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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을밤 Nov 01. 2023

공장진료와 정성진료 사이 그 어딘가

독일 병원의 진료

독일에 처음 와서부터 지금까지, 독일 병원시스템에서 보이는 장단점은 뚜렷하다. 어떤 법적인 배경이 숨어있든 상관없이 그저 환자 입장에서 느낀 바이다. 


명백한 단점으로는 예약 잡기가 어렵고 환자거부율이 높다는 점, 그리고 예약을 해도 대기시간이 매우 길다는 점, 그에 비해 보험료는 꽤 높은 편이다 (공보험 기준이며 고연봉자는 월 100만 원 이상도 가능). 장점으로는 과잉진료가 덜하고(물론 종종 있다), 환자 한 명 당 진료시간이 길다는 점이다. 보통 환자 한 명이 들어가면 최소 5분에서 15분 이상 걸리는 것을 흔히 봤다. 




처음에는 '환자의 목소리에 저렇게 귀 기울 이다니, 역시 의사로서의 책임감이 남다르구나. 우리나라의 1분 남짓한 공장형 진료와 달라도 뭐가 다르네'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수년이 지난 지금, 이전의 내 생각이 너무 durch die rosarote Brille sehen(핑크 안경을 통해 보기: 제 눈에 안경)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중에서도 진심으로 환자를 인격체로 존중하고 진심으로 걱정하고 돌보는 의사가 있다. 그러나 다수의 의사들은(특히 가정의) 환자가 너무 많고, 그에 비해 자신에게 떨어지는 보수는 적다고 불평한다. 그래서 환자를 더 받고 싶어도 못 받는다고 한다. 솔직히 더 받고 싶은데 못 받는 게 어디 있나. 진심으로 정성진료를 하는 의사라면, 단 몇 십 유로 때문에 아프다고 온 환자를 문전박대하지는 않을 거다. 그냥 돈이 안되니 받기 싫은 것이다. 이것 때문에 내가 거절당한 병원이 최소 10개가 넘는다. 자본주의 논리로 돈이 안되면 안 하는 것을 뭐라고 할 수 없지만 아플 때 거절 당해보면 정말 서럽고 화난다. 


이처럼 환자 수에 제한을 두니, 자동으로 환자 당 할당 진료시간이 늘어나는 것이다.

 



나는 독일 8개 도시에 거주하며 진료시간이 1분인 병원도 가보고, 15분이 넘는 병원도 가봤다. 

솔직히 15분을 본다고 해서 특별한 얘기를 하는 건 아니다. 무슨 일 하냐, 가족은 몇이냐, 평소 지병은 없냐 등 대중적인 것들을 물어보고 좀 더 관심 있는 의사는 언제 독일에 왔냐, 스트레스는 없냐, 독일어는 어디서 배웠냐(근데 이게 왜 궁금하지?) 등을 물었다. 


의사가 간단한 말만 몇 마디 하고 처치부터 안내까지 모두 간호사가 하는 병원도 많았다. 


오히려 내게 진료시간보다 더 맘에 들었던 점은 '환자와 의사가 동등한 느낌'이었다. 

의사라고 하여 환자가 원하지 않거나 고민하는 진료는 권하지 않고, '난 의사고 넌 환자니까 내 말 들어' 식의 상하관계의 느낌도 거의 없다. 의사복도 가운이 아니라, 간호사나 리셉션 직원들과 같은 청결한 흰색 티셔츠와 바지를 입는다. 여태 가운 입고 진료 보는 의사는 딱 두 번 봤다. 계급의 논리를 말하는 게 아니다. 환자는 아무래도 의사가 지배적 태도를 보이면 내키지 않아도 따라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러한 느낌을 가지지 않게 분위기를 조성하여 환자가 주체적으로 처방을 따를지 말지 선택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또한 앞에서도 언급했듯 과잉진료가 적은 편이다. 즉 약 처방이 매우 보수적이다. 별 것 아니면 그냥 '차 마시고 쉬세요'와 같은 말로 처방전을 대신하고 최대한 자가치유를 권하는 편이다. 만약 약 처방을 받았다면 제조사의 주소를 관심 있게 보시라. 같은 지역 혹은 주에서 만들어진 약들이 은근히 많다. 지역 살리기의 일환인건지 모르겠다. 환자에게 직접적인 영향은 없지만 이런 부분도 장점으로 볼 수 있겠다. 


부작용이 없진 않다. 보수적인 처치 탓에 병을 불필요하게 키운 사례도 봤다. 이전에 아는 분이 다리 피부 수술을 했는데, 괜찮다며 끝까지 항생제 처방을 안 해줘서 결국 감염이 되고 재수술을 한 적도 있었다. 




뭐든 중간이 가장 좋지만 가장 어려운 법이다. 


독일에 살며 병원치료에 대한 기대는 많이 접었다. 대신 아프면 바로 병원에 달려가지 않고 일단 내 몸 상태에 귀 기울이고 지켜보는 인내심 하나는 늘어난 것 같다. 



제목 사진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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