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너무나 익숙해져버린 독일.
태어나지도 살아보지도 않은 남의 나라 땅을 처음 밟을 땐 너무나 어색해서 공기마저 무겁게 느껴졌는데, 흘러가는 시간에 묻혀 살다 보니 어느새 아무렇지 않게 보고 받아들이게 된 부분들이 참 많은 것 같다.
오랜만에 독일 초심자 혹은 여행자의 시각으로 돌아가서 우리와 다른 그들의 모습을 적어보고자 한다. 친구와 나누는 여행 이야기 정도로 가볍게 읽어주시길 바란다.
-공공장소-
#코 풀기
지하철, 학교 강의실, 식당 등의 공공장소에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시원하게 코를 푸는 모습은 한국인들에게 다소 거부감이 드는 문화중 하나지만, 여기선 오히려 코를 풀지 않는 걸 비위생적으로 여긴다. 적응하면 어느새 가방에 Taschentücher(휴대용 화장지) 하나씩 넣고 다니며 자유롭게 코 푸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데오드란트
얼마 전, 비행기 옆자리에 아름다운 독일 여성분이 탔다. 좌석에 앉자마자 손 소독을 하고 향수를 뿌리더니 그다음 바로 데오드란트를 꺼내 티셔츠 안으로 넣어 겨드랑이에 슥슥 바르는 게 아닌가. 한두 번은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바로 다음날 횡단보도에서 신호등을 기다리며 데오를 바르는 독일인을 보았다. 공공장소에서의 데오드란트 사용은 독일 내에서도 보기 싫은 행동으로 여겨질 때가 많다. 하지만 그렇게 하는 사람과 빈도수가 많으니 이젠 그냥 문화려니 하고 발견하면 대충 눈을 다른 곳으로 돌린다.
#외투 벗기
특히 겨울에 눈에 띄는 점인데, 독일인들은 실내에 들어가면 반드시 외투를 벗는다. 물건의 용도를 꽤 잘 지키는 그들은 외투 역시 '밖에서만 입는 옷'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식당이나 카페, 병원에 가면 곧바로 외투를 벗고 입구 앞에 있는 옷걸이나 의자에 걸어두고 착석한다. 여전히 추운데 왜 옷을 벗는지 이해가 안 갔지만 이렇게 하다 보니 옷을 오랫동안 깨끗이 입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행정처리-
#알 수 없는 공과금 사용량
독일의 공과금은 사용량에 따라 나온다. 아니, 나오지 않는다. 무슨 괴상한 말이냐 하시겠지만, 가스/전기/온수 불문 각 가정의 실제 사용량은 1년에 단 한 번 정산된다. 매달 나오는 금액은 정액제 형태로 고정금액일 뿐, 해가 넘어가야 지난해의 실제 사용량과 그에 해당하는 금액을 알 수 있다. 이런 이유로 독일에 살았는데 공과금 폭탄을 맞았다느니 하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미리 낸 금액보다 더 사용했다면 Nachzahlung(후지불)을 하게 된다.
#발을 묶는 각종 계약
독일의 많은 계약 시스템들은 짧으면 6개월, 길면 2년 간 소비자의 발을 묶어버린다. 핸드폰은 기본 1년, 전기도 1년, 인터넷은 2년 등 계약이 끝나기 전엔 해지와 변경이 매우 어렵다. 이사를 가도 새 집에 같은 인터넷 공급자가 들어오면 해지사유가 안 된다. 중간 해지를 하려면 독일을 떠난다거나 법적 효력이 있는 이유를 제출해야 한다. 이러한 불편함 때문에 가격이 비싼데도 불구하고 1개월 단위로 해지가 가능한 계약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느려터진 시스템
약 13년 전에 비해 정말 많이 빨라졌지만, 한국인의 시각에서 독일은 여전히 느리다. 연말정산은 온라인으로 해도 결과를 받기까지 2-3개월이 걸리고, 은행 계좌를 여는 건 기본 열흘이다. 취업과 이직도 지원일부터 입사까지 약 3-6개월을 잡아야 한다. 느리고 또 느려서 답답하지만 그 덕분에 누군가 나를 재촉하는 일도 드물다. 충분히 생각하고 고려할 시간이 필요한 상황에선 때론 고마운 문화다.
#병적인 개인정보 보호
국민 모두 보이스피싱 경계레벨 1이상 장착한 우리나라와 달리, 독일에선 여전히 누가 봐도 뻔한 수준 낮은(?) 피싱이 성행하고 있다. 피싱방지를 위해 개인정보를 보호해야 된다는 것엔 이견이 없지만 지나친 보호는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 개인정보가 나간다며 신용카드나 포인트카드를 전혀 안 쓰는 것에서부터, 차에 블랙박스 설치도 싫어하고, 심지어 아파트에 도둑이 들어도 CCTV설치를 반대한다. 집이 털리는 것보다 '어딘가에 내가 찍히는 것'이 더 싫은 사람들. 본인이 어딜 가는지 뭘 입었는지 아무도 관심 없는데도 병적으로 그것을 보호하려는 문화가 강하다.
무엇이든 양면성이 있겠지만 우리나라에 빗대보면 독일은 '정반대'라고 할 만한 것들이 많기 때문에, 한국분들에게 독일의 여러 부분은 '불호' 혹은 '답답함'으로 느껴지기 쉽다. 처음에 불호였던 것들이 시간이 흐르며 호로 바뀌기도 하지만 불호->이해불가로 바뀌는 부분도 있는 것 같다.
결론은, 무엇이 어떻든 어쩌겠는가. 어디가 됐든 현재 발 붙이고 사는 나라의 문화를 따르며 단점을 최대한 보안하며 살아가는 수밖에.
제목 사진출처: 직접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