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급장 떼고, 나의 가치를 증명하였다. 나는 행복했다. 동시에 불안했다.
어제와 다르지 않은 퇴근길.
누군가의 퇴근과 동시에, 반대 방향으로 출근하는 사람들로 붐비는 동네 지하철역.
동네 지하철역 3번 출구로 나오면 보이는 경사 45도가 좀 되지 않은 언덕길.
지하철역에서 마을버스로 환승이 되지만 평소처럼 걷습니다.
언덕길 초입에 있는 빵집과 재래시장, 분식집을 지납니다.
최근에 생긴 와인 샵을 지나고, 뻥튀기 과자 판매점을 지나고, 종종 방문하던 카페를 지나고.
저녁을 먹기 전이라 힘 빠진 걸음걸이로 한 걸음 한 걸음을 내딛습니다.
속된 말로 뺑뺑이 학군이라고, 우리 이웃주민의 자녀분들이 많이 다니는 중학교 앞에서 좌회전합니다.
무인 아이스크림 판매점에서 유혹을 당할 뻔 하지만, 다이어트 중이라 어렵사리 유혹에 빠져나옵니다.
경사 45도가 좀 넘는 듯한 두 번째 언덕길을 지나야 집으로 갈 수 있습니다.
공동현관 비밀번호를 누르고 엘리베이터 앞에 섰습니다.
나를 반겨주기 위해 달려오는 엘리베이터는 아무런 대화 없이 '나 여기 있어요'라고, 내가 알아봐 주길 바라듯이 층수를 연이어 내보입니다.
집 앞 현관 앞, 캄캄하던 핸드폰 잠금화면에서 알림이 울립니다.
'어? 벌써 시간이 그렇게 지났나?'
※ 영상 속 위치 : 응봉산 (서울 성동구 응봉동)
최근 저는 웰씽킹 백일장에 참여하였습니다. 눈물과 웃음으로 범벅된 성찰을 거쳐 혼신을 다해 키보드 위에 모든 것을 쏟아냈었습니다. 탁상 옆에 있는 달력에 지원한 일자를 표시하였습니다. '작년 한 해 수고했다'
백일장 지원 후 3일이 흘렀을까. 다시 차분한 일상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잊고 지냈습니다. 같은 시간에 출근하였습니다. 비슷한 시간에 퇴근하였습니다. 그날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무탈하게 하루를 마무리하려던 시간, "웰씽킹 백일장 시상식" 유튜브 알림을 접하게 된 겁니다.
빠른 저녁식사와 함께 시상식에 참여할 준비를 마치고 노트북을 열었습니다. 시상식에서는 켈리 회장님께서 950명에 대한 성장을 격려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알지 못하였던 비하인드 스토리를 이야기해주셨습니다.
결과보다 과정에 집중하는 타입이었지만, 시상자 명단에서 눈을 떼지 못하였습니다. 동시에 켈리 회장님께서 낭독해준 켈리스의 성장 스토리들을 들으며, 한 줄 한 줄에 존재할 수 있었고 감동하고 또 감사하였습니다.
'나는 얼마나 많은 것을 누리고 살았는지'
'얼굴 한번 본 적 없지만 긍정적인 에너지를 나눌 수 있구나'
'어제와 오늘은 또 다르구나'
꿈 대표 켈리스 상 100명
창의 톡톡상 20명
'와, 정말 대단한 분들이 많구나. 이렇게 많은 분과 소통할 수 있어서 감사해.'
'아쉽지만 다음번에도 도전해야지.'
한동안 잊고 지낸 터라 120명으로 시상식이 끝난 줄 알았습니다. 진심으로 시상하신 분들을 축하드렸습니다. 그리고 노트북을 덮으려던 찰나, 이어서 최종 후보자 5명에 대해 시상한다는 말씀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래, 남은 5분도 진심으로 축하해주고 싶어. 그리고 어떤 경험을 가진 분들인지 궁금해.'
1000명이 넘는 라이브에서 드디어 5명이 발표되었습니다.
동그라니 모양의 프로필 5개 사진에서 익숙한 사진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지갑 안에 있는 주민등록증에도 기입되어 있는 이름 석자가 보였습니다.
'?!!!!'
'와.. 나 수상한거야?
'아빠~ 엄마~ 나 수상했어!'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없어 집안 곳곳을 돌아다녔습니다.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습니다. 곧 있음 잠자러 가야 할 시간인데도 불구하고 잠이 확 달아났습니다. '정말 된 거야? 나 정말 된 거야?! 와 정말 됐네!'
개인적으로 백일장 수상은 저에게 큰 의미가 있었습니다. 부자의 사고방식과 생각의 뿌리를 키워가는 길 위에서 하나의 이정표로 존재할 수 있었기에 의미가 있었습니다. 지난 2년 가까운 시간에서 '회사'라는 명함값 빼고, '직장인'이라는 계급장을 떼고, 나 자신에게 스스로를 입증하였기에 의미가 있었습니다.
그렇게 "웰씽킹 백일장 시상식"은 막을 내렸습니다. 기쁨과 행복은 꺼지지 않는 손난로처럼 따뜻했습니다. 하지만 좋지만 않았습니다. 불볕더위 속 아스팔트 위 열기처럼 불안이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정말 대단한 분들이 많은데, 이렇게 수상해도 되는 건가?'
약간의 불안감과 짜릿한 떨림, 긍정적인 행복이 공존하는 시간에서 남은 한 주를 보냈던 것 같습니다. 최종 후보자 5인에 대한 시상식이 있기 전날 밤, 저는 차분해질 필요가 있었습니다.
'지금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귀중한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낼 수 있을까?'
'나는 시상식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어떻게 배우지?'
모두가 잠자러 간 자정 12시, 책상에 앉았습니다. 아슬아슬하게 책상 귀퉁이에 놓인 포스트잇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적기 시작하였습니다. 지금 내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느낌이 드는지 담담히 글자로 표현하였습니다.
15분이 흘렀을까? 조금은 건설적인 방향으로 질문의 맥락이 잡히기 시작하였습니다. '나는 어떤 특징이 있었기에 수상할 수 있었을까?' '나는 어떤 강점을 가지게 된 것일까?' 등 나에 대한 질문에서 다른 사람을 향한 질문까지. 질문에 질문을 이어가는 메모와 낙서.
켈리 회장님의 생각을 듣기도 전인데, 나의 잠재력에 상한선을 두고 싶지 않았습니다. 내가 바라보는 나와, 다른 사람이 알아주는 나는 다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질문에 대한 열린 결말을 마련하고 시상식을 맞이하자고 결심하였습니다.
주중 쌓인 피로를 풀면서 눈을 뜬 일요일 아침, 어제와 오늘 양쪽에 걸쳐둔 메모와 낙서는 고스란히 책상 위에 있었습니다. 일어나자마자 씻지도 않은 상태에서 메모와 낙서를 정리하였습니다. 전쟁의 흔적이 정리될 무렵, 어제와 같이 100번 쓰기를 했습니다. 어제와 같이 아침을 먹었습니다. 하지만 어제와 다른 점이 있었습니다. 불안과 떨림이 고향으로 돌아갔는지 보이지 않았습니다. '불안'과 '떨림'이라는 이름으로 내 안에서 일하는 직원들. 아마도 주중에는 타지에 나와서 고생 좀 했으니, 주말에는 고향에 내려갔다 와도 괜찮지 않을까요?
2월 20일 (일) 오후 9시 시상식에서 켈리 회장님의 조언과 켈리스 분들의 응원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이 봤을 때 오히려 평범할 수 있는 내 이야기에 좋지 않은 반응이 있을 것 같아 불안하였지만, 많은 분께서 공감해주고 응원해주셨습니다. 덕분에 전날 밤의 메모와 낙서를 가지고, 보다 차분하게 시상식에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메모와 낙서. 행복과 동시에 느낀 불안은 한국어를 모르는 관계로, 알 수 없는 외계어로 수다를 떨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통역사를 자칭하여 그들의 언어를 한국어로 종이 위에 표현하였습니다. 그들은 말이 통한다는 걸 알았는지, "노마드핼 전용 통역사" 퇴근과 함께 고향으로 휴가를 떠났습니다.
불안에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기분 좋은 불안과 기분이 좋지 않도록 만드는 불안입니다. 위에서 이야기한 경험처럼 좋은 일로 생기는 불안이 있지만, 인간의 생존에 대한 본능으로 생기는 불안도 있습니다. 불안이 어떤 모습이든, 어쩌면 불안은 한국말을 할 줄 몰라서 괴롭히는 존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한국말로 통역해주면 역이용할 수도 있는 것 같습니다.
웰씽킹 백일장 수상한 것만으로도 이리 기쁜데, 시상식까지의 과정에서 또 하나의 새로운 경험을 얻었습니다. 기분 좋은 불안이 있을 때 어떻게 하면 차분하게 임할 수 있는지, 그리고 감정이란 친구를 어떻게 친구로 만들 수 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신데 곧 있을 일로 불안을 느끼고 계시면 메모와 낙서를 해보세요. 여러분의 불안은 한국말로 통역해줄 누군가를 찾고 있는지도 모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