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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인 Feb 04. 2024

현지인이 사랑하는 베이글 카페에서 시작하는 화요일

10월 24일

하루만 더 일하면 남은 4일은 오롯이 여행만 할 수 있구나. 

이 생각으로 애매한 화요일을 상쾌한 기분으로 맞이하자. 


근데 한편으론 돌아다니지 않고 타지에서 노트북 펴놓고 일하는 것도 꽤나 즐겁다. 돈 많은 디지털 노마드로 살면 꽤나 고민의 많은 부분이 사라질 텐데... 그럼 여행의 소중함을 잊게 되려나? 그건 나중에 고민할 테니 일단 돈이나 많아봤으면...


아무튼, 여기 있는 동안엔 현실에 충실하기로 마음먹었으니 하루를 기분 좋게 맛있는 걸로 시작해야지. 도보로 20분 거리에 있는 로컬 베이글 맛집이 있단 소식을 들었다. 'Bagel Art Cafe'라는 곳인데, 베이글도 커피도 맛있기로 유명하단다. 아침 7시에 문을 연다길래 배낭에 노트북과 업무용 수첩만 챙겨 얼른 집을 나섰다. 


어둑어둑하고 부슬비가 내리는 날이다. 이 동네는 우산을 써도 소용이 없는 게, 비와 바람이 세트처럼 찾아온다. 우산이 푸드덕거려서 도저히 들고 있을 수가 없다. 



그냥 포기하고 비니가 비를 막아주길 바라며 걸음을 재촉했다. 벽돌 건물에 곡선형 창문이 매력적인 교회도 지나고, 평범하지만 여행자의 눈으로 보면 괜히 특별해 보이는 거리들도 지나쳤다. 20분 정도 걸었더니 기차가 지나가는 막다른 길이 보였고, 그 옆에 단층 적색 건물 하나가 덩그러니 있었다. 너구나, 베이글 맛집!



코너를 돌아 건물을 정면으로 마주하니 빨간색 테이블과 의자가 밖에 놓여 있다. 오전 7시부터 오후 2시까지 딱 일곱 시간만 영업하는 곳이라 그런지 이미 손님이 여럿 있었다. 베이글은 저녁에 먹는 못 먹는 음식인 건가? 햄버거나 일반 샌드위치집은 밤늦게까지 하던데 신기하네. 


내부는 컨트리풍 음악이 잔잔히 흘러나오는 아늑한 분위기였다. 넓은데도 분위기나 조명 때문에 따뜻한 느낌이었다. 반대쪽은 채도 낮은 빨강과 노랑으로 벽을 칠해 더 활기차보였다. 통일되지 않은 색감으로 벽돌벽을 덕지덕지 칠해놓았는데 어째서 보기 좋지.



그림도 꽤 많이 걸려 있는데, 스타일이 다 달랐다. 연어 베이글에 고양이가 올라가 있는 일러스트가 제일 마음에 들었다. 


구석 자리에 외투를 벗어두고 카운터에 와서 기웃거렸더니 직원 분이 친절히 응대했다. 위에 걸린 주황색 메뉴판을 보니 샌드위치처럼 재료를 고를 수도 있고, 베이글에 크림치즈만 주문할 수도 있는 모양이었다. 


한참을 고민하다 추천 메뉴가 뭐냐 물었고, 두 개를 이야기하길래 그렇게 달라고 했다. 연어와 크림치즈가 들어간 샌드위치 베이글(Loxocado) 하나와 플레인 베이글에 딸기 크림치즈 추가해서 또 하나. 여기에 아이스 라떼까지 주문했더니 25달러. 오늘의 식사는 이걸로 마무리한다. 



서브웨이처럼 주문하자마자 눈앞에서 만들어준다. 베이글 타이쿤 같다,는 생각을 하니 어느새 베이글 두 개에 커피 한 잔이 내 손에 쥐어졌다. 자리로 가져와 천천히 포장을 벗겨 반으로 갈라보니... 이거지, 베이글 참 알차네.



반 개씩은 친구 갖다 주려고 도로 포장을 잘 여며두고, 본격적으로 먹어볼까나. 샌드위치 베이글은 플레인 크림치즈, 아보카도, 연어가 층층이 쌓여 있다. 빵엔 씨앗이 잔뜩 붙어 있어서 고소하고 씹는 맛도 좋았다. 빵은 퐁신하고 재료는 살짝 짭짤해서 간도 딱 맞았다. 질깃하다든가 밀가루 냄새가 난다든가, 하는 마이너스 요소가 하나도 없었다. 


플레인 베이글에 크림치즈만 발라 먹는 것도 깔끔하니 맛있었다. 처음엔 딸기 크림치즈인데 너무 연한 분홍색이길래 맛도 연하려나 했는데 아니었다. 딸기 씨도 살짝 씹히고, 딸기 맛도 꽤 많이 나서 좋았다. 


여기에 아이스 라떼까지 목 안 막히게 호로록. 왜 커피 맛있단 말이 많은가 했더니, 인텔리젠시아 원두를 쓰더라. 시카고의 대표 커피 브랜드, 그 인텔리젠시아 맞다. (10월 13일 자 글에 리뷰도 했다.) 오트밀크로 바꿔 주문해서인지 고소한 맛이 엄청 강한 라떼였다. 



멍하니 창밖을 보며 베이글을 야금야금 먹는데, 그쳤던 비가 다시 한 방울, 두 방울... 원래 베이글 반쪽씩만 먹고 돌아가려 했는데, 날씨가 나를 붙잡네. 오래 앉아 있으려면 뭐라도 시켜야지. 


카운터에 가서 또 서성이다 스포트라이트를 전혀 받지 못하는, 구석쟁이에 있는 검정 바구니에 눈이 갔다. 저거 도넛이잖아! 3달러의 초코 코팅이 입혀진 구운 도넛은 예상한 맛 그대로였다. 파운드케이크처럼 포슬한 빵에 진한 초코 아이싱.



맞은편 테이블엔 머리가 하얗게 센 할아버지 한 분이 푸른색 체크남방을 입고 신문을 읽고 있었다. 와 진짜 오랜만에 본다, 종이 신문 읽는 사람! 아날로그로 중무장한 할아버지와 노트북과 휴대폰을 번갈아 보고 있는 디지털에 절여진 나. 나름 균형이 맞춰진 공간에서 종이 바스락거리는 소리와 타자 치는 소리가 이상한 리듬으로 교차되어 들린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 더 앉아 있다가, 날이 개었길래 자리를 정리하고 밖으로 나왔다. 속은 든든하고, 비가 그친 하늘은 청쾌하다. 



일하기 딱 좋은 날이구만!

이라 생각하면 기분도 그에 맞춰 산뜻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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