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기사에도 종종 인용되는 독일의 잡지(신문)에는 대표적으로 <Der Spiegel 데어 슈피겔>, <Frankfurter Allgemeine Zeitung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짜이퉁> 그리고 <Bild 빌트>가 있다. 이 중에서 <빌트> 지는 가벼운 가십거리부터 독일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기사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평소 같았으면 지나쳤을 빌트 지의 한 기사제목이 유독 내 시선을 끌었다.
"기젤라는 석 달 전부터 건물 5층에 갇혀 있었다"
그리고 '기젤라'로 보이는 할머니가 건물 비상구 계단에서 보행보조기에 의지하고 있는 사진.
기사 내용은 이러했다.
기젤라 마초브스키는 아파트 엘리베이터가 고장 난 탓에 5월 15일부터 건물 5층에 갇혀 있었다. 보행보조기에 거동을 의지하는 이 은퇴자(기젤라)는 5층에 사는데, 계단사용이 불편한 탓에 거의 집 밖을 나오지 않는다. "나는 계단을 혼자 오르내리지 못한다. 불편하고 매번 다른 도움이 필요하다. 다른 사람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지만, 다른 방법이 없다." 스스로는 거동이 어려워 그녀는 평소 요양사나 지인들에게 장보기를 부탁한다.
아파트 관리회사는 거주민 다수인 노년층 거주자들에게 부담을 줄 수 있는 상황임에도 엘리베이터를 수리할 의지가 없어 보였다. 과거 농구스타였던 기젤라의 아들 세바스티안과 여동생 울리케는 이미 여러 번 관리회사에 연락을 취했지만, 관리회사는 매번 명확한 답변을 하지 않고 요리조리 빠져나갔다. 심지어 빌트 지의 연락에도 답변하지 않은 채 문제는 여전히 그대로다. 아파트 건물 소유주인 룩셈부르크의 기업 또한 연락할 수 없었다. 웹 사이트도, 전화번호도, 이메일 주소도 없었다.
참으로 빌트지다운 기사구성에, 참으로 독일다운 사건이다.
기사 사진만 보면 마치 기젤라 할머니가 아파트 비상계단에 석 달 동안 갇혀있던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 자극적인 사진을 쓰는 빌트지의 전형이다. 하지만 사진만 빼면 사건은 '독일 그 자체'다.
Keine Antwort, keine Rückmeldung, keine Kommentare, keine Reaktion.
답변 없음, 피드백 없음, 코멘트 없음, 반응 없음.
독일에 살다 보면 무엇이든 느려서 속 터지는 것보다 '반응이 없어서' 속 터질 때가 더 많다. 한 2주 정도는 긴가민가 해서 기다리지만 그 뒤에도 답이 없는 이유는 셋 중 하나다.
1. 잊어버렸거나
2. 다른 사람한테 넘기고 휴가를 갔거나 (+대체 근무자는 무슨 일인지 모름)
3. 일부러 답변을 안 하거나
특히 위 기사처럼 관리 회사에 뭘 고쳐달라는 요청은 '답 없음'의 단골 소재다. 나 역시 얼마 전 환풍기에 문제가 있어서 관리회사에 연락하니 "우리 소관이 아니다"며 빛의 속도로 시공사에 책임을 넘겼다.
시공사에 문의하자 약 일주일 만에 답변이 왔다.
"문제가 니 책임인지 우리 책임인지 알 수 없으니 니가 제대로 관리하고 있다는 증거 사진을 보내라. 만약 관리 문제인데 우리가 방문하면 300유로(45만 원) 출장비를 청구할 것이다."
나는 관리를 제대로 했다는 증거 사진과 함께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니 확인해달라고 했다.
그리고 3주째 아무런 답변이 없다.
독일을 십 수년 겪은 나의 경험피셜로 이 무응답의 뜻은 아래와 같다.
"니가 관리를 못해서 발생한 문제인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네. 결국 환풍기 문제인데, 그럼 우리 책임이잖아? 환풍기 하나 때문에 인건비 아깝고 귀찮으니까 그것 때문에 못 살 거 아니면 그냥 참아."
장담컨대 이 상황에서 고쳐달라고 계속 쪼지 않으면 그들은 절대 먼저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독일에서는 '규칙적으로 쪼기'가 생활 필수장착 아이템이다.
첫 2-3주는 인내, 그 뒤부터는 매주 혹은 격주로 열심히 쪼아주어야 한다. 큰소리치고 떼쓰는 방식 말고(그렇게 하고 싶더라도 참자) 계약내용에 근거해서 요모조모 따지며 쪼아야 한다. 그들이 움직일 때까지.
그래도 안 움직인다면 포기하거나, 법의 힘을 빌려 움직이게 하는 수밖에 없다.
제목 사진출처: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