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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을밤 Dec 04. 2023

캐럴 부르러 비행기 타고 갑니다

독일회사의 회식과 파티

나는 독일 직장에서 디지털노마드로 근무하는 직장인이다.

사무실에 가는 날이 정해져 있지 않으며 중요한 행사나 회의가 있을 때만 회사에 간다.


처음부터 이런 방식으로 근무했던 건 아니다. 매일 사무실에 출근하거나 일주일에 2-3회 의무출근을 했던 회사도 있었지만 지금의 회사는 직원들 각자의 사정을 충분히 배려해주기에 가능한 일이다. 게다가 우리집에서 사무실이 너무 멀다. 기차로 무려 6시간이 넘고 비행기를 타도 1시간이 넘는다. 매번 느끼지만 독일이 참 크다. (이사 전엔 30분이었으나 지금은 멀어졌다).


아무튼 이렇다 보니 한번 가는 것도 품과 수고가 많이 든다. 나와 같은 근무형태가 가능한 또 하나의 이유는 독일회사에는 '회식이 없기 때문'이다. 회식이라고 해봐야 팀원들이랑 점심을 먹거나(더치페이), 일 년에 2-3번 같이 저녁식사를 하는 수준이다. 이마저 거의 부서 이벤트랑 연결되어 있어서 회식이 있기 한 달 전에 미리 메일로 초대를 보내서 올 수 있는 사람, 없는 사람을 추린다. 모든 참여는 자율이며 강요는 없다. 당일에 갑자기 '김대리 오늘 회식하려고 하는데 올래?' 하는 일은 일절 없다.  




아무튼 작은 팀 이벤트를 제외한 독일회사들의 가장 큰 연중행사는 아마도 Sommerfest(여름파티)와 Weihnachtsfeier(크리스마스파티) 일 것이다. 여름파티는 6-7월 경에, 겨울파티 겸 크리스마스파티는 11월 말-12월 초에 열린다. 8월 그리고 12월 중순부터는 다들 휴가를 떠나기 때문에, 회사는 이 시기를 피하여 파티를 계획한다. 파티계획이나 주최는 회사 규모에 따라 다르지만 큰 기업의 경우 Betriebsrat(기업평의회)에서 계획/예산/주최를 모두 담당하기도 한다. 안타깝지만 팬데믹을 거치며 많은 회사들이 예산문제로 여름파티를 포기하고 크리스마스파티만 유지하고 있다.


*경영평의회에 관해서는 이전 스토리에서 다룬 적이 있다 (아래 링크).

https://brunch.co.kr/@nomad-lee-in-eu/125



작년 크리스마스파티 당일. 눈이 한참 내렸다. (출처=직접촬영)


각잡고 준비하는 독일회사들의 크리스마스파티는 진심이다. 아니, 독일 사람들이 전반적으로 크리스마스에 진심이다. 크리스마스마켓에 가도 알 수 있듯, 화려한 데코레이션과 각종 행사들, 그리고 크리스마스 기간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꼭 가족과 함께하는 것이 우리의 명절을 떠올리게 한다.


우리 회사는 독특하게도 크리스마스파티를 시작할 때 다 함께 약 3-4곡의 캐럴을 부른다. 상상하는 그대로다. 마치 아이들이 불 옆에 옹기종기 모여 노래를 부르는 듯 아늑한 분위기가 연출된다. 모든 직원이 한 장소(호텔 연회장을 빌리거나 사무실 전체를 쓴다)에 모여 불을 어둡게 하고 노래를 한다. 무대엔 지휘자와 악기 연주자들도 있다. 알고 보니 지휘자도, 연주자들도 모두 우리 회사 직원들이었다. 다들 말 안 하면 외부에서 초빙한 연주자라고 해도 믿을 정도의 실력에 적잖게 놀랐었다. 정말이지 취미에도 진심인 독일인들이다.  


노래하는 동료들은 누구 할 것 없이 모두 얼굴에 미소가 가득하다. 올해도 열심히 살았고 연말을 즐겁게 마무리하자는 메시지가 말하지 않아도 분위기를 따라 전해진다. 이어서 식사를 하고 밤 12시가 넘도록 동료들과 여기저기 수다의 장이 펼쳐진다. 행사가 끝나는 시간은 있지만 각자 알아서 집에 가면 된다. 일찍 간다고 붙잡거나 뭐라고 하는 이도 하나 없다.


강압 없는 편안한 분위기라 그런지 직원들 대다수가 매우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자발적으로 파티일정을 문의하기도 한다.




그렇지 않아도 나 또한 올해 크리스마스파티 일정이 궁금해지던 참이었는데, 마침 매니저가 사무실에 올 일정을 잡아보라고 하며 파티일정을 언급했다. 나는 고민하지 않고 바로 비행기표를 끊었다. 모처럼 쉽사리 만나기 어려운 동료들도 보고, 같이 일하는 동료들에게 직접 고맙다는 인사를 전할 생각에 벌써부터 설렌다.


공항에 설치된 트리. 앙증맞다. (출처=직접촬영)



제목 및 본문 사진출처: 직접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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