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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인 Dec 29. 2023

시카고언의 커피 자부심, 인텔리젠시아 후기

2023년 10월 13일

10월 10일 자 글에서 미국 서부 지역의 3대 커피라는 '피츠커피'를 리뷰했다. 그 글에도 썼지만, '3대' 수식어가 붙는 그룹이 또 하나 있었으니 바로 '미국 3대 스페셜티* 커피'로, 여기엔 블루보틀, 스텀프타운, 그리고 '인텔리젠시아'가 속한다.

* 스페셜티 커피가 무엇인지 궁금해서 찾아보니 '스페셜티 커피 협회(SCA, Specialty Coffee Associations)' 기준으로 향이나 맛을 포함한 열 가지 기준으로 평가해 80점을 넘은 커피를 통칭한단다. 


인텔리젠시아(Intelligentsia)는 그중에서도 시카고에서 탄생한 브랜드이기에 미국 동부를 여행하는 이들에겐 필수 코스다. 


ⓒ인텔리젠시아 인스타그램


1990년대 중반까지 시카고에선 좋은 커피를 찾기가 어려웠다. 커피 자체에 대한 관심도 높지 않았을뿐더러 그래서인지 자체 브랜드도 많지 않았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시카고로 이사한 두 친구가 인텔리젠시아를 설립하게 된 이유다. 그들은 레이크뷰(Lakeview) 동네에 카페를 열고, 그 안에서 원두를 로스팅하며 지금까지도 시그니처라 불리는 '블랙캣(Black Cat)' 블렌드를 만들었다. 


ⓒ인텔리젠시아 인스타그램


좋은 커피의 향과 맛은 빠르게 소문이 났고, 인텔리젠시아는 LA와 뉴욕을 포함해 미국 곳곳에 지점을 냈다. 정확한 시기는 미정이지만 우리나라에도 곧 1호점이 생긴단다. 시카고 커피씬의 개척자가 지구 반대편에까지 영향력을 키우는 데엔 30년이 채 안 걸렸다. 


시카고 여행을 계획할 때 다른 덴 몰라도 인텔리젠시아 커피만큼은 꼭 원조를 경험해 보겠다고 다짐했기에, 두 개의 매장을 방문해 총 네 잔의 커피를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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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하고 싶은 매장은 아무래도 인텔리젠시아 커피의 시작점이자 플래그십 스토어인 'Intelligentsia Coffee Broadway Coffeebar'이다. 벨몬트(Belmont) 역 근처에 있다. 멀리서부터 인텔리젠시아의 빨간색 날개 모양 로고가 눈에 띄었다. 빨간색, 파란색, 하얀색의 조합이 시카고 시의 깃발을 떠올리게 한다. 시카고를 대표하는 커피 브랜드라는 건가. (정말 인텔리젠시아의 로고와 시카고 시의 깃발 간의 연관성이 있는 거라면, 그 확신과 자부심이 멋지다.)



야외 테이블도 여럿 있었지만 부슬비가 오는 날이라 냉큼 안으로 들어갔다. 다운타운 근처가 아니라서인지 매장도 크고 분위기도 차분했다. 카운터도 완전히 개방된 구조라 더 쾌적하게 느껴졌다. 반대편엔 굿즈들이 진열돼 있다. 텀블러와 머그부터 모자나 맨투맨까지 종류가 다양하다. 매년 10월에 열리는 마라톤 행사와 협업해 출시한 아이템들도 여럿이다. 



메뉴판 앞에서 서성이다 맨 위에 적힌 '브루드커피(Brewed Coffee)'를 주문했다. 스타벅스의 '오늘의 커피' 같은, 미국의 카페들에서 아메리카노보다도 저렴한 메뉴다. '스페셜'티 커피라 가격도 스페셜하네. 스타벅스와 피츠커피에서 3달러 대였던 게 인텔리젠시아에선 거의 5달러다. 아이스로도 마실 수 있다는 데에 가격 프리미엄이 붙은 건지. 


오호. 깔끔한 산미가 느껴진다! 많이 마셔본 건 아니지만, 지금까지의 경험으로는 미국의 커피들은 전반적으로 고소하거나 썼다. 산미를 별로 안 좋아하는 터라 대부분 만족하며 마셨지만, 2주 넘게 여행하다 보니 색다른 커피 맛을 찾고 싶었다. 근데 여기 있었네, 신 커피.



가격의 부담은 만족스러운 맛에 스르륵 녹았고, '여기까지 왔는데 한 잔만 마시면 아쉽잖아'라는 여행자다운 합리화로 다시 카운터 앞에 섰다. 라떼를 마셔볼까, 시그니처 드링크 중 하나를 마셔볼까 고민하다 옆을 슬쩍 봤는데 냉장 중인 음료들이 보였다. 최근 인텔리젠시아에서 출시한 'RTD(ready to drink)' 오트라떼 3종이었다. 역시나 블랙캣 원두로 추출한 에스프레소가 베이스라고. 


결국 세 개 중 기본맛을 골랐다. 베이지색 종이팩에 플라스틱 뚜껑이 달려 있다. 매장에서 마시고 간다니까 얼음컵을 줬다. 기대에 부풀어 반쯤 따라 얼른 마셔봤는데... 너무 기대했나? 오트라떼인데 두유 맛이 강하게 났다. 스타벅스 두유라떼에 바닐라 시럽을 딱 한 펌프 추가한 맛이었다. 



이럴 때 다시 여행자의 합리화가 고개를 든다. 내 취향인 맛이 아니라고 해서 돈을 낭비한 게 아니다. 경험에 투자한 거지. 모든 걸 이렇게 생각하면 여행이 마냥 즐거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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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처음 방문한 인텔리젠시아 매장은 10월 2일 자 글에 잠깐 언급했던, 잭슨(Jackson) 역 근처에 있는 'Intelligentsia Coffee Monadnock Coffeebar'였다. 다운타운 한가운데 있어서 그런지 테이크어웨이 손님이 많았고, 직원들도 무심한 표정이었다. 인테리어 디자인도 최소한만 깔끔하게 해 놓은 것 같았다. 



이 매장에선 블랙캣 에스프레소로 만든 콜드브루와 플랫화이트를 마셔봤다. 콜드브루는 음료 특성상 신맛이 좀 느껴졌는데, 내 입맛엔 브루드커피보다 풍미가 덜했다. 같은 블랙캣이라도 본점 고양이가 더 잘하는 건지, 브루드커피의 추출 방식과 합이 더 좋은 건지. 플랫화이트는 고소하고 진했지만 특별한 맛은 아니었다. 



카페에서 마시는 커피는 음료의 맛이나 향만큼이나 매장의 분위기가 경험의 만족도를 결정하는 데에 중요하다. 그래서인지 비 오는 날 본점에서의 하루가 더 기분 좋은 기억으로 남았다. 


인텔리젠시아는 블랙캣 원두 말고도 여러 종류의 원두가 있다. 모두 중앙아메리카, 남아메리카, 에티오피아 등의 지역에서 직거래로 들여와 시카고에서 로스팅 과정을 거친다. 카페에서 음료로 맛볼 수도 있지만 패키지로 마트에서 살 수도 있다. 


ⓒ인텔리젠시아 인스타그램


이렇게 쓰면 나도 사 왔을 것 같지만, 반전으로 나는 그라인드 된 스타벅스 원두를 사 왔다. 가족이 전반적으로 카페인에 약한 편이라 디카페인 원두를 사야 했는데, 내가 발견을 못한 건지 인텔리젠시아 원두는 디카페인 옵션이 없었다. 한국에 돌아와서 생각해 보니 나 혼자 몇 달 동안 마시는 한이 있어도 사 왔어야 했다! 


시카고로 여행 가는 분이 우연히 이 글을 일게 된다면 저 대신 꼭 기념품 삼아 인텔리젠시아 원두 패키지를 사 오시길. 한참 뒤여도 좋으니 후기도 남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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