상 치료에 매우 인색한 독일이기에, 앞서 언급했듯 무료로 제공되는 건강검진도 유치원 소꿉놀이처럼 아주 간단하다. 한국처럼 머리끝에서 발 끝까지 호텔식 대접받으며 검진하는 시스템 자체가 없다. 


아프지도 않은 몸을 쑤시는 과한 검진도 좋지 않지만, 1년 혹은 2-3년에 한 번 정도는 예방 차원에서 필요할법한데 독일에선 그저 꿈만 같은 얘기다. 그래서 병을 키울 대로 키워서 '나 지금 당장 이만큼 아프다'라고 의사 눈앞에 들이밀기 전까지는 적극적인 치료를 시작하기가 쉽지 않다.


이러한 사례가 쌓이다보니 이젠 웬만한 통증은 진통제로 해결하는 매우 프로페셔널한(?) 방법도 터득했다. 어차피 의사한테 가봐야 진통제 준다는 걸 잘 아니까.


독일 사시는 분들, 집에 진통제는 미리미리 충분히 쟁여두자.



제목 사진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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