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 살면서 나는 총 세 번 현지 신문에 실렸다.
한 번은 교환학생 시절 도시 행사 무대에 참여 및 인터뷰를 했던 게 지역신문에 실렸고, 한 번은 프랑크푸르트 대학신문에 내 글이 기고되었으며, 마지막 한 번은 아우토반에서 겪은 4중 추돌 교통사고의 피해자로 신분은 특정되지 않았지만 재산피해가 큰 사건으로 기록됐다.
대중 앞에 서고 유명해지는 것에 욕심내는 성격은 아니지만 어쩌다 보니 한국이라면 경험하지 못했을 특별한 경험을 한 것 같다. 농담으로 남편에게 "이제 티브이 나갈 차례인가?"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남편과 독일 퀴즈쇼 프로그램을 보다가 '저기 나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독일에 사는 일반인 참가자 100명이 모여서 하는 퀴즈쇼로, 지식보다 센스나 순발력이 중요한 문제 위주였다. 독일 국적자여야만 하는 조건도 없었다.
고민은 깊고 짧게, 행동은 빠르게 하는 신조에 따라 나는 그 자리에서 바로 참가 신청서를 보냈다. 어차피 이 넓은 독일 땅에 내 얼굴 아는 사람 몇 없으니 창피할 것도 없지 뭐. 그리고 며칠을 잊어버리고 지낸 어느 날,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혹시 ㅇㅇ 프로그램 참가 신청서 내셨나요?"
그렇다. 참가 신청을 한 퀴즈쇼 방송국의 캐스팅 담당자였다. 여태 독일에서 들어보지 못한 하이텐션의 독일인 목소리에 갑자기 기가 빨리는 느낌이었다. 담당자는 내가 신청한 프로그램은 대기자가 너무 많아 어려울 것 같다며 비슷한 다른 퀴즈쇼 참가를 제안했다. 검색해보니 내가 신청한 쇼와 포맷은 비슷하지만 모든 참가자가 보드게임판 같은 무대에 서서 진행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한 번도 안 본 프로그램에, 그것도 얼굴 내놓는 티브이에 덜컥 나간다고 할 수 없었기에 고민할 시간을 벌고자 참가 컨디션에 대해 물어봤다. 맘먹는 건 둘째치고 일단 물리적으로 가능해야 했기 때문이다. 프로그램 진행은 약 일주일 간 이루어지며 쾰른 소재 스튜디오에서 진행한다고 한다. 상금 제외 소정의 참가비는 교통비 명목으로 제공하지만 숙박비, 식비 그리고 개인 휴가일정에 대해서는 관여하지 않는다고 했다.
여기까지 듣자, 나는 마음먹을 것도 없이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연간 일정이 잡혀있는 상황에서 갑자기 일주일 내리 휴가를 내기도 어렵고, 거의 천 유로에 달하는 호텔값을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일에 사용하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이건 '내가 원래 나가려던' 프로그램도 아니지 않나.
그러자 담당자는 '30대 여성'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조건에 부합하니 반드시 참여해 달라고 다시 한번 나를 회유했다. 동기 부족이었는지, 막상 나가려니 덜컥 겁이 났는지, 돈이나 휴가가 문제였는지 정확히 말할 수는 없지만 끝내 거절했다.
나는 여태 인생에서 1%라도 남한테 등 떠밀려 한 일에서는 대부분 만족감을 느끼지 못했다. 나 아닌 타인의 의견이 섞인 일이기 때문이다. 반면, 설령 어떤 일을 50%의 확신만으로 추진한다 해도 오롯이 나 스스로 결정한 일이라면 과정과 결과에 전혀 후회가 없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스스로' 출연하고자 하는 결심으로 시작했지만 '남의 의견'에 따라 결정하고 싶진 않았다.
언젠가 다시 마음이 동하는 계기가 생기고 상황이 허락한다면, 다시 기회가 오겠지.
아니면 뭐, 나와 인연이 아닌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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