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동안 일어날 수 있는 일들에 대하여
1년 아닌 10개월 차에 끄적이는 세 번째 기록
작년 3월, 코로나가 터졌고 우리는 다시는 그 전의 세계로 돌아가지 못하게 되었다. 코로나라는 인류에 길이 남을 이 사건과 함께 나는 한국에서 고졸로 입사한 두 번째 정규직을 퇴사했다. 그리고 4월, 현재 다니고 있는 디지털 노마드 회사로 입사하며 인생 진로를 대폭 수정했다.
1년이라는 짧다면 짧은 시간 동안에 생각보다 많은 것이 변했다. 월 1000만 원을 만들어보겠다고 야심 차게 호언장담했지만 그 어떤 구체적인 플랜도 허황된 것처럼 보였던 지난 3월과 달리, 이번 달에 나는 800만 원에 가까운 돈을 벌었다. 석 달째 월 600이라는, 이전에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금액을 벌고 있다. 디지털 노마드 회사를 만들겠다는 염원은 빠르게 현실로 그려지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나는 이제 오래도록 꿈꿔왔던 세계여행을 실천에 옮기려 한다.
코로나가 세계 초강대국들을 혼란에 몰아넣고 하나씩 잡아먹고 있는 극적인 상황 속에서, 나는 이제 이름부터 이국적인 외국의 외딴섬들에 들어가 살려고 한다. (Ericeira, Madeira, Bali, Koh Lanta..) 공기가 좋고 파도가 좋은 곳, 햇살이 따사롭게 비쳐서 한가롭게 매일을 즐기는 것이 하루의 유일한 의무이자 생활인 곳에서 코로나가 끝날 때까지 지금 만들고 있는 사업을 한 땀 한 땀 빚어나갈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여행을 하는 것은 돈을 아끼는데 큰 도움이 된다. 전 세계에서 돈을 벌고, 서울에서 쓰는 것보다는 지금 내가 가려하는 포르투갈이나, 발리에서 돈을 쓰는 것이 경제적으로 매달 약 200만 원 정도를 더 절약하게 해 준다.)
이렇게 돈을 모아서 나는 조만간 발리에 집을 하나 사려고 한다. 해안가에서 걸어서 코 닿을 거리에 있지만 시끄럽지는 않은, 개인 수영장과 햇빛을 머금은 해먹이 있는 조용한 개인 작업 공간을 하나 꾸리려고 한다. 아마도 이 집은 앞으로 여행을 할 때는 에어비앤비로 돌려 수익을 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은 내가 많은 돈을 모은 줄 알지만, 나는 불과 1년 전인 2020년 1월, 마이너스 통장 -500만 원과 카드값 -300만 원이 재산의 전부인 사람에 불과했다. 우리가 돈이 없는 게 아니다. 한국이 터무니없이 너무 비싸진 거지.)
내 개인적인 삶에 있어서도 참 많은 것이 바뀌었다. 1년 전의 나는 결혼을 꿈꾸고 있었지만, 지금의 나는 본가 및 전 애인으로부터 독립하여, 다리가 짧은 고양이 자매와 함께 살고 있다. 삶은 그 어느 때보다도 안정적이고 평화롭다. 내 손으로 행복이라는 것을 만들어가는 것은 참으로 보람찬 일이다. 나는 조만간 디지털 노마드 사업을 하고 있는 한 사업가를 만나러 포르투갈로 떠난다. 삶이란 때때로 지나치게 낭만적인 사건이 발생하기도 하는 곳이라는 걸 새삼 느끼고 있다.
올해는 아마도 작년과 많이 다를 것 같다. 작년이 도약을 위해 움츠리고, 나 자신을 정립하는 시간이었다면, 올해는 비로소 내 안에 있던 가능성이 준비를 어느 정도 마치고, 세상으로 나오기 위해 움틀거리고 있는 것 같다. 지난 일 년 간의 시간은 감사하게도 내가 가지고 있던 기존의 사회적 통념과 안 될 것 같다는 부정적인 생각들을 산산조각 내주었다. 남은 것은 이제 그 가능성이 어떻게 발현될 수 있는지 세상에 보여주는 일뿐이다.
2020년 버킷리스트
고졸로 취업하기 - 달성
커뮤니티 만들기 - 달성
스쿠터 사서 여행하기 - 달성
디지털 노마드 회사 만들기 - 달성 근접
월 1000만 원 찍기 - 달성 근접
책 출간 - 달성 근접
회사를 그만두면 사회의 실패작이 되는 것이라 은연중에 생각해왔다.
하지만 나는 사회적으로 하나의 가장 큰 실패를 겪음으로써 비로소 나를 제약하던 모든 생각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다.
작년에 내가 한 일은 그저 노트에 하고 싶은 일을 있는 그대로 모두 적는 것이었다. 이미 내 부모님이 나를 위해 계획했던 계획은 모두 처절하게 망해버렸기에 나는 더 이상 잃을 것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솔직했고, 이번에는 진심이었다. 더 이상 그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가 없었기에. 부끄러워하지 않고 정말 하고 싶었던 것만 꾹꾹 눌러 적었다.
말로 내뱉고 글로 쓰는 순간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작년에 썼던 당시로서는 허황되기 그지없었던 일들은 고작 10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대부분 달성됐다. 참 우스운 일이다. 세상일이 이렇게 마음먹은 대로 될 수 있는 것이었다면, 나는 그동안 다른 이의 꿈을 대신 꾸기 위해 대체 얼마나 많은 시간을 낭비한 걸까.
학교를 나가면 개고생, 집 나가면 개고생이라는 말과 달리 세상은 나를 따뜻하게 맞아주었다. 마치 이미 예정된 일이었던 듯이, 일은 순조롭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나는 지금의 내 인생을 편안하게 느낀다. 도대체 그 무엇을 해도 몸도 마음도 언제나 불편했던 과거와 달리, 마치 원래 그랬어야 한다는 듯이.
어쩌면 당신도 속고 있을지 모른다. 한국에서 좋은 학교를 졸업해서 좋은 직장을 가지고, 결혼을 해야만이 행복하다는 구시대의 발상은 이미 끝을 보이고 있다. 우리는 당장 내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시대에 살고 있다. 당장 내일 엄청난 코로나 변종이 나와서 도시를 몇 년이고 폐쇄시킬지도 모르는 일이다. (조만간 미국에서는 전쟁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불확실함이 표준이 된 시대, 속에서 우리가 믿을 수 있는 것은 정말 하나, 나 자신뿐이다. 그리고 우리가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단 한 가지뿐이다. 오늘 나는,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