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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을밤 Nov 06. 2023

부침개 대신 마라탕

비가 오면 생각나는 그것

요 며칠 내내 비를 동반한 거센 바람이 분다. 해도 뜨지 않은 채 하루종일 어두운 날들이 지속되고 있다. 오랜만에 들은 엄마의 목소리, "여긴 얼마 전까지 따뜻하다가 이제 추워진대." 한국의 날씨가 눈앞에 그려졌다. 아무리 추워도 해가 뜨는 화창한 우리나라. 햇빛을 퍼주던 인심 좋은 나라에 살다 야박한 나라로 오니 이런 날을 버텨낼 무언가가 필요했고, 우린 그 해답을 음식에서 찾았다.


부침개는 한국 음식 중에서도 쉬운 편이라 비만 오면 우린 항상 부침개부터 해 먹었다. 김치전, 해물파전, 호박전, 배추전, 참치전, 버섯전, 감자전, 녹두전 그리고 장떡까지, 안 해본 전류가 없는 것 같다. 김치는 그냥 먹기도 비싼데 전으로 만드니 낭비가 심하여 결국 집에서 직접 김치를 담그기에 이르렀다.




이처럼 비만 오면 전을 먹는데 매일 같이 비가 오니, 전 말고 새롭고 자극적인 탈출구가 필요했다. 남편은 '마라탕'을 제안했고, 나는 맞장구를 쳤다.


쓰촨에 이어 마라에 진심인 지역출신 중국사람과 매운 것에 환장하는 한국인이 어떻게 여태 마라탕을 안 먹었지? 사실 안 먹었다기보다 독일에 제대로 하는 집이 없을 거란 선입견에 찾아보지도 않았다. 그러다 취향에 딱 맞는 마라탕집을 찾았으니, 우리는 그곳을 문지방이 닳도록 드나들고 있다 (현재진행형).


고수를 잔뜩 넣은 마라탕. 왼쪽은 내 것, 오른쪽은 남편 것. 서로의 취향이 확실하다.


연근 너무 좋아




마라탕은 부침개의 빈자리를 제대로 채워주었다. 아주 제격인 대체재를 찾았으니 이제 우리의 비 오는 날을 부침개가 독점하지 않아도 되는구나.


독일에서 만난 마라탕이 더욱이 반가운 이유는, 한국에서 먹었던 부드러운 마라가 아니라, 제대로 혀를 강타하는 맛이었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중식, 베트남식, 태국식 등은 한국보다 독일에서 원조격을 찾기 더 쉽다. 이민자들 중 타지에서 음식으로 자신들의 뿌리를 이어가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또한 독일에 중국인이 워낙 많다 보니 이렇게 원조격으로 해도 손님들이 줄을 잇는다. 매운 걸 못 먹는 손님들을 위해서는 백탕(白湯) 메뉴가 있다.


게다가 평소에 잘 접하지 못하는 재료를 마음껏 먹을 수 있는 점도 큰 몫을 한다.  연근, 오크라, 얼린 두부, 양고기, 목이버섯, 요우티아오(油条) 등, 우리는 마라탕을 핑계로 그동안 그리웠던 식재료를 양껏 넣는다. 이렇게 가끔 뜨거운 마라탕 한 그릇 먹고 오면 속이 든든해지며 독일의 비바람 따윈 무섭지 않다.



중국에서 먹은 훠궈. 뒤에 보이는 시뻘건 양념의 소고기.


마라탕 얘기를 하니 시댁 근처에서 먹었던 훠궈가 생각난다. 그때 먹었던 불타는 소고기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웬만큼 매워서는 명함도 못 내밀겠구나 싶던 훠궈. 입에 부채질하면서 맛있게 먹었다.


독일에서 아직 썩 만족스러운 훠궈는 못 찾았지만, 맛집에서 먹는 마라탕과 집에서 남편이 가끔 해주는 마라샹궈로 올해 겨울을 잘 넘길 수 있을 것 같다.



제목 및 본문사진: 직접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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