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반갑지 않지만 좋아하는 시간

by 스톤처럼

차라리 눈을 뜨고 영원히 잠에 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어리석은 생각을 해본 적 있습니다. 눈을 뜨고 있는 시간에는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었지만, 눈을 감고 잠에 든 시간에는 끊임없는 악몽과 가위에 눌려 잠을 잔 것도 자지 않은 것도 뭣도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눈을 뜨고 있어도 희망이 보이지 않았고 눈을 감고 있어도, 그러니까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 (당연한 소리이지만)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은 채 '시간'만 보내던 시간들. 이도저도 아닌 시간이 참 고통스러웠습니다.


어쩌면 현실회피에 걸린 건지 모르겠습니다. 창 밖에서 귀뚜라미가 우렁차게 울던 어느 날, 어제와 같이 어김없이 새벽 2시 30분에서 3시 사이 눈을 떴습니다. 침대 끄트머리에 걸터앉아 부스스한 머리를 하고 있자니 이게 사는 게 맞는 건가 싶더라고요. 한숨과 함께 의자로 옮겨 앉았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좀 앉아있다 다시 잠자리에 들었어요.


다음날도 그 시간에 또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건너편 방에서는 병원 진료로 힘이 들었던지 나의 부모 당신이 코까지 곯며 깊은 잠에 들어있었습니다. 그 코 고는 소리를 듣다보니 나름 리듬이 생기더라고요. 어차피 누워있어도 잠이 오지 않기에 이번에도 의자에 좀 앉아있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말이죠.


그런 날들이 하루이틀 일주일 반복되다보니 차츰 좋아하게 되었어요. 새벽에 잠이 깨는 게 반갑지는 않은데 그래도 아무도 나를 방해하지 않아서, 오롯이 혼자일 수 있어 좋아하게 된 시간.


이 시간은 가만히 있어도 반갑지는 않지만 좋아요. 물론 고된노동을 하고 들어온 날은 '오늘만큼은 깨지 말아라!'라고 혼잣말을 할 때도 있지만, 만약 다시 찾아온다면 반기지는 않지만 좋아는 합니다.


간병으로 급한 지출이 생기며 새벽 첫 차를 타고 투잡, 쓰리잡, 뽀잡을 하던 시절 기억도 나고, 또 어제 낮에 해결되지 않아 진절머리 나게 만든 골칫거리도 생각납니다. 어떨 때는 최악의 상황이 오면 어떻게 해야될까 스스로 묻기도 하고, 또 어떤 날에는 앞으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묻기도 합니다.


주제는 없어요. 그리고 습관도 아니어요. 갓생을 사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매일 새벽 이 시간에 하는 무언가가 있지는 않습니다. 그저 그 시간이 반갑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밀어내지는 않고 그저 '나'를 그 시간에게 던집니다.


오늘은 또 그 시간에 깼습니다. 나의 둥지 한쪽 구석에서 책상 스탠드 하나 켜고 이런저런 생각하다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해결되지 않은 문제, 곧 떠나가는 직장동료, 앞날에 대한 걱정, 심지어 아침은 무엇을 먹어야 하는지 잡념이 불쑥불쑥 생각납니다.


카카오톡이 전면 개편되더니 연락이 닿지 않는 고등학교 동창 친구 프로필이 나오네요. 결혼을 하나 봅니다. 또 다음 피드는 대학교 동기지만 나이가 위인 어느 형 프로필이 나오네요. 따님이 태어났나 봅니다. 그 다음은 예전에 일을 하던 곳 사장님 프로필이 나오네요. 예나지금이나 카톡 프로필 사진은 '없음' 이네요. 한 때는 모두가 인연이고 관계가 있고 했던 사람들인데 이제는 각자의 길을 가는 각자의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겠죠.


지금 사는 동네 뒷편에는 동네가 내려다보이는 학교가 있고, 그 반대편에는 시내 모습이 펼쳐지는 작은 돌담 전망대(?)가 있습니다. 가끔 퇴근하는 길에 일부러 이 두 곳을 들려서 멍 때리곤 합니다. 아무런 생각이 없어요. 마음이 흔들리는 일도 없어요. 하지만 또 가끔, 아주 가끔은 그런 생각을 합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스쳐지나갔을텐데 그 사람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또 지금은 한국에 있는 걸까, 나 또한 그 사람들에게 스쳐가는 사람이었겠지. 우리는 이렇게 스쳐가며 각자 길을 걸으면 되는 거겠지.


이제 불과 몇 시간 뒤면 출근을 해야 합니다.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고, 잔잔한 템포 아다지오 (Adagio)처럼 민무늬 일상이 기다리고 있겠죠? 이미 알고 있는, 하지만 순간순간 치열히 살아가는.


오늘도, 반갑지는 않지만 좋았습니다. 조금 더 자기 위해 침대로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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