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 당신을 얕잡아보는 사람에게 맞서는 당신을 위한 글. 나를 위한 객기.

by 스톤처럼

밤 9시가 넘은 시각. 마라톤 풀코스 완주로 만신창이가 된 몸을 이끌고 귀가하는 길. 마라톤 대회 참가를 위한 2박 3일 일정. 그 끝의 어딘가에 있었습니다. 주머니에서 완주 메달의 무게가 느껴졌습니다. 그 알 수 없는 무게감, 삶을 다시 쪼여오는 긴장감이 좋았습니다.


얼마나 지났을까요? 10명 남짓한 지하철 칸에 앉아 있었습니다. 만약 지인이 저의 초췌한 몰골을 봤다면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머리부터 발끝까지 엉망진창. 하지만 어딘가 빛나는 작은 구석의 무언가. 보이지 않는 그것을 볼 수 있을까요? 쉽지 않겠죠.


공상에 공상을 거쳐 지난 마라톤을 돌아보고 있을 때 지하철 문이 열렸습니다. 어느 한 사람이 지하철에 올라탔습니다. 마주하기 어색한 인연이 만약 있다면 퇴사한 직장 상사일 겁니다. 지금 그분이 맞은편 자리에 앉았습니다. 워낙 초췌한 몰골로 있어서, 항상 단정한 모습으로 일하던 저만 기억하고 있을 그 상사는 나를 알아봤을까요? 어쨌든 저는 그분을 알아봤습니다.


퇴사 이후 전 직장동료를 마주친 경우는 처음이 아닙니다. 대체로 웃으면서 서로 앞날을 축복해주고 작별하였습니다. 하지만 며칠 전 그날, 그날의 눈빛은 잊을 수 없습니다. '그래, 어디 나가더니 잘 살고 있어? 죽을 맛이지? 꼴을 보아하니 별 수 없었나 보군.' 이렇게 말하는 것처럼 보이는 그 눈길. 겉모습으로 근황을 파악하려는 그 눈빛. 이상하게 오기가 생기더라고요. 그 시선을 피해 도망가고 싶지도, 그 눈빛이 보지 못 하는 곳으로 숨어버리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저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이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온몸에서 근육통이 있었지만 그런 불편한 몸을 부여잡고 정자세로 앉아서 개인 용무를 봤습니다. 그분이 보든 말든. 보이지 않는 그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퇴사 후 저는 회사 다닐 때보다 일을 많이 할 때가 훨씬 많고, 퇴사 전 기대보다 가혹한 현실에서 살아남기 위해 힘들지만 보람찬 하루를 보내고 있으며, 활활 타오른 후 희미해지다가 다시 타오르기를 반복하는 그 소신으로 아득바득 현실을 살아가는 힘을 키우고 있습니다. 한때 퇴사 후 회사 방향으로 뒤돌아본 적도 있지만 오늘도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는. 그런 프리랜서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허비하는 시간에 대한 소중함을 알고, 어떻게든 그 시간들까지도 사수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퇴사한다고 하였을 때 뒤에서 얕잡아 보셨을지 모르겠지만, 저 역시도 예상하지 못한 길 위에서 오늘 하루를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만약 그날 초췌한 모습으로 '퇴사 후 모습'에 대해 전부 파악했다고 생각하신다면 굳이 납득시키고 싶지 않습니다. 그 순간 납득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조차 변명처럼 보입니다. 이번 마라톤 완주 역시 '넌 못 해' '왜 무리해' 그런 목소리 가운데서 이루어낸 성과입니다. 완주는 저를 좋아해 주는 분과 약속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약속을 지켰습니다. 10번 100번 넘게 포기하고 싶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해냈습니다.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아무런 말도 못 하던 그 여린 직원이 한층 더 컸습니다.


네, 그 자리에서 보이시지 않겠지만 느려도 분명히 내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공적들을 빼앗지 않으며, 다른 사람들을 이용해서 자신의 이윤을 챙기지 않고, 무식하고 단순해 보이지만 나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내가 속한 세상이 아니라, 우리가 사는 세상이 정말 크고 넓다는 것을 체감하고 있습니다.


다음에도 피하지 않겠습니다. 덕분에 새로운 동기부여를 받았습니다. 열심히 살겠습니다. 퇴사할 줄 아는 패기가 사라지지 않도록, 뻔한 하루는 없어지도록, 가슴 뛰는 일을 하면서 살겠습니다. 오늘의 글은 가슴 한편에서 부글부글 끊기 시작한 감정의 표현입니다. 활활 불태우겠습니다. 그 감정이 건설적으로 표현되도록 달리겠습니다. 그 자리에서 이 모습을 보실 때까지 건강히 잘 지내십시오. 감사합니다.



ps. 막 퇴사한 모든 이들을 위해, 당신을 얕잡아보는 사람에게 맞서는 당신을 위해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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