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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을밤 Nov 04. 2023

천 원으로 맘에 쏙 드는 여권사진 찍기

독일 여권사진

독일에 있으면 생각보다 여권사진 쓸 일이 많다. 

여권사진은 독어로 biometrisches Passbild(생체 여권사진)라고 하는데, 거주증 갱신이나 운전면허, 각종 신청서에 뜬금없이 여권사진을 달라는 곳이 있어서 종종 급하게 필요한 경우가 생긴다. 




독일에 처음 왔을 때, 아무 생각 없이(한국처럼 찍어줄 거란 기대를 하고) 동네 사진관에 가서 여권사진을 찍었고, 나는 그날 내 증명사진 역사상 최고의 흑역사를 썼다. 얼굴은 대문짝만 하고 양 볼에 빛은 번쩍, 오는 길에 바람에 휘날려 앞머리도 갈라졌는데 사진사는 아무 말도 없이 그냥 셔터를 눌렀다. 아무리 생체 사진이어도 그렇지, 사람이 미워지려고 했다. 


나는 그 뒤로 절. 대. 독일 사진관에서 '여권사진'을 찍지 않는다 (프로필 포토는 찍을 만하다). 


독일 지하철역 증명사진기. 이걸로 인생 네 컷도 찍는다. (출처=wersestadt.de)


옛날 지하철 역 한쪽 구석에 있던 증명사진기를 혹시 아시는가? 그러면 이 글을 읽으시는 독자님은 최소 나와 같은 30대 이상이다. 그 기기들이 독일엔 여전히 존재한다. 남에 손엔 도저히 못 맡기겠어서 지하철 기기에서도 찍어봤으나 역시 두 번째 흑역사를 썼다. 거울에 보이는 만큼만 나와도 좋겠는데 이놈의 사진기는 해도 해도 너무한다. 이쯤 되니 문제가 나인지 기계인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결국 나는 여권사진을 직접 찍기로 했다. 

핸드폰에 '여권사진'이라는 앱을 찾으니 여러 개가 나온다. 가장 만만해 보이는 앱으로 다운로드하고, 독일을 선택한 뒤 얼굴 크기를 맞춰 찍는다. 집에서 찍다 보니 그늘지는 곳이 너무 많아서 장소 찾는 데 상당히 애를 먹었다. 수 십장을 찍어 가장 맘에 드는 샷을 고르고, 밝기를 조절했다. 그리고 얼굴과 상반신만 누끼를 따서 다시 흰 배경에 합성을 했더니 그럴듯하다. 


로스만의 여권사진 인화 서비스 (출처=rossmann-fotowelt.de)


이제 이 사진을 독일 국민 드로게리샵 dm이나 Rossmann에 가져가서 usb연결하고, Passbild 형태로 인화하면 완료다! 4장에 2,99유로(4200원)로, 한 장 당 약 1000원 꼴이다. 


맘에 들 때까지 찍을 수 있고, 밝기나 선명도 조절도 되고, 수 십장 인쇄도 가능하니 왜 이 방법을 진작 쓰지 않았을까 뒤늦은 후회가 들며 신문물을 경험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 방법으로 인화한 여권사진을 한국 대사관(여권 재발급), 독일 외국인청(거주증 갱신), 그리고 각종 관청 서류에 쏠쏠하게 사용했다. 그 어디도 다시 찍어오라거나 직접 찍었냐고 묻는 사람은 없었다. 


독일 사시는 분들이나 주변에 사진을 인화해 주는 드러그 스토어가 있는 분들이라면 나처럼 가내수공업 여권사진, 반드시 도전해 보실 만하다!



제목 및 본문 사진출처: 직접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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