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험을 하려는 이에게, 성장하고픈 욕망을 가진 이에게. 그리고 당신에게.
3일 전 누군가에게 들었던 말 아닌가요?
어제의 안정보다 내일의 불안을 선택하려는 분 계신가요?
사랑하는 가족부터 친구 등 반대하는 사람들로 둘러싸여서 결단한 것이 흔들리기 시작 하시진 않았나요?
아무리 강하게 결단하였다고 해도, 평소 믿고 있던 사람의 반대에 직면하게 되면 흔들리기 마련입니다. 특히 가족과 같이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반대를 받으면 굳건히 밀고 나가고자 하는 결의는 꼬리부터 내려버립니다. 하물며 10년 이상 알고 지낸 친구에게 고민을 털어놓아도 동의해주는 경우를 찾기 쉽지 않습니다. 오히려 내가 가진 불안보다 더 크게 걱정을 해줍니다.
그냥 흘러가는 대로 살아.
어제의 안정을 왜 버리려는 거야.
도무지 네가 이해되지 않는다.
네가 그럴만한 가치가 있어?
지난 글 "30대 가장 어려운 문제 허락 구하기"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저 또한 인생에서 가장 큰 변화의 시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인생을 향해 도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힘차게 달려가려니, 반대 방향으로 불어오는 역풍의 강도 또한 강하다는 걸 새삼 느끼고 있습니다.
선택의 순간. 가치관이 다르고 생각이 다른 사람들. 앞날을 살아보지 않았기에 누구의 답이 더 현명한지는 함부로 답할 수 없는 상황. 그렇다고 어느 누구도 양보하지 않으려는 시간들. 끝맺음 없는 저녁시간 이후 흐르는 어색한 분위기. 이런 시간들이 좋지 않으면서도 언젠가 겪어야 한다는 걸 알고 있는 나 자신..
만약 가장 많은 대화를 주고받고, 같이 살면서 '가족'이라는 관계 속 신뢰를 키운 부모님께서 반대한다면 여러분은 어떤 선택을 하실 건가요? 내 결단대로 들이댈 수 있을까요? 아니면 반대의 목소리에 동의하며 나의 뜻을 내려놓을 수 있을까요?
최근 "낯선 곳에서의 아침" 구본형 선생님의 저서를 읽고 있습니다. 책 서문에 나온 내용을 들려드리고자 합니다.
어느 날 새벽 바위를 굴려 올리기 시작하자 내 속에 있는 어떤 위대한 것이 소리쳤다.
"오늘을 바위가 다시는 굴러 떨어지지 못하게 하는 첫 번째 날로 만들리라."
정상에서 돌은 다시 굴러 떨어지려 했다. 그때 내가 외쳤다.
"오늘은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다. 돌이 떨어진다면 나는 다시는 계곡 밑으로 내려가 돌을 굴려 올리지 않을 것이다. 나에게 내일은 없다."
그러자 돌은 멈춰 섰다. 나에게 내일이 없다면 내일의 형벌도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이윽고 내 뇌의 시냅스(synapse)를 지배하던 마법의 주술이 풀렸다. 나의 머리를 통제하던 시지프의 신화는 파괴되었다. 더 이상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의 지옥을 경험하지 않아도 되게 되었다. 나는 내가 굴리던 커다란 바위를 정상에 올려두었다. 그리하여 그곳을 지나는 사람들이 밟고 올라 그동안 넘어온 산들을 조망하는 전망대로 삼았다.
출처: "낯선 곳에서의 아침" (구본형 지음)
작심삼일 (作心三日). 마음먹은 지 삼일(三日)이 못 간다는 뜻.
저의 경험과 변화를 바탕으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말해드리겠습니다. 수개월 간의 고민의 끝, 새로운 길을 선택해야겠다고 결단하였습니다. 결단이 들면 행동으로 옮기는 편이라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 내일의 불안에 대해 이야기하였습니다. 하지만 그 반응은 냉소에 가까웠습니다. 30년 만에 한번 볼까말까 하는 그런 냉소였습니다.
주변 사람에게 다가가기 전 조금 흔들렸습니다. 마침 그 시기가 첫 결단하고 3일이 지난 시점이었습니다. 가족 아닌 사람의 반대도 아니고, 내가 믿고 사랑하는 가족이니까요.
다시 말해보기로 합니다. 처음으로 강한 현타를 느꼈던 시기.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의 동의를 얻을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적어도 세상 다른 사람의 동의가 아니라, 가족만의 동의를 얻겠다고 다짐하면서 말이죠. 다시 생각을 말합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더 진지한 표정으로 오히려 결단한 저를 설득하려는 모습을 마주하게 됩니다.
다시 3일 만에 찾아온 불안은 나 자신을 시험하였습니다. 온갖 최악의 시나리오를 꺼내 들며 말이죠. 조금의 흔들림이 보이면 그냥 흘러가도록 허용하지 않고 달려들었습니다. 내가 내렸던 결단과 대비되는 의구심들. 눈앞에 보인다면 멱살이라도 잡고 싸우겠지만, 보이지 않는 불안은 예고 없이 예측할 수 없는 방향에서 카운터를 날렸습니다.
3일, 3일, 또 3일, 남다른 3일, 또 다른 3일, 새로운 3일, 역대급 3일이 흘렀습니다.
다시 이야기를 꺼냈던 어느 저녁. 여전히 반대하는 가족은 있었지만 조용히 내 옆으로 다가와 "흔들리지 말고 해 봐"라고 말해주는 가족 1명이 생겼습니다. 더 이상 남에게 동의를 구하지 말고. 이미 네 안에 답이 있지 않느냐고.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봤으면 좋겠다고.
그러게요. 아무리 반대를 들어도, 관계를 담보로 주장한다고 해도. 수개월 간 다짐하였던 결단은 쉽게 포기되지 않았을 텐데 왜 그렇게 다른 사람의 동의를 중요하게 생각하였던 걸까요?
책 "낯선 곳에서의 아침" (구본형 지음)에서 나온 바위를 계속 올리고 있었습니다. 관성대로 정상에 올려두면 산 아래로 굴러 떨어진다는 걸 알면서도 밀어 올리고 있었습니다.
인생이란, 무엇을 이루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저 사는 것이다. 하나의 길을 선택하면, 다른 길은 가보지 못하는 여정으로 남는다. 한 길을 가며, 다른 길의 모습을 그리워하지 않길 바란다. 그래서 선택은 다른 것을 버리는 것이다. 여행은 어디에 도착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기차 안이고, 거리며, 만난 사람들이며, 골목 속의 주점이며, 산이며 바다이다. 선택한 여정을 따라 보고 느끼며 그때 그 장소의 숨결이 되어가는 것이다.
출처: "낯선 곳에서의 아침" (구본형 지음)
반대의견을 감사하지만 반대할 수밖에 없는 판단. 그리고 어제의 안정에서 미래의 불안으로 가려는 여정. 두 가지 모두를 가지려고 하였습니다. 결코 공존할 수 없는 두 가지 선택지를 손에 쥐고 놓지 않으려고 했죠. 찬성 의견을 내놓은 1명의 목소리를 듣고 스스로를 돌아본 결과, 내가 가질 수 없는 어제의 안정은 내려놓기로 하였습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 중에서 상반되어서 같이 갈 수 없는 길을 두고 모두 취하려고 하신 적 없으신가요? 한쪽이 잘못되면 변명이라도 할 수 있다는 이유로 두 가지를 모두 취하려 하진 않으셨나요?
두 가지 모두 가지고 있다면 한쪽이 안 되면 나머지 한쪽으로 옮겨 '나는 틀리지 않았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두 가지 모두를 가지고 있기에 현명한 것 같지만 어쩌면 그건 망상일 뿐, 실제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음을 의미할지도 모릅니다.
지금 이렇게 글로 남기는 이유도 저와 비슷한 경험을 하고 계시는 분들께 조금이나마 위안을 드리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금의 생각을 글로 남겨두고 싶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다른 선택의 순간에 흔들릴 수 있는 나 자신을 위해서 말이죠. 적어도 다른 문제로 흔들릴 때 지금의 경험을 참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글을 마무리하며 꼭 전해드리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결단이 있고 며칠이 흐른 후에야 행동으로 옮기는 저와 같이, 더 이상 흔들리지 마시고 마음고생하지 말라는 의미에서 꼭 말하고 싶습니다.
남이 말하는 판단을 너무 귀담아듣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게 가족이든, 10년 이상 알고 지낸 친구든 누구의 말이든 말이죠. 지금에서야 글을 적으며 돌아보니, 30살 넘게 살면서 마주한 반대의 목소리를 낸 주체들은 실제로 해본 적 없는 사람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위에서 말한 경험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모든 상황이 완벽하지 않을 것이고, 그들 말대로 x나 망할 수 있습니다. 엄청 고통스러울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 앞에서 체면이 안 서고 기가 죽을 수 있습니다.
지금보다 10년 더, 어제와 같은 생각과 일을 한다고 해서 성장이 쉬워질까요?
15년이 흐른다면 자동으로 성장이 나타날까요?
60세 정년퇴직한다고 해서 새로운 성장의 길이 보장될까요?
부디 오늘 제가 적은 솔직함이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 미국의 스포츠용품 제조회사 "나이키"가 그러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