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십 년 전부터 지금까지 해외에 나오는 사람이라면 적어도 어디선가 한 번은 이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한국인이 제일 무섭다. 한국인 조심해라."
나도 독일에 처음 발을 디딜 때부터 지금까지도 종종 듣는 말이다. 그러나 강산이 변하는 세월을 해외에서 보내며 이 말에 대한 나의 생각은 조금 달라졌다. 그리고 말도 시대에 따라 변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말의 의도는 간단하다. '언어가 통하고 아는 사람일수록 타인을 속이기 쉬우니 조심하라'는 뜻이다. 이는 맞는 말이기도, 틀린 말이기도 하다. 이제 막 해외를 가는 사람들에겐 현지에 장기거주하고 있는 한국인이 경계 대상이라지만, 장기거주하고 있는 한국인의 입장에선 여기 온 지 얼마 안 된 한국인도 똑같은 경계 대상인 건 마찬가지다. 오래 살았다고 영웅이 악당 되고, 짧게 살았다고 악당이 영웅 되지 않는다.
정리하면, 언제 어디서 누가 어떻게 왔든 처음 만나는 사람은 서로 조심해야 한다. 이는 국적을 달리 해도 마찬가지다. 한국인을 경계한다면 독일인도, 러시아인도, 터키인도 똑같이 경계해야 한다.
유독 '한국인'을 콕 집어 조심하라고 하는 이유는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같은 나라에서 왔다는 이유로 쉽게 심리적 경계를 풀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외로운 해외생활에 같은 나라 출신의 사람을 만나면 나도 모르게 마치 고향에 온 것 같은 안정적인 느낌을 받는다. 그래서 더 빨리 나를 드러내고, 상대방에게 인간적으로 기대하는 심리가 생긴다. 하지만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다.
독일, 미국, 일본 등 세계 어디서 한국인을 만나더라도 한국에서 한국인을 만난 것처럼 대하면 상처받을 일이 훨씬 줄어든다. 한국에서 한국인 한 명 알았다고 그 사람에게 곧바로 심리적으로 의지하거나 그사람을 위해 희생하는 일은 거의 없지 않은가. 한국이었다면 '그저 스쳐 지나가는 인연이려니' 하는 경우가 더 많을 텐데, 해외라는 배경 때문에 상대방이 믿을만한지 검증도 하기 전에 필요 이상으로 의지하고 마음을 주고 상처받는 일이 생기는 것이다.
게다가 해외에 있는 한국인은 풀이 작다. 비단 한국에서도 나랑 마음 맞는 사람 하나 찾기가 어려운데 그보다 한국인 수가 훨씬 적은 해외에서 나랑 맞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따라서 한국인을 무조건 경계하고 조심할 필요는 없지만, 일정 부분 기대를 내려놓고 무덤덤하게 대할 필요는 있다.
반대로 독일인을 사귀겠다고 유독 독일인들에게만 잘해줄 필요도 없다. 한국에 한국인들이 가장 많은 것처럼 독일엔 독일인들이 가장 많고 그만큼 신뢰할 수 없는 독일인의 수도 많을 것이다. 한국에서 한국인을 대하는 방식으로 독일에선 독일인을 대하면 된다. 그저 오버하지 않고 무덤덤하게.
그러다 정말 믿을 수 있고 마음을 줘도 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 때, 한국인이든 독일인이든 관계를 발전시켜도 늦지 않다. 따라서 '한국인을 조심하라'는 말은 "국적불문 처음 만나는 사람은 조심하라"고 수정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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