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색 잎사귀가 베란다 창문 사이로 프리다이빙합니다. 지저귀는 새는 떠나지 않습니다. 나뭇가지 사이 눈부신 햇살도 부르튼 발등을 떠나지 않습니다.
놀이터는 아이들이 떠듭니다. 어머니가 타준 티백으로 우려낸 녹차를 새가 모이 먹듯 모성애를 조금씩 받아먹습니다.
부르튼 발등은 딱지가 아물며 가렵습니다. 언제 부딪혔는지 모르겠는 왼쪽 무릎에는 멍이 들어있습니다. 7부 반바지로 다른 사람 보기 전에 얼른 감춥니다.
주말입니다. 일을 할 때는 고되게 힘들지만 이 '노동'의 장점이 보입니다. 일이 끝나면 끝나는 걸로 그 다음부터 적어도 '일 걱정'에서 해방된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일이 끝나면 누군가가 일 관련해서 연락을 하는 일도 없다는 것입니다.
정수리 훤히 보이도록 머리카락 한 올 남기지 않고 삭발을 한 어머니, 당신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얻었다는 것이 이 일의 가장 큰 장점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이 장점이 이틀 뒤면 다시 일터로 돌아감과 동시에 잠시 사라졌다 다시 돌아오겠지만 이게 얼마나 큰 혜택인지 간병해보지 않으면 모를 것입니다.
가족 중 누군가가 아프기 시작하면 사람은 단순해집니다. 평소 수만 가지 고민,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의 지옥에 갇혀 살아온 사람조차 '단 한 가지' 고민만 남게 됩니다.
오늘 내 가족이 행복하고 건강한가?
좋은 세포 좋지 않은 세포, 말초신경을 태우듯이 치료가 시작됨과 동시에 면역력 저하로 인해 컨디션의 롤러코스터를 눈 앞에서 보고 있으면 '가족의 안녕'이 진정 삶의 목적이 됩니다.
손과 발 뿐만 아니라 피부라 불리는 조직에 '저림' 증상과 함께, 걷기라는 아주 단순한 움직임에서 '내 몸 같지 않은 이물감'을 느끼는 가족을 보고 있으면 돈과 명예는 목소리가 작아집니다.
다이제 비스킷 2000원. 하나 사서 20cm 지름의 그릇에 조심히 담아 나눠 먹습니다.
동네에서 친한 아주머니 해외 여행 이야기, B 경비 아저씨의 은퇴, '이동식 만남의 광장'을 운영하고 계신 요구르트 아주머니 등등. 시시콜콜한 이야기 모두 재밌습니다.
마지막 비스킷 조각 가루가 어머니의 푸른 입술에 묻습니다. 아이처럼 순수한 당신에게서 결혼 전 (지금은 '낭군'이라 핸드폰에 저장된) 아버지와 데이트하던 '남산' 이야기가 나옵니다.
오랜시간 자녀를 키운 사랑에게 안방을 양보하고 장롱 구석에 있던 앨범이 힘없는 두 손에 들려있습니다.
사진 속 주인공은 훗날 있을 일들을 전혀 모른채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물론 옆에서 다이제 비스킷을 같이 먹는 '아들'이 없는 세상이었을테지요.
장발의 남성과 단발의 여성이 남산에서 사진을 찍습니다. 명동에 들려 충무김밥을 먹고요, 걸어서 청계천과 종로 일대를 다닙니다.
눈보다 훨씬 큰 쇠테 안경 뒤로 비춘 남성 얼굴에는 입꼬리가 내려오지 않습니다.
단아하지만 어딘가 개성 또한 있어보이는 여성 눈가에는 미소가 살고 있습니다.
임신했다는 소식과 함께 생계를 위해 삶의 전선에 띄어든 당신, 당신의 아들이 군입대를 하던 날 뒤돌아 몰래 눈물을 훔쳤다는 그 사람들.
일주일 내 손과 발에 긁힌 상처가 많아진 아들 놈의 손을 꼭 잡아줍니다. 오후 1시 방향 감나무에 잎사귀가 청량한 바람을 즐기고 있는 모습, 주름이 자글자글한 얼굴에 미소가 지어집니다.
아들, 오늘 남산 올라갈까?
남산 가서 뭐하고 싶어서요?
그냥 걷고 싶어.
장충동에서 쭉 올라가도 좋고.
괜찮겠어요?
괜찮아.. 체력이 예전 같지 않아도 걸을 순 있어.
걸어요, 우리. 이번에는 셋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