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트루먼쇼" 세트장 나온 트루먼 버뱅크는 어떻게 살까?
퇴근 후 지하철역에 서 있었습니다. 스크린 도어로 비추는 내 얼굴을 보니 오늘 하루가 얼마나 고달팠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푸석해진 머리카락, 컴퓨터 전자파에서 지켜내느라 녹아내린 듯한 선크림, 양쪽 두 손은 호주머니에 손 넣고 짝다리를 짚고 있었습니다.
최대한 빠르게 환승하겠다는 각오가 담긴 내 위치. 00역 4-3 플랫폼. 오른쪽 개찰구로 이어지는 계단에는 수많은 직장인이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만약 4-3 플랫폼을 찾는다면 미안합니다. 다음 열차에서 손님이 내린 후, 4-3 플랫폼에서 가장 먼저 탑승할 사람은 바로 나입니다. 피곤하니 양보는 미루겠습니다.
다음 열차가 앞 역에서 출발했다고 합니다. 대략 2분 정도 걸리겠군. 라면에 날계란을 푸는 순간처럼 적절한 타이밍에 열차가 내 앞에 도착했으면 좋겠습니다. 특유의 조급함은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모르겠습니다.
열차가 역으로 들어오는 모습이 보입니다. 왼손에서 부르르 떨립니다.
잠금화면에 비춘 이름 세 글자. 언제 어디서 봤더라. 오랜만이네.
스크린도어 앞에 멈춘 열차는 한눈에 봐도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열차 내부에서 전화는 못할 것 같습니다. 에잇, 좋다. 우선 통화하고 다음 열차를 기다려보자. 어딘가 모르게 화나 보이는 승객, 내 뒤에서 열차를 타기 위해 기다리는 다른 사람에게 탑승 길을 양보합니다. 먼저 타세요. 저는 다음 열차를 타겠습니다.
전화 알림 진동이 5번 울리기 전 수화기 너머로 반가운 목소리가 들립니다. 어이, 오랜만이야. 잘 지냈어? 온갖 고난을 함께 나누었던 전 직장동료 목소리입니다. 비효율적인 야근에 짜장면 한 그릇으로 서러움을 달래던 나의 전우. 찌그러진 깡통처럼 누군가에게 깨진 날이면 어김없이 군만두까지 같이 먹던 사이. 바로 그 직원, 아니 그 친구였습니다. 이야, 이게 누구야. 어! 잘 지내고 있어. 어떻게 지내?
벌써 6개월이 넘은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짜장면과 군만두를 같이 먹었던 날. 어김없이 회사 일로 바빴던 그날. 우리는 불어 터진 짜장면을 앞두고 컴퓨터 앞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마지막으로 회사에서 같이 먹는 저녁식사라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무엇을 먹느냐- 보다 누구랑 먹느냐- 그게 중요한 게 아닐까요? 저녁 8시 넘은 시간, 사무실 한 구석만 비추는 불빛이 짜장면과 군만두를 맛깔나게 비추고 있었습니다. 중국집 주방에서 방금 나온 음식인 것처럼, 그리고 오늘 첫끼인 것 마냥 맛있게 먹었습니다. 아마도 그 직장동료와 같이 먹었기 때문이겠죠.
6성급 호텔 뷔페보다 짜장면과 군만두가 잘 어울리던 직장동료와의 관계. 그에게 연락이 온 것입니다. 퇴사자이자 전 직장동료인 그와 항상 같이 먹던 아지트는 말끔하게 치워져 버린 지 오래였지만 말이죠. 마치 여기서 짜장면과 군만두를 먹었던 적이 없었던 것처럼. 추억을 안주삼을 무렵, 그에게 연락이 온 것이었습니다.
전화기 너머 들리는 전 직장동료 목소리는 무척이나 반가웠습니다.
10년 만에 다시 만나는 학교 동창처럼. 내심 기다렸던 사람이 바로 눈앞에 나타난 것처럼.
새로운 직장에서 잘 적응하도록 돕는 게 예의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일단 전 직장동료가 새 직장에서 자리를 잡을 때까지는, 구 직장동료로서 '사람 대 사람'으로서의 연락이라도 삼가는 게 좋겠다고 판단하였습니다. 그런데 먼저 연락을 주니 고마웠습니다.
오랜만에 연락하는 친구처럼 우리는 서로 근황을 주고받았습니다. 직장이 달라졌으니 서로 관심분야에 대한 공통분모가 없어 서먹할 것만 같았는데 여전히 통하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전 직장동료는 새 직장에서 신입으로 다시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매일 만나는 사람이 달라지고, 커리어 측면에서 공부해야 하는 것이 달라졌다고 합니다. 퇴근하면 자취방에서 신입으로서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자 시간을 보낸다고 했습니다. 누구나 적용할 시간이 필요하듯이 새 직장 문화에 적응하기 위해 하루하루 열심히 살고 있었습니다.
저는 여전히 짜장면과 군만두를 함께 먹던 직장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비록 이제는 짜장면과 군만두를 같이 먹을 수 있는 동료는 없지만, 공과 사를 구분하여 맡은 바에서 성과를 내기 위해 매일매일 열심히 일하고 있었습니다. 적어도 몸 담고 있는 곳은 여기이고, 내가 해야 할 일을 해내는 게 직장인 도리이기에.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는 건 공통점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새 직장에서 전 직장동료가 그동안 누리지 못한 혜택을 받는다고 생각하니 마냥 기뻤습니다. 그는 그럴만한 자격이 충분히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저는 다음 열차, 다음 열차, 다른 다음 열차를 보내버렸습니다. 아, 안 되겠다. 지하철 플랫폼에서 통화하는 게 쉽지 않겠다고 판단, 지하철 개찰구로 다시 나왔습니다. 빌딩 숲은 사무실 불빛으로 가득했습니다. (수고 많으십니다)
스마트폰을 들고 정처 없이 밤거리를 떠돌았습니다. 포장마차에서 새어 나오는 오뎅국물의 영롱한 자태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새 직장에 대한 전 직장동료 이야기는 튀김범벅 떡볶이보다 맛있었습니다. 스마트폰은 슈크림 붕어빵만큼 뜨거운 열기를 전달하고 있었습니다.
신중한 고민 끝에 내린 퇴사 결정. 저는 전 직장동료를 열렬히 응원했습니다. 스스로 내린 결정은 그 자체로 존경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인사고과 따위가 그 결정의 경중을 평가할 수 없으며, 함께 일한 적 있다고 모든 것을 안다고 예단하려는 동료의 판단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통화한 지 20분이 지났을까요? 새 직장에 대한 좋은 점만 아니라, 그에 못지않게 좋지 않은 점을 털어놓기 시작하였습니다. 전 직장동료 목소리에서는 확고한 의지 뒤에 숨겨진 불안이 느껴졌습니다.
신입치고는 상대적으로 나이가 많다, 입사 동기보다 배우는 속도가 느린 것 같다 등
영화 "트루먼 쇼"에서는 작은 섬에서 평범한 삶을 사는 30세 보험회사원 트루먼 버뱅크가 나옵니다. 트루먼 버뱅크는 아내와 홀어머니를 모시고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냅니다.
하지만 그 행복도 잠시, 합리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일들을 마주하게 됩니다. 죽은 아버지를 만나고 라디오 주파수를 맞추다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이 라디오에 생중계되는 기이한 일들을 연이어 겪게 됩니다.
지난 30년간 일상이라고 믿었던 모든 것들이 어딘가 이상하다고 느낀 트루먼 버뱅크는 의심을 품기 시작합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이 가짜인 '트루먼 쇼'를 벗어나고자 결심합니다.
"언제나 떠날 수 있지만 그러려고 하지 않았어. 마음만 먹으면 진실을 알 수 있는데도 시도하지 않았지."
- 영화 트루먼 쇼 -
결말이 궁금한 분이라면 영화 "트루먼 쇼"를 관람하시길 바랍니다. 밤 9시가 훌쩍 넘은 시각, 여전히 저는 전 직장동료와 통화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영화 "트루먼 쇼" 속 트루먼 버뱅크가 트루먼 쇼 세트장을 떠난 다음에는 어떻게 살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상상해봤습니다. 어쩌면 모든 게 트루먼 버뱅크 행복을 위해 계획된 트루먼 쇼 세트장과 다른 현실을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마냥 행복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세트장 안에서 사는 방법 외,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배운 적이 없으니 매순간이 연속되는 시행착오 순간일 수 있을 것입니다.
행복 외 다양한 감정을 느끼게 하는 현실을 마주한 트루먼 버뱅크, 그는 다시 세트장으로 돌아올까요? 아니면 걱정과 불안으로 가득한 인생을 계속해서 살아갈까요?
"우리는 진짜 현실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저 우리 눈앞에 보여지는 세상만을 진짜 현실로 착각할 뿐이다."
- 영화 트루먼 쇼 -
전 직장동료 인생에서 우정출연 차, 조연으로 출연한 사람 입장에서 해줄 수 있는 배역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트루먼 쇼 계획한 크리스토퍼와 다른 선택을 하는 것이지요. 바로 트루먼 버뱅크를 조종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자유를 찾을 수 있도록 응원을 보내는 것입니다.
트루먼 버뱅크가 물에 대한 공포심을 이길 수 있도록,
트루먼 버뱅크가 첫사랑 '실비아'를 찾아 피지 섬으로 떠날 수 있도록,
트루먼 버뱅크가 바다 위에서 풍랑을 넘어서 나아갈 수 있도록.
응원하는 것이 저의 역할이었습니다. 한참 듣고 있던 저는 한 마디를 전했습니다.
"00씨가 한 선택은 옳은 거야. 인생에는 정답이 없으니까."
"처음부터 자전거를 잘 타는 사람은 없어. 익숙해질 거야. 숙달될 거야."
충분한 자질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만약 도전하지 않고 여전히 나랑 같이 짜장면과 군만두를 먹으려고 한다면 더 이상 같이 먹지 않았을 것이라고. 그리고 언젠가 후회하고 있었을 거라고, 하지 않은 일에 대하여.
평소와 다른 말투에 놀랐는지 전 직장동료는 잠자코 듣고 있었습니다. 정확한 위치는 모르지만 전화기 너머 풀벌레 소리가 들렸습니다. 한참 동안 듣던 동료가 말했습니다.
"음, 이제 다시 들어가 보려고요, 아, 그리고 또 연락해도 되죠?!"
언제든지 환영이라고 답해주었습니다. 트루먼 버뱅크는 세트장 밖에서 살아가기로 선택하였습니다. 전 직장동료는 스스로 선택한 길을 계속해서 나아가기로 한 게 분명했습니다. 저의 조연 역할은 잘 마무리한 것 같습니다.
전 직장동료와의 통화가 있고 나서 며칠 후, 직장에서 선・후배들이 '전 직장동료'에 대해 궁금해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마치 영화 트루먼 쇼에서 트루먼 버뱅크가 세트장을 나왔을 때 전 세계 사람들의 반응처럼.
저는 조용히 웃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트루먼 쇼 세트장에 있는 그 누구도 나의 숨겨진 배역을 알지 못했으리라. 오피스 빌딩 숲 사이사이로 떠돌던 그날 밤에 대한 특별한 대화는 눈치채지 못했으리라.
만약 한국판으로 영화 트루먼 쇼가 리메이크되어 나온다면 저 자신과 전 직장동료 씬은 짜장면과 군만두를 먹는 장면만 나올 것입니다. 영화관 스크린 너머 관객은 짜장면과 군만두에 대한 군침만 흘릴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전 직장동료와 저는 알고 있습니다. 짜장면과 군만두로 포장된 그 시간 동안 트루먼 쇼 세트장 밖으로 펼쳐지는 꿈을 서로 응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죠.
구 여친, 구 남친처럼 '자니?'를 시전한 전 직장동료 케이스는 저 또한 처음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경험을 계기로 누구보다도 열렬히 '스스로 선택한 자'에 대한 꿈을 응원해주는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필요한 건, 어쩌면 천만 관객이 아니라 나의 길을 지켜봐 줄 단 한 명의 관객일지 모르니 말이죠.
진심으로 들어주고 이해해주고 믿어줄 단 한 사람.
트루먼 버뱅크에게 모든 게 '쇼'라고 말한 첫사랑 같은 존재.
며칠 전, 또 다른 전 직장동료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항상 직설적이었던 성향이 강한 후배라서 바로 본론부터 이야기하더군요. 위에서 말한 전 직장동료와 유사한 케이스였습니다. 한참 걱정거리를 들어주고 나서 3가지 문장을 소리 내어 말해주었습니다.
"00, 너는 대단해!"
"00, 너는 똑똑해!"
"00, 너는 잘할 수 있어!"
두 명의 전 직장동료는 구 여친, 구 남친이 아닙니다. 아직도 제 핸드폰으로 연락하면, 명확한 발신자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목소리 들으며 통화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얼굴 보기로 하고 일정까지 잡고 있습니다.
만약 누군가 저에게 트루먼 버뱅크의 후속 이야기를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하고 싶습니다. "(당신이 알고 있는) 트루먼 버뱅크는 트루먼 버뱅크 자신의 소신대로 잘 살고 있을 것입니다."
나가면 망한다, 때려치우면 불행한 노숙자가 된다. 글쎄요, 꼭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위에서 언급된 두 명의 전 직장동료처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닐까요?
(의외로 전 직장동료이자 퇴사자인 친구가 그러던데요? 이건 스스로 선택한 일에서 오는 행복한 불안이야)
영화 트루먼 쇼에서 짐 캐리 명대사로 글을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Oh, in case I don't see you, Good afternoon, Good evening, and Good night."
"못 볼지로 모르니 미리 인사하죠. 굿 애프터눈, 굿 이브닝, 굿 나이트."
- 영화 트루먼 쇼 -
평일 오후라면 모든 사람이 무조건 책상 앞에 있어야 한다고, 누가 그러던가.
이처럼 평일 오후에 즐기는 산책은 여유롭고 평화로울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