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이 꿈을 가지는 건 사치다

독일대학원졸업 그 후

by 가을밤

해외생활을 하다 보면 한국에선 전혀 생각지도 못할 선택의 기로에 놓일 때가 있다.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독일에서 대학원을 졸업했다. 나는 독일에서 대학원을 졸업하면 바로 원하는 길로 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동기들이 미래에 대한 고민으로 졸업을 미룰 때, 나는 방학에도 쉬지 않고 인턴을 하고, 논문을 준비하여 유예기간 없이 졸업했다.


동기들은 왜 그렇게 빨리 졸업하냐고 했으나, 나는 당시 정말 학생들을 가르치고 싶었다. 독일이 난민수용정책을 펼친다고 알파벳도 본 적 없는 나라의 외국인들을 대거 받아들이자 이에 따라 독일어 교사의 수요가 급증했다. 나에겐 기회였다. BAMF(연방이민/난민청)에서 발급하는 전문 독어교사 자격증을 추가로 취득하여 취업시장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곧 상상도 못 한 장애물에 부딪혔다.




내 스펙이 어떻고 5년 후 나의 희망 커리어 이따위 것들은 중요하지 않았다. 독일어 교사/강사의 근무시간과 월급으로는 독일체류에 필요한 노동비자(노동을 위한 체류증)를 받을 수 없었다. 언어강사는 대체로 근무시간이 짧고(수업준비를 근무시간으로 넣지 않는 곳도 많기에) 보수가 상당히 낮기 때문이었다.


외국인으로 사는 서러움이 다시 한번 밀려왔다. 외국에 사는 이상 나는 그저 '이 땅에서 합법적으로 숨 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되는 신분이었다. 꿈이나 장래를 생각하는 건 사치였다. 그렇게 유학시절 가슴 두근거리며 그려오던 내 모습을 기약없이 지워야 했다.


마음으로 참 많이 방황했던 것 같다.


비자 때문에 꿈을 틀어야 한다는 게 정말 웃기면서도 슬펐다. 당시 한국에 들어갔다면 비교적 쉽게 강사가 되었을지 모르나, 왠지 그렇게 떠나기에는 내가 이 나라의 제도에 등떠밀려 나가는 것 같아서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어떻게든 비자를 얻어내고 늦더라도 꿈을 여기서 실현시키고 싶었다.


마침 담당교수님께서 박사과정을 제안하셨다. 박사를 하면 학생비자가 연장되니 자연스레 비자문제가 해결될 터였다. 그러나 어찌 이렇게 생겨먹은 나는 그것도 거절했다. 마음에 100만큼 들어온 일도 잘 해낼까 말까인데, 동기가 50도 안 되는 일을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나의 1안도 남이 제시해 준 2안도 모두 사라져 버렸다.




마음을 다잡는 방법은 단 하나였다. 실패라 생각하지 말고 다른 기회의 문을 열었다 생각하자.


다행히 생각보다 마음정리가 빨랐다. 나의 꿈은 항상 '방향'이 중요하지 '타이틀'이 중요한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어떤 형태로든 내가 가진 것을 전달하고 그것으로 인해 누군가가 더 나아진다면 곧 꿈을 이루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렇게 나는 독일 기업들의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학생비자가 얼마 남지 않아 심리적으로도 물리적으로도 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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