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요해, 따뜻한 말 한마디

by 가을밤

'한국인은 정이 많다'라는 말처럼, 독일인에 대한 스테레오 타입중 '냉정하다'는 이미지가 있다. 각자의 경험에 따라 이 말에 동의할 수도,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다.


독일인들이 잘 웃어주고, 무거운 짐도 들어줬다며 전혀 냉정하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는 반면, 인정머리라곤 1도 없게 느껴진다고 평가하는 사람도 있다. 전자는 대부분 여행객이나 단기체류자들이며, 후자는 여기서 생활하는 장기거주자들이다. 양극단의 평가가 있다는 걸 알지만, 나역시 후자에 한표를 던질 것 같다. 이는 사회에 깊이 들어가서 다양한 경험을 하고 다방면의 경험치와 데이터가 모인 결과다. 결국, 장기적으로 다량의 데이터를 모아보니 "인정머리가 부족하다"는 의견이 다수라는 뜻이다.




# 나보고 어쩌라고

어떤 물건의 예상 배송일자를 훨씬 넘겼는데 물건을 받지 못했다고 치자. 고객인 나는 고객센터에 전화를 한다. 한국이었다면 바로 "죄송합니다 고객님, ㅇㅇㅇ한 사정으로 인해 배송에 차질이 생겼네요. 최대한 불편하지 않게 ㅇㅇ까지 배송해드리겠습니다."라고 할 것이다. 아니, 솔직히 말해서 한국에선 애당초 이런 문제가 거의 생기지 않는다. 하지만 독일 고객센터는 이렇게 말 할 것이다. "왠지 모르겠는데 배송이 더 미뤄질 것 같은데요." 그러면 고객은 이유를 물을 것이고, 직원은 이렇게 답할 것이다. "나도 모르죠. 내가 배송센터가 아닌데 어떻게 알아요? 못기다리겠으면 그냥 취소해요." 당연히 죄송하다는 말은 들을 수 없다. 왜냐하면 그 직원(본인)은 '내잘못이 아닌데 무슨 사과?' 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배송센터가 느린게 왜 내잘못임? - 이게 그들의 논리구조다. 정이 넘치는가?


# 니 사정은 모르겠고

얼마 전 앞이 안보일 정도로 눈이 오던 날, 남편의 차가 구렁텅이에 빠져 나오지 못했다. 날씨가 너무너무 춥고 앞도 안보이고 차는 엉망진창, 남편도 온몸에 흙을 뒤집어썼다. 그 구렁텅이는 어느집 뒷마당이었다. 단단히 다져지지 않은 진흙마당에 눈이 쌓였고, 도로와 높이가 같아서 전혀 구분되지 않았다. 남편이 길인 줄 알고 핸들을 틀다가 차가 그만 빠져버린 것이다. 눈이 많이 오는 날 주택 거주자들은 본인 집 앞에 눈을 치워야할 '의무'가 있다. 이 사건처럼 사고 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집주인은 눈도 치우지 않은 채, 차를 꺼내려고 안간힘을 쓰는 남편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집 진흙이 당신 때문에 패였잖아! 당장 차 꺼내고 흙 다져놓아요!". 영하의 날씨에, 눈과 진흙에 뒤엉켜 몰골이 말이 아닌채 고생하는 사람에게 이게 할 소리인가? 이래도 정이 넘치는가?


# 내가 한 거 아닌데?

독일에서 처음 살았던 내 원룸은 소음이 심했다. 위층 아이가 밤낮으로 온 집안을 뛰어다녔기 때문이다. 아이가 노는 건 독일에서 상당히 관대하게 보는 편이라, 어느정도는 참아야한다는 걸 나도 잘 알고있다. 하지만 너무 심한 나머지 잘 얘기해보려고 올라갔다. 엄마는 짧은 스포츠머리, 아빠는 민머리, 둘다 온몸에 문신을 한 그들은 이미 외모만으로 나를 압도했다. 조심스럽게 얘기한 나에게 돌아온 대답은 이거였다. "내가 뛴거 아닌데 왜 나한테 말해 어쩌라고?" 그날 나는 2살짜리 말도 못하는 아기한테 조용히 해 알았지? 하고 내려오는데 정말 현타가 심하게 왔다. 이래도 정이 넘치다 못해 아름다운가?


# 니가 좋아서 해준거잖아

지인의 독일친구가 한국에 일주일 정도 놀러온 적이 있다. 당시 우리 부모님은 언젠가 너도 독일에서 그친구 도움을 받을일이 생길 수도 있으니 먼저 도움 주자고 하시며, 그 친구에게 극진한 대접을 해주셨다. 우리집 방을 내어주시고, 매일 집밥에, 타도시 여행도 시켜주셨다. 하지만 그아이는 독일에 돌아가고 '입을 싹 씻었다.' 밥이나 커피를 사긴 커녕 그 흔한 고맙다는 인사도 없었다. 참다못한 내가 부모님께 죄송하고 얼굴이 화끈거려 연락을 했고, 돌아온 답장은 "그땐 고마웠어"가 전부였다. 보통 이런 경우 그들의 사고는 이렇다고 한다. '니가 좋아서 먼저 해준건데 내가 왜 고마워해야돼?'


# 내가 어떻게 알아

지인 집에 주방이 고장나서 기사를 불렀다. 약속시간이 한참 지나도 오지 않자, 그 지인은 나에게 집을 좀 봐달라며 외출했다. 결국 약속시간 4시간이나 지나서 온 기사는 주방을 보자마자 온갖 욕을 퍼부었다. 이따위로 주방을 지어서 콘센트도 못만지고, 어떻게 하란 소리냐 나는 못고친다 완전 거지같은 구조다 등등 불만을 이어갔다. 보다못한 내가, "네. 주방 구조가 좀 비효율적이긴 하네요. 설계할때 미리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인데 아쉽네요." 라고 하자 그 아저씨의 대답 "나는 주방담당 아닌데 내가 어떻게 알아요??"


도대체 이곳에 공감이란 덕목이 존재하긴 하는걸까?




어느 통계에 의하면 전세계에서 나르시시스트가 가장 많은 나라가 독일이라고 한다. 자기자신을 과도하게 사랑하고, 자기중심적인 사람들. 나르시시스트에는 여러 특징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책임을 남에게 돌리고/공감능력이 부족한' 특징은 정말 많은 독일인들에게서 나타난다. 하루이틀도 아니고, 일부 사람이라고 하기에는 생활 전반에 걸쳐서 이런 사람들을 꾸준히 계속 보게된다.


냉정하고 상당히 이성적인 것 처럼 보이지만, 막상 자기가 불리한 상황이 닥치면 그 누구보다 감정적으로 변하는 그들을 볼 수 있다. 만약 감정적이지 않다면 아예 대답 자체를 회피하고 입을 다물어버릴 것이다.


물론 모든 독일인이 그렇다는 뜻은 아니다. 마음깊이 따뜻한 사람들도 존재하는데, 그런 사람들은 본인도 독일인이면서 이런 독일인의 특성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 특징을 유독 '독일'에만 한정시킬 수 있는 이유는 이탈리아나 포르투갈 같은 나라만 가도 같은 유럽이지만 훨씬 정많고 따뜻한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말에 '아 다르고 어 다르다', '말 한마디가 천냥빚을 갚는다'는 속담이 있다. 우리 선조때부터 말한마디가 가진 힘과 중요성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뜻이다.


이 속담이 독일에 온다면 이렇게 바뀔 것이다: 아든 어든 그게 뭐가 중요하냐. 천냥빚에 대해 물으면 모른척 하고 대답하지 마라.


제목 사진출처: 직접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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