퀘렌시아 변천사 나의 또는 우리의

by 스톤처럼

류시화 시인이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산문집에서 퀘렌시아에 대해 말한 적 있습니다. 사실 이 산문집을 읽고나서 알게 된 존재인데, 설명하는 능력이 부족해 다소 생소한 단어에 모르는 분들을 위해 산문집을 인용하겠습니다.


"투우장 한쪽에는 소가 안전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구역이 있다. 투우수와 싸우다가 지친 소는 자신이 정한 그 장소로 가서 숨을 고르며 힘을 모은다. 기운을 되찾아 계속 싸우기 위해서다. 그곳에 있으면 소는 더 이상 두렵지 않다. 소만 아는 그 자리를 스페인 어로 퀘렌시아(Querencia)라고 부른다. 피난처, 안식처라는 뜻이다." -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류시화 중에서 -


들어오지 마! 문 열지 마! 부끄럽지만 제가 나의 부모, 당신에게 대목을 박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또래보다 뒤늦은 사춘기 여러모로 민감한 자신을 '가족'의 탓으로 돌리던 시절이 있었어요. 당신 또한 당신의 자녀를 처음 보는 입장이라 어쩔 줄 몰라했고, 첫째는 둘째의 본보기. 결국 동생에게까지 전염을 시켰더랬죠.


잘 산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굶지는 않았던 나의 10대는 고스란히 4살 터울 동생에게 '문 열지마!' 시전으로 이어지는, 지금 생각해보면 어처구니없는 사춘기 망나니 아들만의 공간이 있었어요. 작지만 어쨌든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그게 완강한 10대 사춘기 소년의 반항 때문이라 할지라도) 공간이었습니다.


MP3 음악을 크게 틀고 메타인지가 덜 된 탓에 변성기 목소리에 힘껏 노래를 따라 부르며, 부끄럽지만 그 시절에는 나름 잘 부른다고 착각했다는 웃픈 시절, 나의 퀘렌시아는 나의 작고 소박한 방이었습니다.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재능은 없으면서 변성기 목소리로 힘껏 '삑사리'를 내며 방문 근처 누군가 지나가면 극도로 예민해져 누가 들어오지는 않을까 전전긍긍하던 그 공간은 나의 안식처, 퀘렌시아.


집에 보태는 건 없으면서 누군가가 지푸라기와 나뭇가지를 모아 만든 둥지가 영원히 나를 지켜줄 것이라고 믿은 것처럼 20대까지 그 안식처가 이어졌습니다. 간혹 이미 독립하여 살아가는 친구들이 '요즘 어디서 살아? 혼자 살아?'라는 치킨집 뻥뛰기 안주만큼 눅눅한 질문을 던지면 '아니, 부모님이랑 같이 살아'라는 말이 서스럼없이 튀어나오던 모습을 회상하면 얼마나 그 안식처에 의존하고 있었는지 다시금 떠올립니다.


대학교 졸업 후 취직한 직장이 하늘 높이 날아다니는 곳이라 나의 미래도 창창한 하늘처럼 펼쳐질 줄 알았던 20대 청소년에게 코로나19 전례없는 위기와 함께 무급휴직이 이어지는 날은 그 안식처가 더욱더 '퀘렌시아' 같았다는 건 이제야 고백할 수 있습니다. 직장을 다니며 생활비를 보태고 예전처럼 '문 열지마!'라고 소리치는 일은 없어졌지만 저축통장이 점점 바닥으로 치닿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던 날은 잠잘 때 이렇게 등을 기대고 누울 수 있다는 장소에 감사하고, 또 이런 퀘렌시아를 만들어준 당신에게 감사하고.


끝나지 않을 것처럼 보이던 코로나19가 가고 인중 콧수염이 솜털에서 생검정색의 털이 되어가는 나이가 되어 이제는 둥지를 떠나야 할 순간이 다가왔음을 알아차렸을 때, 또다른 퀘렌시아를 만들기 위해 냉정한 잡초풀숲으로 몸을 던졌습니다. 비교적 늦은 독립기를 겪으면서 '구 퀘렌시아' 벗어나 '신 퀘렌시아'에 정착하게 되었을 때 모든 게 서툴렀습니다. 사실 이 당시는 퀘렌시아라고 부르기도 민망하였습니다. 왜냐면 퇴근을 하면 집에는 난생 처음보는 문제들이 산적해 있었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류시화 시인이 말했던 퀘렌시아는 '안식처'에 가까운 이미지인데, 지금은 '신 퀘렌시아'라고 부를 수 있는 이 곳은 저절로 만들어지는 건 없었습니다. 그제야 알았어요. 체험하게 되었어요. 퀘렌시아는 발견되는 게 아니라 만들어간다는 걸.


"투우장의 퀘렌시아는 처음부터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투우가 진행되는 동안 소는 어디가 자신에게 가장 안전한 장소이며 숨을 고를 수 있는 자리인지를 살핀다. 그리고 그 장소를 자신의 퀘렌시아로 삼는다." -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류시화 중에서 -


문제가 곧 일상이고, 그런 문제가 생길 때마다 하나씩 혼자 해결하면서 차츰 이런 일상이 익숙해질 무렵에는 퀘렌시아를 하나 더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건 장소가 아닌데요, 나의 부모 당신과 통화하는 매일의 그 시간이 나에게는 회복실이요, 나에게는 다시 일상을 이어가는 자양강제 그 자체였습니다. 이 또한 퀘렌시아.


갑작스럽게 찾아온 병환에 간병인으로 드나드는 병원 방문횟수가 늘어나고, 어떤 날에는 응급실, 또 어떤 날에는 담당주치의 면담시 보호자 자격으로 함께 있던 그 순간이 힘든 와중에 또 하나의 퀘렌시아가 되어주었습니다.


달라진 건 없고 희망 또한 어쩌면 배가 부른 사람들이 하는 소리라는 현실이 무섭게 들어올 때, 멋진 의사 가운 입고 테이크아웃 커피잔과 함께 병원 복도를 거니는 또래처럼 보이는 의사들을 보고 있으면 그동안 나는 나의 부모 당신에게 퀘렌시아가 되어준 것이 있기나 했을까 싶기도 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아픈 당신에게 퀘렌시아를 받기만 하는 데, 그저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안식처가 되었습니다. 비싼 병원비 앞에서는 작아져도 함께 옆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퀘렌시아.


병원과 집 통원이 가능하게 된 날부터는 더 자주 연락하고, 직장을 가지 않는 날이면 어찌되었든 본가를 찾아가는데 어느 순간 또 알았어요. 내가 자발적으로 떠났던 그 둥지에 내가 떠난 흔적은 남아있었지만 여전히 퀘렌시아는 퀘렌시아라는 걸. 특별하진 않아도 함께 밥을 먹고 함께 넷플릭스 보면서 지난 일주일간 있던 이야기를 오랜만에 만난 친구처럼 떠들고, 가끔은 본가 근처 맛집이 생겼다하면 나의 당신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이라 여겨지면 '같이 먹어볼까?' 운 또한 띄울 수 있는. 지난 여름에는 수박이 먹고 싶다는 당신과 시장에 가서 무거운 수박을 들고 오던 그 길조차 모든 게 퀘렌시아.


얼마 전 당신은 물었어요. 걷는 걸 좋아하는 당신의 베스트프렌즈를 쫒아 한양도성길 걷다와도 되는지, 생각을 물어보는 게 아니라 '체력이 되지 않아 친구에게 괜히 피해를 주는 건 아닌지'에 대한 걱정을 한사코 같이 덜어줄 수 있는지 묻는 거라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이기적일 순 있지만 가고 싶다면 다녀오라는 말을 전했지만 그 다음 주에 알았어요. 가지 않았다는 걸. 어떤 결정을 하든 그 또한 당신의 결정이라면 얼마든지 격려하고 위로할 수 있다는 걸 '문 열지마!'라고 했을 때는 몰랐어요. 어쩌면 그 날은 당신에게, 트래킹 코스보다 '집'이 퀘렌시아 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보다 훨씬 선선해지면 어딘가 엉성하지만 그래도 나만의 퀘렌시아에 당신이 오겠다고 약속하였어요. 혹시나 지루한 시간으로 당신 아들의 휴일을 날리는 건 아닐까 걱정하지 않도록 맛난 음식과 맛난 디저트 많이 준비하려고 합니다. 볼 거리도 준비해두고요. 나의 부모,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 같이 실내에만 있어도 그 자체로 퀘렌시아 입니다.


최근 나의 이런 사정을 아는 직장 동료가 이런 말을 하더군요. 그 시간은 살 수 없고 되돌릴 수 없으며 그 자체로 의미있고 가치가 있는 거라 지금 참 잘 하고 있다고. 참으로 고마운 격려였습니다. 퀘렌시아를 입증해주는 말이었어요.


나의 퀘렌시아에서 우리의 퀘렌시아가 될 수 있도록, 그 날까지 오늘도 나의 퀘렌시아를 조금씩 손을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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