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남편의 출장이 잦아서 매주 저녁 기차역까지 전용택시기사 노릇을 하고 있다.
독일 가을은 종잡을 수 없어서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날엔 정말 사고 날까 운전대를 꽉 붙잡기도 했다.
오늘도 어김없이 비가 왔고, 억수 같진 않지만 우산을 안 쓰면 다니기 힘들 정도였다. 남편을 데려다주고 집에 돌아오는데 앞에서 느릿느릿 자전거가 간다. 이 비 오는 날에 무슨 자전거야. 독일을 비롯해 자전거를 워낙 많이 타는 유럽에선 무슨 일이 있어도 도로에서 자전거가 차보다 먼저다. 자전거 도로가 모든 도로에 있는 건 아니기에, 차도에 자전거가 가면 뒤따라오는 차들은 전원 20km/h 이하로 감속하게 된다.
답답했지만 길도 좁아서 지나치기 어려웠고 급한일도 없으니 그냥 천천히 가기로 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그냥 여가로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아니라 음식 배달 기사다. 우리나라로 치면 배민 라이더. 독일에서 배민에 준하는 대부분의 배달업체들은 오직 자전거(혹은 소형 전기차)만 사용한다. 오토바이나 자동차를 쓰면 환경에도 안 좋고 교통체증이라도 생기면 자전거보다 더 늦어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워낙 어려서부터 자전거와 함께 자랐기에 청소년 시기부터 자전거를 묘기에 가깝게 타는 독일인들이 한 둘이 아니다. 성인이 된 그들은 용돈벌이로 배달알바를 하는 것이다.
참 열심히 산다. 모자와 방수복을 뒤집어쓰고 음식을 싣고 열심히 달리는 그의 뒷모습은 힘들기보다 오히려 즐기는 것 같이 보이기도 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열심히 산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꼭 몸을 쓰는 일을 물리적으로 오랜 시간 해야만 열심히 사는 것일까. 적은 자본으로 몸을 움직여 일하지 않고도 수익을 창출하고 있는 투자자들은 그럼 열심히 살지 않는 걸까. 결국, 열심히 산다는 것도 각자의 기준에 의한 판단일 뿐이지 어느 것이 맞다고 얘기할 수 없는 상대적인 것이다.
나중에 인생을 뒤돌아 볼 나이가 되었을 때, 이처럼 상대적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는 열심히 살았다는 말보다 스스로 '후회 없이 살았다'고 말 할 수 있는 그런 삶을 살고 싶다.
제목 및 본문 사진출처: 직접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