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토리니는 관광지답게 뷰 맛집, 친절 맛집, 음식이 좋은 맛집 등 다양한 맛집이 즐비하다. 비수기에 방문한 우리는 아쉽게도 다른 사람들이 추천하는 맛집은 가지 못했지만, 손품을 팔다 운 좋게 걸린 구글이 추천하는 맛집을 가게 되었다.
무려 평점 4.9점의 식당이다! 보통 4.3 이상이면 거의 실패가 없는데 4.9라니 이건 마치 전 과목에서 1개 틀린 우등생을 만난 기분이었다.
평점이 조작이라고 느껴지지 않을 만큼 음식도 실제로 맛있었고, 직원들도 친절한 데다 와인까지 서비스로 나와서 우리는 보석 같은 맛집을 발견한 기분이었다.
그리고 숙소로 돌아와서 평점을 자세히 눌러보니 식당 방문 전에 못 봤던 한국 손님들의 평이 많았다. '이미 한국분들 사이에서 유명한 곳이구나' 싶었는데 리뷰 속에서 특정 단어가 반복되는 것을 보았다.
맛은 있는데, 너무 짜요.
하긴, 사실 내가 시켰던 리소토도 꽤 짭짤했다.
독일도 음식이 워낙 짜기에 이미 우리에겐 익숙한 맛이지만, 한국음식만 먹다 오신 분들께는 많이 짠 음식임에 분명하다. 이렇게 유럽의 음식이 짠 이유는 뭘까?
소금을 귀하고 고급재료로 여겼던 역사적 이유와 강한 맛을 좋아하는 유럽인들의 특징도 한 몫하지만, 시간이 많이 흐른 현재까지도 이렇게 짠맛을 선호하는 데엔 물이 크게 영향을 미쳤을 거라 생각한다. 많은 분들이 아시듯 독일을 비롯하여 유럽의 물은 전반적으로 석회질이 섞여있는 경수(hard water)다. 산을 타고 흐르는 불투명한 흰색 물, 물을 끓이면 냄비에 허옇게 가루가 남는 것 모두 이 석회질 때문이다.
게다가 산토리니는 화산암 지형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경도가 더 높고 음용하기에 적합하지 않을 수 있다. 물론 그냥 마셔도 탈은 없겠으나, 상쾌하고 깔끔한 맛이 없다. 따라서 이러한 물 맛을 보완하기 위해 음식에 소금을 다량 사용하다 보니 음식이 전반적으로 매우 짜진 것이다.
십 년이 넘도록 독일의 석회수를 사용해 오며 가장 많은 변화를 느끼는 건, 첫째로 머릿결이다.
한국에선 이틀만 감아도 마치 클리닉 받은 것처럼 머릿결이 부드러워지는데 반대로 독일에선 한 번만 감아도 머리카락이 수세미 진화단계에 들어간다. 머릿결만 희생하면 그나마 다행이지 머리도 굉장히 많이 빠진다. 탈모의 가장 큰 원인은 스트레스라는데, 독일에선 여기에 더하여 석회수가 탈모를 촉진시켜준다.
두 번째 변화는 피부다.
예전에 어떤 광고에서 머릿결도 피부라고 하던데, 그래서인지 머릿결처럼 피부도 같이 나빠진다. 샤워 후 촉촉해야 할 피부가 퍼석하고 바디로션 없이는 금세 당기는 느낌이 든다. 참고로 한국에서 나는 건성과는 거리가 먼 중성/지성에 가까운 피부였다. 민감한 건 그대로 유지되면서 건조함만 추가되니 여기서 피부건강 지키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세 번째는 마시고, 요리하는 물이다.
여기서 나고 자란 서양인들이야 우리와 체질적으로 다르니 석회수를 평생 마셔도 문제가 없지만, 수도의 질이 좋기로 손꼽히는 우리나라 물을 먹던 사람이라면 그냥 마시는 건 영 찝찝하다. 흐린 눈 하고 그냥 요리를 해도 주전자며 팬이며 여기저기 석회가 끼기 때문에 주방도구 역시 금방 망가진다. 그래서 나는 요리하는 물은 브리타에 한 번 거르고, 마시는 물은 100% 사 먹는다. 사실 마트에서 파는 물도 석회가 아예 없는 게 아니지만 수소문 끝에 '그나마 적다는' 브랜드의 물을 사 먹고 있다.
매일 먹고 마시고 씻는 물인데 이토록 다르고 신경 쓰지 않으면 몸을 망가뜨리니, 다시 한번 한국의 일상생활 퀄리티가 얼마나 좋았는지 새삼 느끼는 지점이다.
제목 사진출처: 직접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