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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을밤 Oct 18. 2023

독일은 보증금이 저렴해요 그렇지만

독일 월세집의 보증금

...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다는 말은 안 했어요. 




독일의 월세제도에서 보증금은 찬 월세(난방, 부대비용을 제외한 월세)의 3달 치다. 월세가 1000유로라면 보증금은 3000유로, 월세가 500유로라면 보증금은 1500유로로 한국에 비하면 상당히 저렴하다. 그래서 한국에 관심 있는 독일인들은 도대체 한국 학생들이 어떻게 500만 원, 1000만 원 상당의 큰 액수의 보증금을 낼 수 있냐고 묻는다. 


나는 이 질문에 되묻고 싶다.


너희는 보증금을 그렇게 적게 받으면서 도대체 왜 제대로 안 돌려주는건가?

처음에 많이 받아가도 한국은 웬만하면 다 돌려주지만, 독일은 돌려받기가 쉽지 않다. 




Kaution(카우찌온)이라고 부르는 월세 보증금은 일반적으로 월세가 시작하기 한 달 전, 늦어도 이사 2주 전까지 집주인이나 관리사에게 지불한다. 집주인은 보증금을 받았다는 확인 문자를 주거나, 서면으로 영수증을 써준다. 특히 현금으로 줬을 경우 반드시 영수증을 받아둬야 한다. 보증금 입금이 안되면 집 열쇠를 안 주기 때문에 계약서를 쓰더라도 보증금이 안 들어오면 계약이 파기될 수 있다. 


이렇게 보증금을 낼 때는 칼같이 받아가는데, 돌려줄 때는 천차만별이라 문제가 자주 발생한다. 


# 돌려받을 수 있는 전제조건

보증금을 다 돌려받으려면 전제조건이 있다. '집을 이사 전과 같은 상태로 깨끗이 돌려놓을 것'. 독일은 기존 세입자가 집 청소를 하는 게 원칙이기 때문에, 이사 나가는 날 혹은 열쇠를 돌려주는 날까지 집을 깔끔히 치우고, 집주인이 확인을 한 뒤 보증금을 돌려준다. 그런데 유독 이때 없던 물욕이 발동하고 갑자기 시력이 좋아지는 집주인들이 있다. 바닥의 작은 흠집, 언제 묻은지도 모르는 벽의 얼룩까지 세입자에게 책임을 묻고 보증금으로 수리를 한다. 그래서 독일에서 월세집을 들어갈 땐 반드시 이삿날 당일에 집의 구석구석을 사진으로 찍어두어야 한다. 잘못하면 그 집의 묵은 문제들을 내 돈으로 해결해줘야 할 수도 있다. 단, 살면서 임의로 벽에 색을 입혔거나 관리미숙으로 곰팡이가 핀 부분은 세입자에게 책임이 있다.


만약 내가 하지도 않은 훼손을 집주인이 내 보증금으로 해결하려고 한다면 법적 분쟁이 필요하다. 따라서 세입자는 해당 도시의 Mieterverein(세입자협회)에 가입하여 도움을 받는 게 좋다. 가입 후 유예기간이 있으니 보험처럼 미리 들어놓는다고 생각해야 한다. 


이사오기 전부터 있던 바닥 흠집. 기존 훼손은 모두 모아 프로토콜이나 메일로 남겨놓아야 분쟁이 줄어든다.



# 돌려주는 시기는 천차만별

문제가 없어서 보증금을 돌려주겠다고 했어도 곧바로 돈을 주는 집은 10에 2 정도다. 나는 9번을 이사하며 '딱 한 번' 이사 나가는 당일 현금으로 보증금을 돌려받아 봤다. 그 외에는 최장 2년 반(30개월) 뒤에 받은 적도 있다. 보증금을 '즉시' 반환해야 한다는 법적 의무가 없으며, 일반적인 계약서에는 대부분 3-6개월로 명시하고 있다. 혹시 수리할 게 있으면 하고, 정산까지 마쳐야 하기 때문에 충분한 시간을 두는 것으로 보인다. Wohnungsgenossenschaft(주택협동조합)에 소속된 집이라면 조합 규칙에 따라 반환기한이 2년이 넘어갈 수도 있으니 계약서 사인 전 'Kaution' 항목을 빠짐없이 읽어야 한다. 일부 관리사의 경우 Nachzahlung(초과 난방비 등)을 핑계로 세입자의 월세를 임의로 1년 이상 잡아두었다가 다음 해 공과금 정산 후 일부 제외하고 돌려주는 곳도 있다. 


샤워부스 바닥 타일에 석회자국이 있다며 청소명목으로 보증금에서 100유로를 차감했다. 


나도 여전히 분쟁 중인 보증금이 있다. 2600유로를 내서 겨우 1000유로만 돌려받았다. 관리사에서 내 동의도 없이 600유로는 초과 공과금 납부로 썼고, 1000유로는 다음 해 공과금용으로 잡아두었다. 동의 없이 개인의 돈을 이런 식으로 유용(流用)하는 건 납득할 수 없다고 몇 번을 말해도, '일반적인 처리'라며 일 년째 함구 중이다. 



제목, 본문 사진: 엘라 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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