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가을밤 Oct 23. 2023

운전면허에 300만 원을 썼다

독일의 운전면허

한국은 독일에서 일본과 더불어 별도의 시험없이 자국 운전면허증을  바로 독일 면허로 바꿔주는 몇 안 되는 국가 중 하나다. 그리고 나는 한국 면허증 소지자였다.


그러나 독일 공무원의 잘못된 행정처리로 면허증 교환이 거부되었고, 재검토를 요청했음에도 한 번 반려된 신청은 재신청을 할 수 없으므로 '독일 면허를 새로 따야 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수수료만 날리고 나는 결국 독일에서 운전면허 공부를 다시 하게 되었다. 이건 정말 피하고 싶었다. 왜냐하면 독일 면허는 어렵고, 까다롭고, 비싸기로 유명하기 때문이다.


2023년 기준, 독일의 운전면허 취득에 드는 비용은 평균 2600-3500유로라고 한다 (360-490만 원).




사진 dpa


*아래 나오는 비용은 지역 및 학원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습니다. Klasse B 기준.


# 면허신청 및 학원 등록

독일 면허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위해선 먼저 운전면허학원에 등록을 한 뒤, 관청에 '면허를 따겠다'는 신청을 제출한다. 관청은 이때부터 사실상 발급절차를 진행해두었다가 마지막 주행시험까지 합격하면 날짜를 찍어서 배부한다. 신청 및 면허증 발급 수수료는 약 40-70유로다.


면허학원에 등록을 했다면, 응급처치 수업(Erste Hilfe)부터 듣는 게 좋다. 총 9번의 수업(약 7,5시간)을 이수하고, 시력검사도 받아야 한다. 응급처치 수업은 수시로 열리니 주말에 몰아서 들어도 된다. 나는 의외로 시력검사가 복병이었는데, 정말 깨알 같은 글자 수 십 개를 읽도록 시켜서 눈알이 빠지는 줄 알았다. 응급처치 코스는 20-50유로, 시력검사는 약 7유로가 든다.


# 이론수업 및 시험

그다음 이론수업(Theorieunterricht)이 시작된다. 90분씩 14번의 강의가 진행되며 최소 12번 이상 의무출석해야 한다. 14번을 모두 참여하면 총 1260분의 강의를 듣게 된다. 필기합격 후 주행시험을 보는 절차는 한국과 같지만, 학원에 따라 이론수업 중간부터 이론과 주행을 병행하는 곳도 있다. 내가 다닌 학원이 그랬는데 실제 주행을 해보고 필기시험을 볼 수 있어서 훨씬 도움이 됐다. 학원 등록비 및 이론수업료는 약 400-600유로다.


이론시험(Theorieprüfung)은 총 30문제, 100점 만점이며 90점 이하로는 불합격이다. 이론시험에서의 복병은 '모두 고르시오'였다. 답이 몇 개인지도 모르는데 모든 답을 정확히 고르지 않으면 전체 오답처리 된다. 까다로운 문제의 경우 5점짜리 2개만 틀려도 바로 낙방이다. 낙방할 시 14일 후에 재시험을 볼 수 있고 시험 응시료를 또 내야 한다. 시험 응시료는 학원 서비스 및 행정비 50-100유로 + 시험료 22,49유로다. 재시험 시 전체 비용을 다시 내야 한다.




# 주행수업 및 시험

주행수업(Praxisunterricht)은 일반주행과 특수주행으로 나눠진다. 일반주행은 최소 이수시간이 없으나 평균 6-10회로 진행된다. 한 번에 2회(45분 x2=90분) 주행을 하는데 시간이 없는 학생들은 45분씩 쪼개서 하기도 한다. 일반주행 외에 12회짜리 특수주행(Sonderfahrt)은 필수로 이수해야 한다. 교외(Überland) 5회, 고속도로(Autobahn) 4회, 야간운전(Nachtfahrt) 3회로 이루어져 있다.


독일 운전학원들의 규모는 굉장히 작으며 학원에 코스장이 없다. 그 이유는 코스장이 필요 없기 때문이다. 첫 시간부터 바로 실전이다. 깜빡이도 제대로 켤 줄 모르는데 바로 차를 끌고 나가 시내 여기저기 다니며 운전을 하라고 한다. 주유소도 가보고, 골목도 가보고, 막다른 길, 시장 한복판, 일방통행길 등 일상에서 만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를 만나게 된다. 그야말로 서바이벌이며 수업 초반에 정말 많이 혼난다. 일반주행의 수업료는 회당 55-75유로 선이므로, 10회를 한다고 치면 550-750유로가 든다. 


특수주행은 어려운 점은 없으나 고속도로 주행이나 야간운전은 거의 담력훈련에 가깝다. 고속도로는  130km/h이상 주행을 권고하므로 그 이상으로 안정적으로 달릴 때까지 연습한다. 처음에 120이상 밟는 게 무서워서 머뭇거렸더니 강사가 면전에 고함을 질렀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야간운전은 저녁 8시 반 이후에 진행된다. 나는 눈 오는 겨울밤 야간주행을 했는데, 도로에 등조차 없고 거센 눈발 때문에 정말 극기훈련을 하는 기분이었다. 아무튼 이 특수주행은 보험료가 비싸서 수업료도 일반주행보다 약 5-10유로씩 비싸다. 특수주행 수업료는 1회(45분) 당 65-95유로다. 따라서 12회를 마치면 약 780-1140유로가 든다.


그다음, 대망의 주행시험(Praxisprüfung)이다. 주행시험은 독일의 기술/시스템 테스트 협회인 TÜV (Technischer Überwachungs-Verein, 줄여서 튀프)의 심사관이 진행한다. 시험 전 무작위로 자동차 시스템에 대해 묻는다. 자동차의 기본지식에 관한 것이며 '이 정도는 알아야 차를 관리할 수 있다'는 취지다. 나에게는 '계절에 따른 타이어의 적정 홈 깊이'와 '보닛 안에서 냉각수 및 엔진오일을 체크하는 법'을 물었다.


주행시험의 정해진 코스는 없다. 45분 간 뒷자리에 탄 시험관이 시키는 길로 가야만 한다. 안전을 위해 옆자리에 학원 선생님이 탑승하지만 아무 말도 해줄 수 없다. 큰 실수(예를 들어 후방 미주시, 추월차선 무시 등)를 하면 그 자리에서 낙방되며, 실수가 없다면 주행이 끝난 후 현장에서 바로 면허증을 손에 쥐어준다. 실기시험 응시료는 학원 서비스 및 행정비 150-250유로 + 시험료 116,93유로다. 낙방할 경우 이론시험과 마찬가지로 전체 비용을 다시 내야 한다.

 




위에서 예시로 든 비용을 최저로 계산하면 2136,42유로(299만 원), 최대로 계산하면 3106,42유로(435만 원)이다. 여기에 증명사진 비용, 각종 문제집이나 학습자료도 구매해야 하고 시험에 한 번에 붙지 않거나 주행이 더디면 계속 추가되므로 총 3500유로(490만 원) 정도의 예산을 잡는 게 좋다.


취득 속도는 속성코스로 빠르게 들으면 6주에도 가능하다고 하는데, 나는 회사를 다니며 주말과 저녁시간에만 가능했기 때문에 약 6개월이 걸렸다. 게다가 지금보다 물가가 저렴했던 당시 기준으로도 수업료가 너무 비싸서 얼마 되지도 않는 신입사원 월급은 통장에 흔적만 남길 뿐이었다. 신청부터 취득까지 약 2000유로(280만 원)가 들었다. 지금 물가로 보면 350만 원 정도 될 듯하다. 다행히 이론과 주행 모두 한 번에 붙어서 이 정도 지출에서 끝났지만, 대학 동기 중에는 자그마치 4000유로(560만 원)를 쓴 친구도 있었다. 현재로 치면 최소 600만 원 이상에 준하는 금액이다.


눈오는 날 퇴근길


이처럼 독일 면허취득은 경제적 부담이 크기 때문에,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수능(아비투어)을 마친 기념으로 선물하는 단골 리스트다. 면허를 처음 딴 독일 청년들은 보통 '막 굴려도 괜찮은 저렴한 차'를 첫 차로 들인다. 아무리 잘해도 첫 차는 안정되지 않은 운전실력에 이리저리 까이고 망가질 게 뻔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토록 값비싼 면허가 장롱면허가 되는 게 가장 두려웠다. 그래서 면허를 딴 주말부터 매주 중고차를 보러 다녔고, 차 구매 후에는 출퇴근으로 매일 1시간 반 이상 운전했다. 남편이 나보다 면허를 좀 늦게 따서 남편 출퇴근도 함께 해줬는데, 몸은 피곤했지만 덕분에 초반 운전실력이 제대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그러므로 한국에서 면허가 있는 분들이라면 무조건 독일에서 교환하는 게 통장을 지키는 길이다. 그러나 독일의 법규를 몰라 면허 비용만큼 벌금을 낸 분들도 심심치 않게 봤으므로, 한국에서 운전경력이 길더라도 독일의 교통규칙은 반드시 따로 숙지하는 게 좋다.




제목 사진출처: pixabay

본문 사진출처: 엘라 리, www.handelsblatt.com

매거진의 이전글 독일 교환학생 도시 잘 고르는 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