놓치고 싶지 않은 내 인생, 나는 나 자신으로 살겠다고 결단했다.
점심을 먹고 커피 수혈한 후 각자 자기가 해야 할 일로 바쁜 평범한 어느 오후, 직장 동료 (이하 'A군')가 그의 상사에게 또박또박 말하고 있었습니다. 자판 두드리는 소리, 전화기로 약간의 기계적인 언성이 오가는 사무실, 저 멀리서 들리는 프린트 출력음 등. 인간미가 다소 결여된 업무환경에서 A군의 목소리는 명료하고 결의에 차 있었습니다.
두 번째 의사표현에 사무실 시간은 일시적으로 정지하였습니다. 그 공간에 있던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회사'라는 인격체를 위해 하던 일을 멈추고 소리의 근원을 찾기 시작하였습니다. 몇몇은 옆 자리 동료의 얼굴을 살펴보았고, 또 다른 몇몇은 파티션 너머로 콩나물처럼 일어서 고개를 내밀고 있었습니다. 사무실이 넓지 않은지라 '걸어서 5분 컷'이라는 거리에 서 있는 A군을 발견하는 건 어렵지 않았습니다.
사무실이란 세상의 이목이 집중되는 줄도 모르고, A군의 상사는 25년간의 직장생활에서 겪은 경험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너 같은 직원은 내 25년의 직장생활에서 질리도록 봤다' '하지만 매번 익숙하지 않구먼' 만감이 교차해 보이는 A군의 상사 표정은 묘하게 보이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다시 한번 A군은 의사를 반복해서 말합니다.
이어서, A군은 군더더기 없는 어조로 그만두고자 하는 이유와 향후 계획, 그리고 자신을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이 오기까지의 인수인계 약속을 밝혔습니다. 단단한 바위에 바늘구멍 찾기란 거의 불가능한 것처럼, 제 3자가 듣더라도 거절할 수 없는 A군의 의사표현은 확고하였습니다.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처럼 강한 의사표현으로 생긴 사내 어색한 기류를 뒤로 하고, 그날 A군은 사직서를 쓰고 인사팀을 통해 퇴직 인사발령을 의뢰하였습니다. 7년간 머물던 그의 자리에서 인수인계를 작성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손가락 하나하나가 의사표현을 하듯이 담담히 눌리는 키보트 버튼음. 그리고 더 이상의 말을 요구하지 않는 분위기 속에서 우리는 각자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일을 재개하였습니다.
그날(A군의 퇴사 선언이 있던 날)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습니다. A군의 퇴사 선언 외, 다른 건 튀지 않는 평범한 하루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평소와 같이 퇴근하였습니다.
하지만 A군의 퇴사 이후, 남아있던 사람들은 크게 두 가지 반응을 보이기 시작하였습니다. 마치 '너와 나의 이야기'는 아닌 '그 외 다른 사람'에 대해 이야기할 때, 오지랖 많은 동네 사람들이 보이는 것처럼.
하나는 '낌새가 있었다' '나는 (A군이) 그럴 줄 알았다' '그 정도 능력이면 나 같아도 퇴사한다' 등 A군의 평소 행실에 대해 험담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나이 많은 상사분들의 입에서는 'A군은 강점이 하나도 없었다' '지난번 엎어진 프로젝트는 A군의 책임이 크다'부터, 보다 어린 실무진의 입에서는 '평소 A군이 아웃사이더에 혼자 지내는 걸 좋아했다' '별로 친하지도 않았다' '세상이 그리 만만한 줄 아나' '드라마 미생이 떠오르네.. 회사가 전쟁터라면 사회는 지옥이라잖아' 등 근거 없는 말들이 난무하였습니다.
심지어 업무적인 특성으로 A군을 몰랐던 사람조차, A군에 대해 평가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과연 A군과 대화는 한번 해봤을까?'라고 생각되는 사람조차 A군을 거론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다른 한 그룹은 인생무상 허무주의에 빠져 나날이 무기력해졌습니다. 그들은 A군과 자신을 끊임없이 비교하고 있었습니다. 그 현상은 A군보다 오랫동안 회사를 다닌 사람일수록 심해졌습니다. 'A군이 준비하는 동안 나는 무엇을 했지?' '나도 (A군처럼) 시간이 있었는데,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았구나' '나도 준비 좀 할걸' 등.
그리고 노래방에서 들리는 코러스처럼 항상 A군과의 비교가 끝난 후, 연거푸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본인의 업무에 대해 불평하는 소리도 늘어났습니다. 스스로 아무것도 하기 싫은 사람으로 간주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일을 하고 싶어서'라고 생각하며 일하는 모습은 찾기 어려웠습니다. 오히려 '지금은 이직할 곳이 없어서'라고 생각하며 어쩔 수 없이 일하는 모습은 드문드문 보였습니다.
한숨 소리는 사람 간 전염됩니다. 왼쪽 구석에서의 한숨 소리는 사무실 중앙을 거쳐, 정반대인 오른쪽 구석자리까지 퍼졌습니다. 한숨 확진자가 늘어가기 시작하였습니다.
사무실 천장에 달린 LED 등보다, 파란색으로 도배된 주식 앱이 켜져 있는 모바일 액정 빛이 더 중요한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몇몇은 "인생 한방" 주의를 모토로 삼으며 인터넷을 뒤적이기 시작하였습니다. 마치 이 회사를 떠나버린 A군과 보이지 않는 경쟁을 하는 것처럼. 그리고 본인 또한 A군 못지않게 뛰어나기에 언제든지 우월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믿는 것처럼.
저는 비슷하면서도 서로 다른 두 그룹을 가만히 지켜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말하였습니다. 절대 그들과 같은 모습으로 살아가기 싫다고 말이죠. 적어도 A군을 열렬히 응원하였습니다. 나는 A군을 잘 모르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남다른 노력이 있었기에 얻은 결과이고 남다른 희생을 인내하였기에 충분히 누릴 자격이 있다고 말이죠.
저는 마음 한 구석에서 그 직원(A군)에게 고마운 마음도 느끼고 있었습니다. 여기 현장에 있는 사람들의 일상을 지배하고 있는 이곳이, '나'라는 사람보다 위대할 수 없다는 걸 몸소 증명해서 보여줬으니까. 세상의 주인공은 '나'라는 사람이라는 점을 확신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으니까. 군중심리로 모두가 A군의 퇴사 사건을 비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나 같은 사람은 A군이 선택한 길을 믿고 있으니까.
평소 가볍게 인사 정도를 하고 지냈던 사이라 안면은 있었습니다. 그래서 남 모르게 A군에게 조용히 문자 한 통을 보냈습니다. 길게 말할 것도 없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와 저는 통하는 게 있다고 믿었습니다.
몇 초가 흘렀을까. A군의 답장이 도착했습니다.
2000년대 문자 한 통을 받고 설레었던 시절로 돌아가, 아무도 없는 복도에서 조용히 웃었습니다. 영화 "쇼생크 탈출" 속 앤디와 레드처럼.
이번 경험을 통해 크게 깨달은 바가 있습니다. 누군가의 잘된 모습을 보며 축하해주는 사람보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 더 많을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의외로 사람들은 쉽게 그런 상대를 헐뜯거나, 스스로의 자책에 지쳐 쉽게 무기력에 빠진다는 점을.
위에서 이야기한 두 그룹을 실제로 보니 이상한 감정이 들었습니다.
고이지 않으려면 끊임없이 변화해야 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변화의 방향은 자신을 향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야 후회라는 친구를 불러들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런 퇴사 목격 썰은 누군가에게 듣고 책이나 유튜브를 통해서 접할 수 있습니다. 개인적인 경험으로 직접 두 눈으로 보고 듣고 경험하니 스스로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나 또한, 이곳에서의 데드라인을 정해야겠다고 말이죠. 그렇게 남들은 별로 반기지 않을 데드라인을 정해도 괜찮다고 말이죠. '라떼 스무 잔'으로 인생 갑질을 당하도록 스스로가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존재는 나 자신이 유일하니까. 적어도 내가 원하는 인생을 살아가는 데 응원해 줄 사람 1명 (나 자신)은 확보했으니까. (나만의 데드라인을 지키기 위해 "현재 있는 이곳"이 없는 미래의 계획을 세우고 도전할 것입니다)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만약 이 글을 읽고 계신 여러분도 저와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된다면 어떤 사람이 되고 싶나요?
1. 사실인지 아닌지도 모르는 의견을 바탕으로 A군에 대해 험담하는 사람?
2. A군의 결과만 보고 자기 자신과 끝없는 비교로 인해 무기력에 젖어서 한탄만 하는 사람?
아니면.
3. 축하와 동시에 앞으로 걷고자 하는 길을 입증해 준 A군에게 진심으로 감사함을 표현할 수 있는 사람?
정답은 이미 여러분 안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