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가만히 있다가 돌 맞는다'는 말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아무것도 안하고 가만히 앉아있는데 누가 와서 돌을 던진단 말인가? 이 상황에서 아마 사람들은 두 가지 생각을 할 것이다. '돌 던진놈이 이상한 놈이군' 혹은 '돌 맞은 사람이 뭘 잘못했나?' 이다. 그리고 독일에서는 이 두 가지 생각이 동시에 공존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그것도 매우 빈번하게.
독일 아파트 실내는 대체로 한국보다 추워서 17~19도를 웃돈다. 난방비가 원체 비쌌는데 러우 전쟁으로 가스비가 더 폭등해서, 이제는 실내에서 패딩을 입는 한이 있더라도 난방을 매우 보수적으로 하는 분위기다. 우리 역시 겨울엔 야외가 영하 8도 이하로 떨어지지 않는 이상 웬만하면 난방을 안하려고 한다. 그렇게 아끼고 추운거 참으며 살았는데, 난방비 추가비가 무려 1000유로(연 기준)가 넘게 나왔다. 그것도 3년 연속으로. 가만히 있다가 돌 맞은 격이다. (실제로 관리회사의 계량기 조작 사기였다).
나는 자가를 구매하기 전, 10년 넘게 월세살이를 했다. 독일에서 월세는 다양한 분쟁이 일어나는 주제이기 때문에 사인 전 계약서의 글자를 하나도 빠짐없이 읽는 편이다. 분명 확인했다고 생각했는데, 첫 해 관리비 정산서에 모르는 항목이 찍혀있었다. "Grundsteuer(토지세=재산세)"가 있는게 아닌가. 독일은 관리비 정산을 1년 단위로 하기 때문에 그 전에는 알 수 없었다. 집이 내집도 아닌데 월세입자인 내가 왜 재산세를 내야하지? 몇 년 전이지만, 마치 가만히 있다가 돌을 맞은 것 처럼 적지않게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다. 여담으로 독일에선 재산세의 일부를 세입자에게 전가할 수 있으며, 불법이 아니다. 다만, 계약서에 명확히 명시해야 한다.
얼마 전 일어났던 에피소드다. 어느날 오전, 차가 도저히 나올 수 없는 구렁에 빠져 견인차를 불러야만 했다. 폭설이 왔던 그날 업체는 2시간 넘게 오지 않았고(눈이 그쳤는데도 오지 않음), 나는 그 건을 취소하고 타업체를 불렀다. 그리고 약 20일 뒤, 집에 한 통의 청구서가 날아왔다. 취소한 견인 건에 대한 청구서 약 20만원이었다. 털끝도 나타나지 않고, 폭설에 고객을 2시간이나 기다리게 해놓은 주제에 청구서를 날렸다. 이게 바로 가만히 있다가 돌맞는게 아니면 무엇인가? 칼도 들지 않고 돈뜯는게 더 나쁜 강도 아닌가?
독일에서 이런 어이없고 황당한 일 즉, 가만히 있다가 돌맞는 상황이 발생하는 이유는 이 나라가 유독 규정을 수없이 촘촘하게 만들고, 최대한 본인들의 책임소재를 피하도록 냉정하게 선을 그어 놓은 사회이기 때문이다. 누가 불합리하게 느끼는지, 상황이 얼마나 상식적으로 납득 가능한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오직 하나 '규정에 맞나 안맞나' 뿐이다. 규정에 어긋나지 않았다면 그 행동은 비도덕적일지라도, 상식에서 벗어날지라도, 죽어도 이해가 안되더라도 문제 없는 것으로 간주된다. 이 과정에서 감정이나 타인에 대한 배려, 혹은 인정머리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독일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사건들이 꽤 자주 발생한다. 누가 봐도 이상한 상황인데, 그 누구도 그것을 이상하다고 말하지 않는 것. 견인차가 두 시간을 넘게 오지 않았고 고객이 영하의 날씨에 눈속에 파묻혀서 기다리다 화가 끝까지 났어도 '단순히 출발했기 때문에 공차 비용은 청구 가능하다'는 것. 집주인의 재산세를 세입자가 내는 것도 마찬가지다.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지만 계약서에 한 줄이 적혀 있다면 장땡이다. 그리고 고객은 그 수없이 많은 계약 조항들과 깨알같은 글씨들을 "한시가 위급한 상황에서도 숙지" 해야한다.
문제는 이런 태도가 단순히 규율을 지키는 수준을 넘어, 서비스 정신의 부재로 나타난다는 점이다. 독일은 소위 '서비스 사망국'이라 불린다. 상황을 조금만 유연하게 보거나, 고객의 입장에서 한 번 더 생각해보면 충분히 조정할 수 있는 일들마저도 들으려 하지 않는다. 그러한 규정은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람이 규정을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렇다면 사람과 상관없이 어떠한 상황에서도 로보트처럼 규율만 읊고 규율에 따라 처리되어야 하는데, 또 그것도 아니라는 게 사람을 돌게 만든다. 상대방이 감정적으로 화내면 마치 미성숙한 어린아이처럼 취급하면서, 본인이 불리할땐 그 누구보다 감정적이고 온갖 감성적인 말들을 쏟아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걸 흔히 내로남불이라 한다.
물론 돌을 던지는 사람이 특별히 악의가 있어서 던지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 단지 규정이 그렇게 되어 있는거니까. 하지만 돌을 맞는 입장에서는 그 차이는 별로 중요치 않다. 이유가 무엇이든, 결국 맞는 건 맞는 것이고 계속 맞다보면 상처가 나고, 피가 나고, 나중엔 더이상 사람을 일어나지 못하게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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