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병인 보호자 필요한 현실 그 이유

by 스톤처럼

영수증이 손바닥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습니다. 늦은 저녁 동네에서 장을 보고 돌아오는 길, 오른편에서 같이 동네를 오르는 나의 부모 당신이 보지 않는 왼손에서 장을 본 후 얻은 종이영수증을 꽉 잡고 있었습니다. 오늘 감사한 것은 나의 왼쪽 눈에서 눈물을 붙잡고 있다는 점입니다. 내가 이런 모습을 보인다면 겉은 강하지만 속은 여린 당신께서 얼마나 가슴이 미워지리라는 걸 잘 알고 있기에.


일주일에 한 번, 통화는 매일. 나의 부모 당신이 사는 본가와 떨어진 곳에서 살아가는 아들이 당신과 접촉하는 횟수입니다. 5일 일하고 2일 쉬는 날이면, 쉬는 날은 반드시 당신을 찾아갑니다. 이보다 어린 시절은 당신과 내가 같이 살고 있었기 때문에 그 만남의 횟수가 이렇게 무거운 줄 몰랐습니다.


장을 보고 집으로 올라가는 오르막길, 다세대 건물 사이로 어둠이 내려앉은 이 골목길을 지나며 당신은 나에게 어렵게 입을 뗐습니다. 사실 장을 본 상가 맞은편에 있는 어떤 가게를 지날 때부터 이상한 낌새를 채고 있었지만 그게 어떤 이유에서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현생에 치여 주 5일은 눈꼽 떼고 출근하고 퇴근하는 분주한 일상이 이어져, 휴일에 본가 찾은 그 날 들었던 이야기. 아니면 내 인생에서 가장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게 될 줄이야.


집에서 병원까지 통원이 가능하게 된 이후 언젠가 치료 부작용으로 일상생활이 불가한 빈혈로 인해 긴급히 병원을 찾게 된 날이 있었더랬죠. 사실 내가 알아차렸어야 했습니다. 도보 15분 거리 이동하는 것도 숨이 차서 중간중간 몇 번이고 쉬어 이동했다는 말을 들은 날에 진즉 알아차렸어야 했습니다.


예고도 없이 갑작스럽게 찾아온 빈혈에 병원까지 가는 길을 동행해줄 수 있는 가족이 없는 날, 그 날은 하늘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한치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비가 쏟아졌습니다. 이미 졸도한 적이 있는 가족이 간병인 보호자 없이 홀로 지하철에 몸을 실어 겨우겨우 병원까지 가는 길은 말도 안 되는 일이라는 걸, 그 때는 몰랐습니다.


어렵게 사는 아들이 걱정될까 싶어 혼자 병원에 갈 수 있다고 떨리는 목소리로 병원으로 출발하고자 하는 당신을 기필코 말렸어야 했습니다. 병원 예약이 늦어지더라도 어쨌든 갈터니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나왔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없는 기력에 짜증까지 내며 혼자 가겠다고, 그 날은 기어코 나를 떼어냈어요. 더 강하게 반항을 했어야 했습니다.


폭우가 쏟아지는 바깥, 당신은 어렵사리 외출준비를 마치고 어딘가 아픈 우산을 가지고 집을 나섰습니다. 집 앞 세탁소를 지나 차도와 인도가 겸해 있는 도로에서 좌우를 살펴봤겠죠. 한 걸음, 한 걸음. 조금 쉬고 다시 한 걸음. 지하철역까지 가는 그 길에서 '쉼'이 몇 번이고 쉬면서 겨우겨우 도착했어요.


지하철 역사로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에 몸을 의지한 채 내려와 개찰구 앞에 도착해보니 지하철 한번 탈 수 있는 현금만 있고 가장 중요한 핸드폰이 없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되었습니다. 어디서 잃어버렸는지 기억도 나지 않고 다시 지상으로 올라가 왔던 길을 되돌아갈 수 없다는 걸 알았어요. 빈혈 수치 5점대. 나중에 알았지만 일상생활이 불가하다는 걸 그 때는 몰랐기 때문이에요.


동네 지하철역 개찰구에서 전화 한 번만 해줄 수 있냐고 핸드폰 1회 사용 동냥을 했었어요. 하지만 그 어느 누구도 도와주지 않았어요. 세상이 흉흉하고 하루가 다르게 스미싱 뉴스가 나오던 시기였으니 말이죠. 지하철역 고객안전실을 겨우 찾아 직원분의 도움으로 연락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당신의 핸드폰은 응답하지 않았어요. 몇 번의 연락을 더 시도해봤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정기 통원치료 받는 병원, 예약시간을 놓치면 2시간이고 3시간이고 그것도 아니면 다른 날로 예약을 다시 잡아야 하기 때문에, 핸드폰 행방을 뒤로한 채 지하철을 탔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기 싫어하는 당신이니 이미 그 때 마음이 얼마나 착잡했을까 싶습니다.


동네에서 조금은 번화가인, 다시 말해 유동인구가 더 많은 지역의 지하철역에서 내렸습니다. 개찰구를 나오면 답도 없으니 개찰구 전에서 계속해서 사람들에게 핸드폰 1회 사용을 구걸하였습니다. 다행히 기꺼이 도움을 주고자 하신 분께서 본인 핸드폰을 사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어요.


다이얼음이 유독 길게 느껴지는 그 순간, 핸드폰 수화기 건너편에서 어느 분께서 전화를 받았습니다. 어디에서 핸드폰을 발견하게 된지 알게 되어 지금 바로 되돌아가겠다 하였지만 그 분께서는 특정시간에 오라고 하셨어요. 빈혈수치 5점대. 병원까지는 가야 하는데 갈 길은 멀지만 어쨌든 핸드폰을 찾아야 하니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셨어요.


약속한 장소에 도착해보니 동네 어느 가게. 아 가게 주인분께서 핸드폰을 주워주셨구나, 일말의 안도감을 가지고 가게문을 두드렸어요. 근데 사람이 없는 거예요. 폭우가 쏟아지는 그 날, 당신은 있는 힘껏 '계세요? 저 왔어요'라고 외쳤었죠. 하지만 나타나지 않았어요.


병원 일정을 미루더라도 집으로 돌아가려는 순간, 집 비밀번호가 기억나지 않았어요. 말그대로 폭우를 맞으며 바깥에서 기억이 날 때까지, 어쩌면 나의 가족이 이 길에서 나를 발견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기다려야 하는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어요. 핸드폰 사용 동냥이 다시 시작되었어요.


30대 중반 정도로 보이시는 어느 여성분께서 울고있는 어머니 당신을 부축여서 옆에 있는 죽집으로 데려가 주셨어요. 여성분 핸드폰으로 전화를 해봅니다. 통화가 되지 않아요. 다시 해봅니다. 역시 안 됩니다. 여성분께서 끝까지 같이 있어주겠다며 걱정하지 말라고 다독이며 다시 통화를 해보니 그제야 받습니다.


도착했어요. 저 왔어요. 지금은 돈이 없지만 어떻게든 얼마라도 사례를 해드릴테니 핸드폰 지금 주실 수 있나요. 하지만 계속해서 조금 있다가 다시 오라는 말에 어머니는 다 놓고 싶어셨대요.


결국 그 오라는 시간에 가서 핸드폰을 받으니 핸드폰 잠금화면에는 부재중전화, 문자메시지로 가득 했었더랬죠. 핸드폰을 받고서야 아직 다 쏟아내지 못한 눈물이 흘렀어요. 20년 넘게 산 동네지만 창피하고 자시고 할게 없었어요. 여전히 혼자 병원을 가야 하지만 그럼에도 보호자 아들에게 긴급전화할 수 있다는 건 다행이에요.


이제는 병원을 가야 하는 순간, 여전히 폭우가 쏟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앞이 흔들리고 사람들 틈에서 식은땀을 흘리고, 최악의 빈혈수치로 혈액순환이 원활히 되지 않아 정신을 차린다는 건 꿈도 못 꾸지만. 어쨌든 먼 거리에 있는 병원을 가야 했어요.


이미 옷은 폭우로 다 젖었고 어딘가 아픈 우산은 겨우 머리 하나 가려줄 정도로 초라해졌지만 어찌저찌 병원 응급실에 도착해 혈액 공급을 받는 순간, 오늘 내가 겪은 일들이 선명해졌다고 했었죠. 담당 의사와 간호사가 놀라 어떻게 이 거리를 폭우 뚫고 왔으며, 지금 바로 혈액 공급하지 않으면 위험하다는 말이 옆에서 들렸더랬죠.


나의 부모 나의 어머니 당신이 당신의 가족과 다시 통화할 수 있게 되었을 때가 되어서야, 미련하고 눈치 없는 미숙한 아들 놈이 응급실에 도착한 것이었습니다. 어렵게 병원에 왔겠구나 싶었지 그 날의 모든 일을 들은 후에는, 비참한 현실적인 이유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는 내 자신이 미웠습니다.


간병인 보호자가 없으면 대리 간병인조차 해결해주지 못 하는 자신이 싫었고, 아들이 직장에서 걱정할까봐 아들의 연락조차 최대한 피하게 만든 그 상황을 만든 주범이 '나'라서 더욱 미웠습니다.


부자가 되고 싶어서 돈이 필요한 게 아니라, 적어도 집에서 병원까지 안전하게 모실 수 있는 돈을 풍족히 지원해주지 못 하는 게 싫고, 언제든 필요하면 달려가지 못 하는 환경도 싫었습니다.


도보 15분 거리를 몇 번이나 쉬었다 가야 하는 빈혈, 눈이 붓도록 울고있는 중환자의 눈물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야속하게 쏟아지는 폭우, 핸드폰 전화 1번 사용조차 어렵게 만든 스미싱 주범, 더군다나 도움조차 구하기 어려울 만큼 삭막해진 이 시대 그리고 이 사회. 그동안 못 다한 이야기를 듣는 동안 참으로 미웠습니다.


간병인 보호자 동행은 필요합니다. 간병인 보호자의 존재 필요를 그동안 못다한 이야기에서 느끼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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