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봉인상에 따른 급여. 공과금 뭐뭐 내고 나니까 통장이 텅장이 되어버리는 웃픈 현실이 결코 웃을 수 없음을 알게 되어버린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현재를 살아가는 생활비는 어찌저찌 내고 살겠는데, 미래를 위한 준비를 제대로 할 수 없음에 한탄을 하다가 극도로 아끼는 방식으로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해보는 데도 어떤 순간에는 깊은 좌절이 따라왔다.
비교는 배고픔을 달고다니는 귀신이다. 가끔씩 도심으로 외출을 하는 날이면 나랑은 다른 세계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씀씀이를 보고 헛헛한 지갑에 뜨거운 입김으로 후후 불어본다. 먹고 싶은 것에 앞서 가격표를 보고 있으니 과연 나는 언제쯤 기적을 만날 수 있을까, 심연 속에서 나를 삼켜버리는 우울이 찾아오기도 했다.
용산 이마트를 가는 날이다. 맨날 동네 마트에서 할인된 식재료와 먹거리만 찾다가, 편의점을 100개 이상을 합친 것과 같은 이마트에 가는 날이면 금방 바닥이 나버릴 수 있는 지갑에 대한 걱정과, 이 많은 것 중에서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먹고 싶은 것을 찾을 수 있으리라 희망을 품어본다.
아, 비싸다. 저녁을 지나 한밤중에 최대한 마감세일 상품 노리려고 왔건만, 툭툭 떨어지지 않는 가격표에 애간장만 태우고 있다. 마트 초입에 있던 플라스틱 바구니에 이것저것 담은 것 같은데 그 중에서 절반은 다시 원래 위치로 돌려둔다. 내 손에 왔을 때는 내 것만 같았지만 다시 매대로 향하게 되는 그 운명에서 손떨림도 있다.
이것저것 재고 따지고 내가 부담이 없을 만큼 가격에서 오늘의 이마트 장보기를 마쳤다.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창가 자리에 앉아 화려하게 빛나는 거리 위 불빛을 바라본다. 예전에 이모가 힘든 형편에 종교에 매달리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데, 종교라는 선입견을 넘어서 간절함이 스멀스멀 보이는 것은 나 또한 어렵게 사는가보다. 아니, 어쩌면 우리는 어렵게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옆 사람도, 길 위에 저 사람도.
서울역을 지나는 곳에서 신호가 걸렸다. 고개를 조금 더 돌려서 불과 얼마 전까지 일을 하던 구역에 시선이 머문다. 아득바득 살아남겠다고 이것저것을 하던 청년은 하루의 배고픔을 남대문시장 5000원 국수 한 그릇으로 버티는 날도 있었다. 돈이 좀 들어온 날이면 서울역 근처 직장인 식당가 가서 따뜻한 밥을 먹고서 다음 일을 하러 갔었다. 10원, 1원 단위까지 계산해서 살아갔고 손 떨리는 돈을 지출하는 날이면 잠을 자지 못 했다.
다시 버스가 출발한다. 숭례문을 지나 외국인 관광객 많은 명동으로 들어서는 버스 차창에 비친 나는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그토록 바라던 기적이란 없을 거라고, 사실 나에게 기적이 일어나고 있었는데도 미처 알지 못 했음을. 나의 삶 자체가 기적임을.
쪽방촌 개미굴 같은 허름한 폐가 가까운 곳에서 바닥을 짚고 일어나고 있었다. 지금 역시 어렵지만 하늘을 바라보고 숨도 쉴 수 있다. 방금 전 이마트에서 가격표와 눈싸움을 해대고 있었지만 적어도 이마트를 가는 여유까지 가지게 된 것은 아닌가. 자주는 아니지만 한 달에 한 번쯤은 갈 수 있다.
꽁꽁 얼어붙은 땅에서 껌딱지를 떼고 남들이 가래침까지 뱉고 간 쓰레기통을 치우면서 돈을 벌었다. 아침잠이 많아 새벽에 일어나는 것이 곤욕이었고, 일터 근처 버스정류장에서 내리면 허겁지겁 달리기 시작했다. 뒤도 옆도 볼 수 없이 달렸다, 사무실 건물 청소일 출근카드에 지각을 찍지 않기 위해서.
그래도 이제는 쉬는 날이 있으면 내가 좋아하는 아침잠을 푹 잘 수 있지 않은가. 15인 정원 엘리베이터 안에 꽉찬 직장인을 마주보고 청소기와 대걸레 물받이를 들고 얼굴을 붉히는 일은 없지 않은가. 휴일 만큼은 조금 늦게 일어나 평화롭게 청소기를 돌리는 여유가 있지 않은가.
굶주린 배를 부여잡고 비상계단을 통해 8층, 10층 층들을 오르내리며 배고픔을 잊으려고 했던 날에는 오늘을 꿈꿀 수 없었다. 기적이다. 기적.
그래, 알았다. 나 또한 기적이 있었다. 지금 이 순간 역시 기적이다. 옛날이면 눈치 보느라 하고 싶은 말도 못 하는 나는, 이제는 거친 말과 함께 화도 낼 수 있다. 기적이다. 햄버거를 좋아해서 유명 프랜차이즈 햄버거 가게 들어가, 미친 물가를 보고서 놀라버렸다. 키오스크를 등지고 나왔다. 하지만 지금은 집에서 간식으로 먹을 수 있는 냉동 햄버거도 사왔다. 기적이다. 기적이야.
기적은 이미 내게 일어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