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라는 시가 있다. 어떤 사람이든 장점이 있고 예쁜 구석이 있다는 말이다. 이 시를 사람이 아닌 다른 대상에 투영하면 어떨까. 독일 생활을 예로 들어보자. 독일은 유럽에서 한인이 가장 많이 사는 나라라 그런지 미국이나 일본 못지않게 다양한 평가가 올라오는 곳이다. 내가 본 사례가 전부라고 절대 단정할 수 없지만, 일반적인 시각으로 파악한 결과 "독일은 오래 그리고 자세히 볼수록 안 예쁘다".
첫인상이 좋았지만 알면 알수록 깨는 사람이 있듯 독일 역시 이주를 준비하는 분들이나 거주 5년 이하, 혹은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분들은 대체적으로 좋은 평가를 하신다. 빵이 맛있어요 평생 빵만 먹고 살래요, 사람들이 친절해요, 날씨도 견딜만 해요(비오는거 운치있어요), 좀 기다리면 어때요, 여유있어서 좋아요, 여행다니기 좋아요, 자연이 많아요 등등.
하지만 그 이상 7년, 10년, 20년, 30년, 40년 사신 분들을 만나보면 완전히 다른 답을 들을 수 있다. 한식 가내수공업 달인이 됐어요, 사람들과 가까워지기가 어려워요, 대외적 이미지만 너무 좋은 나라에요 속은 썩어가요, 중산층 허리가 휘어요, 돈모으기 정말 어려워요, 계층 사다리가 무너졌어요, 해가 없어서 우울증과 매년 사투를 벌여요, 관료주의와 느린 행정이 미칠 것 같아요, 사과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진절머리가 나요, 인종차별이 도처에 있어요 등. 나 역시 과거엔 위 그룹에 속했지만, 10년을 훌쩍 넘긴 현재 이 평가에 동의하는 사람이 되었다.
사람은 조금 친해지다 안맞으면 멀어질 수 있지만, 나라는 아니다. 내가 매일 눈뜨고 밥먹고 돈벌어야하는 일상의 터전 그 자체다. 따라서 오래 살면 살수록, 그 사회에 깊이 통합될수록 더 많이, 더 정확하게 알 수밖에 없다. 얼마 전에도 독일거주 30년을 넘긴 교민분께서 "이제 그만 내 고향으로 돌아가 쉬고싶다"는 글을 보았다. 길지 않은 글에서 그분이 얼마나 고군분투하고 열심히 독일생활을 하셨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일생을 서양 국가에서 살다 독일에 왔다면 난이도가 떨어질 수 있으나, 한국살던 사람으로 독일은 결코 만만한 나라가 아니다. 차나 축구 등으로 많이 알려져서 그렇지, 이민 난이도가 꽤 높은 나라다. 많은 이민자 수가 외국인 환영도를 나타내지 않는다. 내가 느낀 독일은 오히려 그 반대다. 국민들의 정서나 의도와 다르게 강제로 문을 개방하였기에 이민자에 대한 반감이 짙게 깔려있지만 역사 교육 등으로 인해 그것을 표출하는게 사회 전반적으로 강제로 눌려있다. 이에 대한 부작용으로 '일반적인 애국심'을 표출하는 것도 마치 죄의식처럼 여겨져, 독일 국기를 다는 것에 반감을 가지고 징병제에도 강하게 반대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가장 쉽고 빠르게 독일생활의 난이도를 체감할 수 있는 부분은 '생활의 편의성'이 한국과 비교도 안되게 떨어질 때다. 병원, 택배, 외식, 쇼핑, 행정, 서비스, 공과금, 속도 등 일상의 거의 모든 부분에서 한국에 비해 퀄리티와 속도가 심각하게 떨어진다. 독일 생활이 길어지는 분들은 여기서부터 불평을 나타내기 시작한다. 문제는 이 불평이 독일을 떠나기 전까지는 절대 개선될 수 없다는 점이다. 여기 사는 이상, 죽기 직전까지 병원 가기 어려운 것도 감수해야 하고, 오진이 심심치 않게 발생하는 것도 감안해야 하고, 택배가 옆동네로 가거나 안와도 감수해야하며, 패스트 푸드 이상의 외식은 열 번 고민하고 먹어야 하고, 기본 6주 이상 걸리는 행정도 감수해야 한다. 직원이 동전을 던지는 등 불친절한 서비스를 시전하거나, 특정 국가 출신들이 길에서 눈 찢고 칭챙총 해도 그러려니 해야하며, 엄청난 세금으로 허리가 휘어도 감수해야 한다. 그게 독일이니까. 직장에서 부지런한 아시아인이라고 일감을 몰아주고 유리천장을 대놓고 들이밀어도 감수해야 한다. 그게 독일이니까.
아파트에 사는 한 80대 노인이 작년 가을에 고장난 엘리베이터 수리를 여태까지 기다리고 있다는 기사를 봤다. 수리기사도, 답장도 오지 않는다고 한다. 나는 전혀 놀라지 않았다. 그게 독일이니까. 답답하면 나만 속 터지고 힘들지 상대방은 신경쓰지 않는다. 피해에 대해 미안해하거나 적극적으로 책임지려고 하지도 않는다. 왜? 그게 바로 독일이니까.
우리집에서 모든 가구의 폐수가 역류하고 악취가 진동하고 가구 다 망가지고, 생활 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는데도 관리회사는 무려 2주 넘게 무대응과 방치 후 수리기사를 보냈다. 월세도 안깎아주려고 끝까지 버티다가 변호사를 대동하자 그때서야 꼬리를 내렸던 경험이 있다. 여기는 한국식 화내기와 대응법이 전혀 안통하는 사회다.
물론 50년 살아도 독일 너무 좋다는 분들이 있을 수 있다. 내 글이 모든 사람을 대변할 수 없으며 그래야 할 이유도 없다. 하지만 그렇게 좋다면 왜 40대 이후, 그리고 자녀가 대학에 갈 때쯤인 50대 후반 이후 독일에 남아있는 분들의 수가 급속도로 줄어들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내 주변에 독일을 떠나겠다는 사람은 소수였다. "그래도 은퇴까지는 있어야지."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면, 최근에는 "여건만 되면 은퇴 이전이라도 최대한 빨리 떠나고 싶다"는 분들이 압도적으로 늘어났다. 이곳에 평생을 살다가 뼈를 묻겠다는 사람은, 예전에도 지금도 단 한 명도 없다.
나는 정말 소중한 사람들에게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분들께 진심으로 말해드리고 싶다.
"독일은 여행으로만 오세요. 그래야 좋은 것만 볼 수 있습니다. 만약 꼭 이주해야 한다면 이것만 기억하세요. 아무것도 기대하지 마세요. 그게 무엇이든 안되는게 디폴트고 되면 좋은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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