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파른 언덕 최고봉 곧 도착하겠지

by 스톤처럼

파란색 시내 버스 내렸습니다. 길거리 사람이 없고 계절 탓으로 돌리고 싶은 늦은 9시 45분, 일주일치 식량을 양손 가득히 장보고 천천히 오르막길을 오릅니다. 시간을 머금은 보호수 나무 지납니다. 20계단 이상 높이 있는 동네 공원 또한 지납니다. 매장도 작아 메뉴도 적은 동네 편의점을 지납니다. 담벼락 따라 걷다보면 맛집이라는데 메뉴판 가격 보고 엄두가 나지 않아 들리지 못한 식당을 지납니다. 인기척이 있습니다. 이 시간에 퇴근을 하나봅니다. 레스토랑 직원들을 뒤로한 채 다시 고도를 높여 오르막길을 이어갑니다. 낮에는 그나마 사람이 있어 '사람 냄새'가 났었는데 이 시간에 지나다보면 온동네 사람들이 증발한 것처럼 인기척이 없습니다. 다시 가던 길을 갑니다. 흔들흔들, 양손에 들린 장바구니는 고물가시대 조심스럽게 손바닥 굳은살을 또 만들려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동네 치킨집이 보입니다. 기분 내고 싶은 날이면 반마리 포장해서 세상에서 가장 재밌는 영화 한 편이랑 치킨 먹는 재미가 있습니다. 월례 행사처럼 빨리 그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다시 길을 갑니다. 어둠에 외로이 빛내는 전봇대 지나다보면 어딘가서 동물 인기척이 느껴집니다. 동네를 지키는 검은 고양이입니다. 체구는 작지만 제법 영리한 친구라 동네에서는 인싸 입니다. 녀석에게 눈인사 한번 하고 나는 너의 침입자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 조심조심 지나갑니다. 귀가길 처음으로 사람을 봅니다. 얼큰하게 드신 이웃주민분께서 대리기사분에게 현금을 지불하고 계십니다. 대리기사님은 총총 걸음으로 내가 왔던 오르막길 그대로 신나게 내리막길을 탑니다. 검은 고양이는 그런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습니다. 발걸음을 옮깁니다. 아저씨가 보이지 않을때쯤 돌아보니 꽤 올라왔습니다. 흐린 날씨에 얼굴을 비추지 않는 보름달에 의지하려 했더만, 오늘도 열일을 해주는 전봇대 가로등에 의지해 올라갑니다. 외부 샷시 너머 불빛이 새어나오는 이웃집 가구들이 보입니다. 다들 자려고 하는지 조용합니다. 직진입니다. 올라갑니다. 위태롭게 돌받침을 발판삼아 서있는 헌옷수거함을 지납니다. 옆집 강아지가 짓지 않습니다. 오후 6시면 산책을 나오는 대형 강아지가 있는데 동네 어른들이 이뻐라 합니다. 순하디 순해 애교도 많습니다. 아마 주인분과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나 봅니다. 다시 지납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건물을 묻는다면 단연코 교회가 아닐까 싶습니다. 울 동네도 있습니다. 빨간 십자가. 그 옆을 바람처럼 스쳐지나갑니다. 오토바이처럼 잽싸고 이 오르막 내리막길에서 누군가의 발이 되어주는 스쿠터 몇 대가 보입니다. 지난번에는 스쿠터 주인분이 헬맷을 바꾸신 것 같던데 그 분이 스쿠터를 타면 항상 눈길이 갑니다. 독특합니다. 신기합니다. 이렇게 많은 헬맷이 있는지는 아마 이웃분 스쿠터 라이딩을 보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얼마 안 남았습니다. 다 왔다, 아니 조금 더 가야한다. 그 주인분의 헬맷 생각하면 스쿠터는 없지만 나도 모르게 흥얼흥얼 거리게 됩니다. 참 재미있는 스쿠터입니다. 우리집앞 전봇대, 얼마전에는 동네 과외 구함 찌라시가 붙어있더만 오늘은 말끔하군요. 언젠가 폭풍우가 쏟아지던 날에 번개가 내리친 적이 있었는데 세상 멸망하는 줄 알았습니다. 분명히 두 눈을 뜨고 있었는데 창밖이 온통 하얀색으로 번쩍였습니다. 어휴, 그 날은 출근해야 하는 날이었는데 어찌나 집에서 나오기가 싫던지. 솔직히 좀 무서웠습니다. 항상 제가 여는 문이 있습니다. 공동현관문 반쪽 문을 열어 힘겨운 호흡과 함께 오릅니다. 집입니다. 나머지 '흥얼'은 집에서 해야 하겠습니다. 이웃집 주민, 검은 고양이 램수면, 스쿠터 주인분, 얼큰히 취하신 주민분 모두 깨우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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