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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을밤 Oct 11. 2023

추방경고 그리고 비자 발급 거부

독일 비자청과 근로비자

(이 글에서는 비자/체류증을 혼용하여 썼으나 정확히는 체류증이 맞는 표현이다.)


첫 직장을 퇴사하며 솔직히 걱정이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회사와 묶여있던 근로비자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독일 근로체류증을 취득하면 길게는 3년, 짧게는 2년 간 체류증에 회사 이름과 직책이 쓰여있다. 즉, 회사를 나오면 비자는 효력이 없어진다.


나는 독일대학 졸업자에게 주어지는 특혜인 ‘졸업자 전용 구직비자(18개월)’를 쓰지 않고 바로 근로체류증를 받았기에, 이직 후 체류증에 회사 이름을 고쳐서 다시 유효하게 만드는 것 빼고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말 그대로 막다른 길이었다.


졸업 후 구직비자를 쓰지 않은 걸 뒤늦게 후회했다. 오직 1회만 주어지는 비자인데, 호기롭게도 곧장 근로비자로 뛰어든 과거의 나를 되돌리고 싶었다.




과거를 후회해봐야 아무 소용도 없는 바, 나는 첫 직장의 정신적 충격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는 동시에 다시 구직시장에 뛰어들어야 했다. 일이 있는 상태에서 이직하는 것과 없는 상태에서 구직하는 것은 겉모습만 같을 뿐 심리적인 상태는 매우 다르다. 여기에 비자까지 나를 옥죄고 있으니 안되면 한국에 가야겠다는 것도 차안으로 두고 있었다.


매일 루틴처럼 구직사이트를 보고, 지원서를 보내고, 인터뷰를 하는 나날이 이어졌다. 힘들었지만 첫 직장을 다니던 것 만큼 힘들진 않았다. 그곳을 퇴사한 그날부터 지금까지 단 한 순간도 후회한 적이 없다.


그렇게 꼬박 2개월이 지났다.

날이 좋아도 마음이 심란하면 안예뻐 보인다.




어느날,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독일어였다.


“프라우 리(이 씨), 여기 외국인청(비자청)인데, 2개월 전에 퇴사 하고 그 뒤로 새 직장에 대한 정보가 없네요. 어떤 상황인가요? 퇴사 후 3개월 내에 새 직장 계약서를 가져오지 않으면 독일 떠나셔야 합니다.“


“네 열심히 구직 중입니다.”


더 할 말이 없었다. 사실이니까.


전화를 마치고 담당자에게 현재 구직 상황과 인터뷰 일정을 워드파일로 정리하여 보내주었다. 구직자의 적극적인(?) 구직의지가 증명되면 인도적 차원에서 유예기간을 늘려준다는 얘길 들었기 때문이다. 독일에서 회사 종속비자를 가진 채 이직 시, 퇴사 후 3개월 이내에 새 직장의 계약서를 가져가서 비자에 있는 회사 이름을 고쳐야 한다. 회사이름을 고친다는 건 ‘노동청의 허가를 다시 받아야 한다’는 의미다. 독일의 근로비자는 취직만 하면 바로 주어지는 게 아니라, 포지션과 지원자의 적합성, 회사의 안정성, 월급수준 등을 따져서 발급한다.


어떤 포지션이든 독일 내에서는 일단 ‘독일인 혹은 유럽인’을 우선 채용하도록 되어있으며, 기타 국적의 외국인을 채용할 시 그 이유가 명확해야 한다. 한국은 기타국적에 속한다. 그래서 한국회사들이 Stellenbeschreibung(잡 디스크립션)에 ‘한국어 구사 가능’ 과 같이 한국인 채용에 타당성을 더하는 조항을 넣곤한다. 같은 이유로 독일회사나 외국계 기업에서 독일인, 유럽인도 아닌 제3국인을 뽑는다면 구구절절 이유를 편지로 써서 비자청에 보내주기도 한다.


구직을 시작한 지 약 2개월 반이 지날 무렵, 한 회사에서 오퍼가 왔다. 나는 계약서를 들고 1년에 한 번 꼴로 하는 초미라클모닝을 해야만 했다. 새벽 3시에 비자청 가기.




노동청 심사를 기다리던 어느 날(이 기간에 일하는 건 불법이라 꼼짝없이 기다려야 한다), 비자청에서 전화가 왔다.


“프라우 리, 노동비자 발급이 거부 됐어요.”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거부? 왜? 대체 왜? 비자청과 전화가 쉽지 않은데다 이대로 끝나면 최악의 경우 추방될 수도 있기에 나는 끝까지 이유를 물고 늘어졌다.


“오퍼에 있는 월급이 너무 적어요. 업무와 학력을 고려할 때 지금 연봉은 기준 미달입니다. 이걸로 노동허가 안나와요. 조정하던지 다른 직장 찾아보세요.”


그랬다. 두 번째 회사도 역시 비자를 빌미로 월급을 후려치기 했던 것이다. 기분은 나빴지만 정면돌파 하기로 했다. 곧바로 채용 담당자를 만나서 솔직하게 이유를 말하고 연봉인상을 요구했다. 약 3일이 지나 수정된 계약서가 왔고, 연봉은 올라가 있었다.


나는 서류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 다시 깜깜한 새벽에 비자청으로 뛰어야 했고, 마침내 새 노동허가증을 받아낼 수 있었다.


그렇게 독일도 나도, 다시한 번 서로를 붙잡았다.  





사진: 직접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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