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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eneon Mar 23. 2016

가족의 역사

세상에 저절로 일어나는 일들을 모두 우연이라고 치부해 버리자면 마음에 무리가 온다. 이를테면 면접 직전 스타킹 올이 나간다거나, 낯선 동네의 카페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거나 하는 일들. 이것들은 개개인에 있어 일상이 아닌 사건으로 기억된다. 그리고 사건들의 숨은 의미를 파악하는 것이 어쩐지 숙명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지난 2013년 초에 내게 일어난 사건도 마찬가지였다. 엄마와 단둘이 드라이브를 하고 식당에 들어가 뜨끈한 순두부를 한 숟가락 뜰 때 쯤,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할머니가 갑자기 위독하시다는 요양원의 전화였다. 이 날의 사건이 유독 기억에 남는 것은, 바로 나의 생일날 점심시간에 벌어진 일이기 때문이다.



"할머니가 식사도 여태 못하고 맥박이 떨어지신단다. 많이 위독하신가봐."

엄마는 찬물로 입을 헹구고는 서둘러 외투를 챙겨 입었다. 생일날 점심을 망쳐서 어떡하니, 하고 심각한 표정을 짓는 엄마에게 나는 그보다 세 곱절 더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신경질을 냈다.

"그러니까 대체, 그 많고 많은 365일 중에, 하필 내 생일날 맞춰서 위독한 게 어디 있냐고. 할머닌 왜 나를 끝까지 괴롭히냐고."

할머니가 아프단 사실보다, 내 생일날 아프단 사실이 내겐 더 중요한 일이었다. 걱정에 앞서 짜증이 일었고, 곱지 못한 표정으로 엄마를 따라 나섰다.


급히 차를 운전해 도착한 곳은 집에서 차로 십 분 남짓 거리에 있는 시내 요양원. 그 곳에 머문 지 삼 개월 정도 지난 할머니는 까맣고 딱딱해진 몸을 침대에 뉘인 채 눈을 감고 있었다.

"어머니! 정신 차리세요!"

할머니 몸을 흔들고 때리며 소리치는 엄마와,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겠다 며 그 뒤에 서 있는 요양사 아줌마들. 그 모습을 잠시 보고 서 있다가 나는 방을 나와 버렸다.



방 안에서 누가 죽든지 말든지 늦겨울의 햇볕은 따스하게 요양원 로비로 스며들었다. 나른한 햇빛이 머무는 자리 위엔 '어르신 생신 축하드립니다'라고 쓰인 플랜카드가 붙어있었다. 내 할머니도 거기서 사진을 찍었었다. 딱 한 달 전에, 고깔모자 쓰고. 케이크도 앞에 두고. 휠체어에 앉아서. 누구 핸드폰에 남아 있는지도 모르는 그 사진이, 우리의 마지막 가족사진이 되는 걸가.

그 자리에서 할머니의 지난 생일을 생각하니 코끝이 찡해졌다. 그러나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이 의미심장한 사건들이 내게 말하려는 게 뭔지 고민을 하느라 머릿속이 뒤죽박죽이었기 때문이다. 하필이면 내 생일에 위독한 할머니. 빛바랜 생일축하 현수막과, 지구의 반대편에 선 듯, 까마득하고 아련한 한 달 전의 사진까지. 이것이 평생 내 애증의 대상이었던 할머니의 복수인가, 혹은 인생의 교훈인가, 아니면 무엇인가.

일상의 순간들이었지만 내게는 의미가 숨겨진 사건, 의도된 연극적 장치로만 느껴졌다. 그 의미를 추리하느라 내게는 할머니의 아픔을 슬퍼할, 혹은 원망할 겨를이 남아있지 않았다.


그날 저녁, 요양원을 방문한 본당 신부에게 병자성사도 받은 할머니는 그로부터 열 한 달을 더 사셨다. 그 중엔 소녀 시절처럼 뜻 모를 노래를 흥얼거린 날도 있었고, 또 고목마냥 딱딱하게 누워만 있는 날도 있었다. 오락가락한 상태로 요양원에 누워 계신 할머니는 어느덧 일상이 되었다. 그렇게. 할머니가 하필 내 생일날 위독했다는 사실이 잊혀질 때 쯤,

할머니는 정말로 돌아가셨다. 위독하다는 연락도 없이. 매일같이 병문안을 간 아빠가 없는 시간에. 생판 남인 요양사들 사이에서 숨을 거두신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저절로 일어난 우연적인 일들이다. 하필이면 내 생일날 할머니가 위독했던 것이나, 할머니가 아팠던 그 날에 생일축하 현수막이 그렇게 반짝이던 것, 또 그토록 애지중지 하시던 아들마저 임종을 못 보게 하고 돌아가신 것 모두. 하지만 전부 우연으로 받아들이기엔 기묘하고도 서운한 사건들이다. 나는 이것이 할머니가 남겨 둔 비밀 숙제라도 되는 양, 계속 떠올려본다. 이 사건들을 이어보기도 하고, 풍선처럼 부풀려보거나, 또 바늘귀처럼 작게 만들어보기도 하면서.



그렇게, 할머니의 죽음을 숙명처럼 떠올린 이 년 동안, 그것은 나와 할머니만의 이야기가 되고, 나 혼자 기억하는 추억이 되었다. 어쩌면 할머니는 이것을 의도했던 것일까. 잊히지 않기 위하여.


사실상 아무런 의미가 없었을 일들에서 의미를 찾는 일을 나는 오늘도 미련하게 반복한다. 그러다 보면 일상이 사건이 되고, 삶이 되고. 그리고 추억이 된 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어느덧 할머니의 두 번째 기일도 지났다. 할머니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는 공간에서, 나는 또 할머니가 던지고 간 숙제 같은 사건들을 떠올리며 글을 쓴다. 그렇게, 우리의 이야기가 숨 쉬는 순간마다 새롭게 써진다. 또 그렇게, 우리 가족의 작은 역사가 조용히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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