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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eneon Oct 06. 2017

죽은 사랑의 회고록

이승우, <사랑의 생애>, 예담, 2017

182.
그가 얻으려고 했던 유일한 것은 생존, 즉 어떻게든 살아남는 것이었으므로, 그것에 필사적으로 몰두해야 했으므로 사랑한 척할 수 없었고, 하지 않았다. 넝쿨식물의 넝쿨들이 필사적인 것은 사랑에 대해서가 아니다. 생존에 대해서다.




1. 사랑 낯설게 보기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벨기에 화가 르네마그리트는 캔버스에 파이프를 그려놓고 천연덕스럽게도 그 아래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고 썼다. 틀린 말은 아니다. 파이프 그림을 가위로 오려서 손으로 잡아본들 그걸로 담배를 피울 수는 없다. 그 이미지는 실체가 아니니까. 하지만 파이프를 그려놓고 파이프가 아니라고 한 이 작품은, 파이프 그림을 두고 파이프라고 말하는 것보다 훨씬 큰 충격을 알려주었다. 그동안 너무나 당연시 여긴 관념, 즉 그림이 실체를 반영한다는 인식에 반기를 든 것이기 때문.

르네마그리트는 작품을 통해 고정관념을 이리저리 뜯어보고 다시 붙여도보고 하면서 사람들의 사고의 전환을 이뤄냈다. 낯선 아이디어를 접하게 되면 마치 써O란 먹고 기름기 꽉 찬 혈관에 피가 팽팽 돌게 되는 것처럼 생각의 폭도 함께 넓어지고 자유로워진다. 이승우의 장편소설 <사랑의 생애>를 읽는 동안의 내 느낌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흔히들 "사랑에 빠진다"는 말을 한다. 그런데 작가 이승우는 이 문장이 틀렸다고 주장한다. "빠진다"라는 동사의 성격으로 볼 때 그 바탕에는 "사랑이 누군가 파놓은 함정 같은 것이고, 그래서 무의식적으로 저항하지만, 의지대로 빠져나올 수 없어서, 무기력함과 불안이 동반된다"는 인식이 깔려있는 셈인데, 과연 사랑이 정말 그런 함정 같은 것인가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이승우에 의하면, 사랑은 빠지는 게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사랑이라는 기생체가 숙주(사람)를 선택하여 그 안에 들어가고 뿌리를 내리고 살다가 죽는 것이다. 사랑은 사람이 감히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사람은 다만, 어느 날 문득 자신 안에 들어온 사랑의 숙주가 되어서

용감해지거나 너그러워지거나 치사해지거나 유치해지거나 욕망하거나 두려워하거나 불안하거나 흥분하거나-

하는 등 사랑이 시키는 일을 속수무책으로 감내할 뿐이다.


8.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의 숙주이다. 사랑은 누군가에게 홀려서 사랑하기로 작정한 사람의 내부에서 생을 시작한다.


사랑에 관한 고정관념을 도끼로 꽝, 하고 한번 내려쳐 버리고는, 그 자리에 "사랑의 생애"를 다시 써 내려간 이승우의 <사랑의 생애>. 나는 이 낯섦이 반갑다.




2. 익숙한 사랑 이야


낯설게 시작한 사랑이야기는 그러나, 낯설지 않게 흘러간다. 어느 누구에게든 '보통의' '보편적인' '일반적인' 등의 형용사를 감히 붙일 자격은 내게 없겠으나, 작품 속 인물들의 사랑 모습은 어딘가 익숙하다. 별로 특별할 것 없는 일반적인 연애 모습처럼 느껴진다. 그건 아마도 "사랑은 누구에게나 온다"라는 작가의 생각이 반영된 결과일 것이다.

사랑은 사람의 조건이나 상황에 상관없이 무심코 찾아와서 살아간다. "난 사랑할 자격이 없어"라고 말하는 것은 자신과 상대에 대한 기만이다. 세상의 잣대로는 하잘것없는 이라 할지라도 뜨거운 사랑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그건, 다시 말하지만, 사랑은 우리가 선택하는 일이 아니고, 사랑이 우리를 숙주로 선택해 들어와 생애를 살기 때문이다. 유일하면서도 보편적인 개인의 사랑. 덕분에 우리는 다른 이들의 사랑 이야기에 공감을 할 수 있다.

<사랑의 생애>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은 크게 다섯 명. 선희와 영석과 형배, 그리고 준호와 민영이다. 다섯 명의 가정환경부터 그로 인해 형성된 성격, 현재 상황, 사랑에 대한 가치관과 태도 등 모든 게 다르다. 그 다섯 캐릭터와 나를 비교해도, 딱히 비슷한 인생이라 느껴지지 않는 건 마찬가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사랑은 어쩐지 내가 한 번쯤 겪어본 일들 같았다. 그들의 특수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그 사랑은 익숙해 공감이 갔다.


가령 이런 식이다.

 

(1) 선희는 과거 좋아했던 선배 형배에게 사랑을 고백했다가 "난 사랑할 자격이 없어"라는 거절의 말을 듣고, 그 충격으로 (물론 그것 때문만은 아니지만) 독하게 집필해서 신춘문예에 당선이 된다.

나 역시 선희처럼 실연을 하고 그 충격으로 소설에만 빠져 살았던 때가 있다. 물론 나도 그때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지만, 사흘에 한 권씩은 책을 읽었다. 그때는 소설마저 내 곁에 없다면 당장 미쳐버릴지도 모르겠다고 생각을 했다. 비록 내가 선희처럼 등단까지 하진 못했지만 흘러 흘러 현재 직업을 갖게 되는 데에 큰 영향을 준 건 사실이다.


(2) 동시에 나 역시 형배처럼 다른 대상을 나보다 우습게 본 적도 있다. 정황상 내가 더 먼저 마음에 들어했던 건데 '네가 날 안 좋아할 순 없겠지'라는 오만한 마음을 가지고는, 마치 한 사람의 마음이 내 손바닥 안에 있는 양 행동을 했었다.

책의 초반에 형배는 "난 사랑할 자격이 없어"라는 말을 했다가 선희와 저자에게 가열하게 까이는데, 나도 그 비슷한 말을 했었다. "지금은 연애할 상황이 아니야"라고. 그러고 나서 한참 뒤에 그에게 "그때 그냥 네가 만나자고 할 때 거절하지 말걸 ㅜㅜ"이라는 흑역사;;말을 하는 무식한 패기까지. 어려서 그랬던 거라고 생각해버리고 싶지만 글쎄 과연 지금은?  


(3) 바람을 피워본 적은 없지만 사랑과 결혼에 대한 준호의 생각에는 많이 공감을 한다. 모든 사람에게는 그만의 매력이 있다는 생각이나 결혼이라는 제도 자체가 사랑을 억압한다는 그의 말은 친구들 사이에서 구제불능 바람둥이의  궤변으로 여겨지지만 나는 사이다 마신 느낌이었다. 다만 그는 소위 비윤리적인 연애관을 지닌, 애인과의 의리를 지키지 못하는 자이기에, 그를 온전히 두둔하지는 않는다.


76.
평생 한 사람만 사랑한다는 것은 거짓이거나, 거짓이 아니라면 아예 사랑이라는 것을 (기대가 없어서든 억압되어서든)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한 사람만 사랑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다. 개별적 존재가 발산하는 매력에 대한 정당한 반응으로서의 개별적 사랑이 아니라 그저 자기 안의 쾌락 욕구를 해소하기 위한 목적으로, 혹은 더 나쁜 경우로, 단지 편리와 관습에 따라 사랑을 구실로 내세워 사람을 붙들고 있는 것뿐이라면, 이것이야말로 개인이 가진 고유성에 대한 마당하고 정당한 대우를 하고 있다고 볼 수 없기 때문에 부도덕하다고 말할 수 있다. 평생 한 사람만 영원히 사랑하는 것이 참된 사랑이라고? 그것은 낭만적으로 이상화된 속설일 뿐이다.

79.
내 말은 결혼은 제도로서 중요하다는 것, 그러나 사랑은 결혼이라는 제도에 예속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결혼 제도의 유지를 위해 사랑은 왜곡되고 희생을 강요받았다. 결혼은 사랑이 전혀 관여하지 않거나 아주 조금밖에 관여하지 않는 분야이다. 전혀 다른 층위에 있는 둘을 섞어 인과관계로 연결하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4) 나는 종종 차갑다, 이성적이다, 가까이 가기 어렵다는 말을 듣는다. 중학생 때부터 친하게 지낸 친구들조차도 "함부로 못하겠고 가까워지기 어려워"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가끔 억울하고 외로워지긴 하는데 굳이 나 자신을 바꿔야 할 필요성을 느끼진 않는다. 아니 오히려 친한 사람일수록 함부로 하면 안 된다는 게 내 지론이다. 적당히 선을 지켜야 관계가 깔끔하게 오래 유지되지 않나. 선을 넘는 관계는 정신적으로 불편하다.

그래서일까, 작품 속 민영의 모습이 어쩌면 남들이 보는 나와 비슷할 것 같다는 추측을 했다. 민영은 남자 친구와 만나도 밤 열시면 반드시 집에 들어가야 하고 주일은 교회를 가야 해서 데이트를 할 수 없으며 키스 이상은 결혼할 상대와만 해야 한다는 가치관을 갖고 있다. 물론 내가 민영처럼 규율에 맞는 삶을 사는 건 아니지만. 상대방이 선뜻 다가오지 못하게 하는, 그리고 가까운 사이에도 선을 두는 모습은 비슷하다.

작가에게 고마웠던 건 민영의 모습을 우스꽝스럽게 묘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민영은 민영 나름대로의 생활관 가치관이 있다. 민영과의 키스를 위해 바람둥이 준호는 결혼을 하겠다고 한다. 가치관을 바꿔서 잘 만나게 된다면 뭐 좋겠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두 사람 사이의 사랑은 아마 단명할 것이다. 지난 모든 연애가 그랬듯이.



3. 생존이 걸린 사랑


작품 속 영석은 사회의 잣대로 보자면 "사랑할 자격"이 있나 싶은 사람이다. 왜소한 체격과 우울한 인상. 많은 나이. 불우한 가정환경. 그로 인해 형성된 애정결핍과 과도하고 폭력적인 집착까지. 소위 비호감이라 하는 것들을 모아서 빚으면 그대로 영석이 될 것이다. 그래서 형배는 선희와 영석의 연애가 기묘하다고 생각한다. 선희가 자격미달의 남자를 사랑할 리가 없다며 그녀의 마음은 사랑이 아니라 두려움 혹은 연민일 거라고 추측한다. 너무나도 주제넘고 오만한 추측인데, 글쎄. 누가 그에게 돌을 던질 수 있을까. 타인의 사랑에 함부로 잣대를 대는 건 새삼 놀랍지도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것은, 영석의 캐릭터는 가장 하찮은 남자인데도 그에게 가장 많은 공감을 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책을 함께 읽은 친구들과 내가 그랬고, 그리고 아마 작가도 마찬가지일것이다. 

나는 다른 무엇보다 그가 사랑을 믿지 않는 사람이고, 그래서 힘겹게 사랑을 했다는 점에서 고개를 끄덕이며 내얘기라고 생각했다. 나는 사랑에 회의적이다. 그 누구도 타인을 완벽하게 이해하거나 공감하거나 위로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 불가능에 끊임없이 도전하는 게 나를 포함한 모든 인간의 숙명이며 부조리라고 생각될 뿐. 사랑 자체를 못 믿는 게 아니라 인간이 완벽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인데, 그래서인지 영석이 선희의 구애에 보인 불신과 무신경, 그리고 그 이후에 보인 공격적이고도 방어적인 구애에 공감한 것이다.

 

196.
사랑의 존재도 인정하고 사랑의 속성과 가치도 부인하지 않지만 사람을 믿을 수 없기 때문에 사랑을 믿을 수 없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사람이 사랑(의 속성으로 제시된 표징들을 실천)할 수 있다는 믿음이 없기 때문에 이들은 사랑을 믿지 못한다. 사랑이 불완전해서가 아니라 사랑을 실천하는 행위의 주체인 사람이 불완전하기 때문에 사랑을 믿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사람이라는 종의 본성에 대한 비관적 성찰이 이 불신의 내용이다. (...) 사람이 어떻게 사랑을 감당한단 말인가,라고 이들은 말한다.
사랑을 믿지 못하는 네 번째 부류의 사람들이 정말로 믿지 못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다. (...) 단지 자기가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을 믿지 못하고 자기가 누군가의 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믿지 못할 뿐이다. 누군가의 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다는 것도 믿지 못한다. 타인에 대한 불신은 자신에 대한 불신의 여파에 지나지 않는다. 


영석은 자신이 사랑을 믿지 못하는 것처럼 사랑도 자기를 믿지 못할까봐 전전긍긍하며 선희에게 매달린다. 그 모습은 너무나 처절하다. 버림받지 않기 위해서는 필사적으로 매달릴 수밖에 없는 일이다. 사랑이 곧 생존이 되는 것이다. 그의 사랑은 마치 넝쿨식물이 나무의 몸통을 휘감고 올라가는 것과 흡사하다. 넝쿨식물은 나무의 몸통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꽁꽁 옥죄어 올라간다. 집요하고 탐욕적이고 필사적으로. 어찌보면, 사랑에 그런 탐욕은 불가피한 일이다. 다시한번 소설의 처음으로 돌아가서 보자면, 사랑은 우리를 숙주로 삼아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것. 그것은 함정처럼 빠지는 것도 아니고 그저 흘러가는 감정도 아니다. 때문에 영석처럼 사랑 앞에서 

용감해지거나 너그러워지거나 치사해지거나 유치해지거나 욕망하거나 두려워하거나 불안하거나 흥분하거나-

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다. 

필사적으로 사랑을 살아내는 영석의 모습은 아이러니하다. 남들 눈에는 사랑할 자격 조차 없어보이는 그이기 때문이다. 영석 안의 사랑의 생애가 길지 짧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그의 사랑으로써 우리는 사랑이 어느 순간에 느닷없이, 누구에게나 아무런 편견없이 덮쳐오는 것임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사랑이 빠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안에서 살아간다고 한 작가의 말은 다양한 이들의 모습으로 전개가 되고 마침내 영석의 사랑을 통해 완성이 된다. 르네마그리트의 그림처럼 낯선 작가의 말이 사랑에 대한 새롭고 합당한 정의로써 받아들여진다. 치밀하고 성공적으로, 사랑의 생애 회고록이 완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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