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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을밤 Oct 14. 2024

노잼이어도 좋아할 수밖에

독일에 관심 있거나 독일에 살아보신 분이라면 이곳이 생각보다 느리고, 재미없고, 답답한 곳이라는 걸 어느 정도 아실 거다. 그러한 분위기에 어울리게 독일의 쇼핑몰(특히 인터넷 쇼핑몰)도 상당히 재미가 없다. 옷의 경우 아시아인과 완전히 체형이 다른 모델의 착샷 3-4장이 전부이고, 물건의 경우 텍스트로 쓰인 정보만 보고 사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한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비의 즐거움'은 반감되고, 눈이 아니라 머리로 판단하는 나름 현명한(?) 소비를 한다.


쇼핑이 재미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독일 인터넷 쇼핑몰에서 주문하는 것을 굉장히 좋아하고 주저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소비자의 권리'가 확실히, 그리고 명시한 그대로 보장되기 때문이다.




특히 환불을 해보면 보장범위를 확실히 알 수 있는데 이 부분에서 독일은 상당히 관대하다.


# 반송기간 및 반송비

독일 민법 소비자보호법에서 규정한 반송기간은 14일이지만 실제로는 14일이 가장 짧고 30일, 90일, 길게는 100일까지 보장해 주는 업체가 많다. 몇 업체는 아예 대놓고 "물건을 충분히 사용해보고 구매를 결정하라"는 문구를 기재해두고 있다. 또한 제품 하자로 반품하는 게 아니더라도 반송비는 전액 무료다. 택배사 역시 업체가 계약 맺은 업체 중 소비자가 접근하기 쉬운 업체를 고를 수 있다(판매자에 따라 다름).


# 반송/환불 이유

반송하기 전 소비자는 반송이유를 선택해야 하는데 이 부분이 재미있다. 기본적으로 생각하기 쉬운 - 사이즈 미스, 잘못된 물건, 물건 하자 있음 - 뿐 아니라, 다음과 같은 이유도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제품이 마음에 안 듦, 가격이 비쌈, 배송이 느림, 더 싼 제품을 찾음, 제품이 묘사와 다름, 이유 없음"


굉장히 주관적일 수 있는 '마음에 안 듦'이나 '이유 없음'도 반송 사유가 되는 것이다. 그럼 이 경우엔 소비자가 왕복 배송비를 부담해야 하나? 아니다. 철회 기간 내라면 이유불문 반송비(왕복 배송비) 전액 무료다.


(왼) 맘에 안들어서 반품했던 신발. 반품비 전액 무료 / (오) 다양한 반품 사유들


이토록 자유로운 환불이 가능한 이유는 독일에서 법적으로 <14일 철회규정>을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비자로서 구매하는 물건 및 계약은 14일 내엔 '어떠한 이유도 불문하고' 철회할 수 있다 (약, 식품, 위생과 직결되는 물건은 예외 규정 있음).


핸드폰 2년 약정계약을 했는데 더 좋은 요금제를 찾았다면 14일 내에 취소할 수 있고, 보험을 들었지만 불필요한 것 같다면 14일 내에 취소하면 된다. 인터넷 계약도, 헬스장 계약도, 전기 계약도 모두 마찬가지다. 단, 월세 계약이나 근로 계약은 양방이 서명하는 즉시 취소할 수 없으니 주의해야 한다.




뭐든 동전의 양면 같은 법, 독일 환불 및 철회에도 단점은 있다.


먼저, 교환을 해주는 곳이 거의 없다. 단순히 색상, 혹은 사이즈만 교환하고 싶어도 받은 물건을 환불하고 재주문해야 한다. 이 기간에 물건의 재고가 떨어지거나 가격이 변동될 수 있다. 즉, 건 바이 건으로 주문 당 1건의 반송만 처리 가능하지 그 이상의 복잡한 절차는 불가능한 곳이 많다.


둘째, 환불이 느리다. 반송한 물건이 판매자에게 도착하기까지 약 3-5일, 그리고 검수 및 환불에만 영업일 기준 14일이 걸린다. 업체에서 결제 취소를 바로 해줘도 독일 은행 계좌송금이 1-2일 걸리기 때문에(주말이 끼면 올 스톱) 더 늦어진다. 그래서 물건을 제대로 써보지도 못하고 돈도 못 받는 기간이 약 20일 정도 될 수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영수증 지불'을 선택하면 된다. 물건을 받은 후 돈을 내는 방식인데, 환불할 물건은 결제하지 않고 바로 돌려보내면 된다.


셋째, 택배와 우편사고가 잦다. 한국에선 거의 없는 경우인데, 택배나 계약 철회 편지가 중간에서 종종 분실된다. 물건 또는 편지를 보낸 소비자는 발을 동동 구르고 판매자는 못 받았다고 하니 곤란한 상황이 발생한다. 이럴 때는 물건의 경우 택배사 클레임을 작성하여 판매자에게 보내면 환불받을 수 있다. 그보다 계약철회가 훨씬 더 중요하다. 잘못했다간 억울하게 1년 혹은 2년 치 요금을 내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편지로 철회서나 해지서를 보낼 땐 항상 추적이 되는 등기(Einschreiben)로 보내고 미리 스캔을 해 두어야 한다. 실제로 내 편지가 중간에 분실되어 스캔본으로 정상 해지한 적이 있다.




이처럼 장점도 단점도 뚜렷한 독일이지만 소비자의 권리 하나는 확실히 보장되니, 설령 상세 페이지가 부실하고 불친절하더라도 마음 놓고 쇼핑할 수 있는 환경이라 생각한다.


제목 및 본문 사진출처: 직접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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