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제일 잘나서 망한다
벌써 세 번째 창업을 하며 근래 들어 특히 많이 느끼는 감정이 있다. 누가 봐도 명백히 틀린 답인데, 그걸 붙잡고 쉽사리 놔주지 못하는 나 자신을 보며, '꼰대 같다'라고 많이 느낀다. 고객이 아니라고 하면 아닌 건데. 내 생각이 맞다고 계속 우겨대는 아이러니. 장사꾼은 그래서는 안 된다. 그러나 내가 틀렸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쉽지가 않다.
전 직장 상사들이 꼰대 같아서 전 직장을 그만둔 나인데, 정작 나 자신은 내 '뇌피셜'이 맞다며 박박 우겨대고 있다. 팔리지 않는 제품을 맞다고 우기는 그 시간만큼 내 시간과 통장 잔고는 자꾸만 줄어든다. 틀린 답을 고집해서 손해를 보는 건 나다. 내가 맞다고 우겨서, 결국 틀리는 건 나다. 그러나 이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왜 그렇게 어려운 걸까.
창업에는 도대체가 학벌이라는 것이 없다. 서울대에서 수석 졸업을 한, 화려한 촉망받는 인재였다고 해도, 창업을 한 이상 당신은 그저 당신이 론칭한 제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론칭한 제품을 사람들이 외면하면 이 시장에서 당신의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나 다름없다. 시장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고객은 제품을 보지, 창업자의 학벌이나 화려한 이력에는 도통 관심이 없다. 그런 건 다 지나가는 거품이다. 정직한 것은 고객의 지갑, 단 하나뿐이다. 그야말로 '밑장 떼고 붙는' 상대적으로 그 무엇보다도 공정한 시합이다. 룰은 하나, '고객이 원하는 제품이 이긴다'.
학벌이라는 것이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나였지만, 창업을 하면서 유독 느끼게 된다. 내가 '틀렸다'는 사실이 굉장히 어색하게 느껴진다는 것을. 나는 학창 시절 항상 '맞았다.' 내 말이 곧 정답이었고, 나는 똑똑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내 생각이 틀렸다는 것은 마치 나를 부정당하는 것과 같다고 느낀다. 혹자는 생각한다. '내가 생각한 게 맞고, 시장이 틀린 거야.' '사람들이 트렌드를 따라오지 못하네.' '제품을 이해하지 못해.' 등 등 이런저런 멋진 말들로 나의 현 상황을 부정한다. 제아무리 뛰어난 제품이라 한들 시장이 틀리다면 틀린 것이다. 이런 간단한 진실이, 내게는 조금 버겁다.
구글에서 평균적으로 10개의 신제품을 내면, 1개 제품 정도가 성공할까 말까라고 한다. 전 세계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들이 모인 집단에서 치열하게 고민한 결과물도 고객의 선택을 받지 못해 사라지는 것이 자본주의의 세계이다. 사람들은 똑똑한 것에는 관심이 없다. 당장 내 욕구를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이가, 라는 굉장히 1차원적인 생각에서 생각하기를 멈춘다. 아니, 눈길이나 한 번 줬으면 다행이다. 언제나 고객을 위해 존재하는 서비스는, 이 고객이 원하는 것을 정확히 캐치해낼 때까지 선택받을 수가 없는 것이다.
창업에서 작은 실패들은 필연적이다. 처음부터 100점짜리 창업가는 없다. 100점짜리 제품이 없듯이, 다들 100점에 가까워지거나 멀어지는 과정 속에 있을 뿐이다. 누구나 100점에 가까워지고 싶겠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이 있다. 본인의 '뇌피셜'을 버리는 것. 본인이 무조건 맞다는, 똑똑하다는, 정답이라는 편견을 버리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시장은 예측하기 힘들기 때문에, 제 아무리 수십 년을 제품을 만들어온 삼성이라 해도 실수하기 마련이고 어떤 제품은 망하기 마련이다. 그런 시장을 내가 하루아침에 정확히 파악해서, 완벽한 제품으로 구현한다? 말도 안 되는 망상이다. 그렇게 말하는, 흔히 창업 초기에 '열정'이라 불리며 무마되는 우리의 아름다운 꿈은 정말로 나 혼자만의 상상일 뿐이다. 꿈이 현실이 되기 위해서는 고객들과 맞닥뜨리며 하나하나 현실적인 문제들과 맞서야 하기에. 고고하게 학교 내에서 정해진 답을 맞혀오던 (정해진 룰에 따라 정해진 답이 있는) 소위, '모범생'들에게는 답답하고 바보스러운 과정으로 느껴질 수가 있다. 내가 그랬듯이.
사업을 위해 버려야 하는 첫 번째가 있다면 그건 바로 자존심이다. 사업은 남을 위하는 일이다. 남이 원하는 것을 만들어야 내가 살아남을 수 있다. 나의 뇌피셜을 들어주기 위해 제품을 사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나의 이고(ego)를 지키고 싶다면, 학계에서 좋은 학벌과 교수님을 뒤에 업은 채, '전문가'들을 인용하며 끝없이 논문을 써내는 편이 낫다. (대학원을 비하하는 것은 전혀 아니다. 학계가 얼마나 치열한 곳인지는 들어서 알고 있으나, 그래도 정해진 룰에 의해 돌아가는 곳이라는 점에서 정말 '정글' 그 자체인 자본주의보다는 조금 나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정도의 이야기다.)
평생을 나도 모르게 '잘났다'는 입장에서 나도 살고 있었나 보다. 실패를 크게 경험하지 않은 모범생은 오히려 작은 실패에도 힘겨워한다. 모두가 완벽한 나를 바라기에, 나도 완벽한 나만을 봐 왔기에, 나의 완전무결함이 부정당하는 순간 마치 나의 정체성이 흔들리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첫 번째 창업을 했을 때 내가 딱 그랬던 것 같다. 작은 거절, 작은 비판 하나하나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타격을 입었다. 누군가 나에게 이렇게 모질게 말하는 것이 처음이었다. 나의 의견이 이토록 존중받지 못한 것은 처음이었다. 그리고, 이토록 소수의 입장에서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주장한다는 일이, 나에게는 굉장히 험하고 부담스러운 일로 느껴졌다.
엘리트의 맹점은 바로 엘리트라는 것이다. 실패 경험치가 부족하다고도 이야기할 수 있겠다. 난생처음 해 보는 계속되는 실패에 당황함도 잠시, 추락하는 자존심을 붙잡아 다시 끌어올려야 한다. 제품을 시장에 내놓는 순간, 나의 자존심 따위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내 새끼가 잘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교육하고, 개선하고, 성장하는 것만이 생존을 위한 필수 불가결한 전제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이런 생존의 법칙을 무시하는 자는 도태당한다. 고로 야생에 처음 나온 엘리트들은 생존이 힘겹게 느껴진다. 아무도, 내게 어떻게 실패해야 하는지 알려주지 않았다. 아니, 실패했을 때 일어나는 법을 우린 배우지 않았으니까.
초긍정, 그리고 약간의 바보 같음이 엘리트주의에 물든 '현실 바보'에게는 명약이다. 창업가는 그런 직업이다. 끊임없이 거절당하는 직업. 항상 소수의 입장에서, 소수의 목소리를 내야 하는 직업. 사람들에게 외면받는 굉장히 외롭고도 쓸쓸한 자리. '성공'에 대한 열망이 높을수록, 그런 현실의 본인의 모습이 초라하게 느껴져서 다음 한 걸음을 떼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좋은 창업가일수록, 살짝은 바보같이 고객의 이야기를 들을 줄 알아야 한다. 또한 내 제품이 실패했을 때 바보 같이 근거 없는 긍정을 하는 게 중요하다. "뭐 어때, 내일은 잘 될 거야, 한 번만 더 해보자"하고 말이다. 고로 나는 오늘도 생각한다. 내일은 잘 될 거라고. 한 번만 더 해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