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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인 Feb 23. 2024

시카고에서 맞이하는 특별한 생일

10월 27일

1. 

컨디션 난조로 지난주에 글을 못 올렸습니다. 기다리셨을텐데 죄송합니다! 

오늘은 조금 더 긴 분량으로 찾아왔는데, 하루의 시작에 조금이나마 즐거움을 드릴 수 있길 바라요. 


2. 

브런치북은 30회까지만 연재할 수 있군요. 남은 여행기는 일반 브런치글로 발행하겠습니다! 


_

기념할 일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생각하지만, 개중에서 생일을 특별 대우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물론 기쁘지. 맛있는 것도 마음껏 먹고, 돈도 평소보다 죄책감없이 쓰고. 그런데 사실 다른 기념일도 그건 마찬가지라, 유달리 기다려지거나 거하게 파티를 연 적이 별로 없다. 심지어는 좀 쑥쓰러울 때도 있었다. 태어남을 축하 받는다니, 새삼스럽기도 하고. 


그런데 2023년 생일은 달랐다. 괜히 진짜 어른이 되는 시기인 것 같은 서른의 문턱을 넘는 해이기도 하고, 그 문턱을 타국에서 넘게 된다는 게 엄청 특별하게 느껴져서다. 한번 의미 부여를 하니 그 유일무이한 하루를 잘 보내고 싶단 생각이 가득해졌다. 전날은 차분하고 편안하게 보냈으니, 생일 당일은 활기차고 야무지게 보내보자. 


_

언제나처럼 여섯시도 못 되어 눈이 떠졌다. 금요일이지만 일하지 않는 날이다. 지금 회사에서는 생일 휴가 하루를 그 달에 쓸 수 있다. 냉큼 당일로 신청했다. 기분 좋은 아침이었다. 이 텐션, 밤까지 유지하겠어. 


전날 학교 행사 때문에 늦게 귀가한 친구가 깨지 않게 조심조심 준비해서 집을 나왔다. 친구 집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에 'Colectivo Coffee'라는 카페가 있다. 아침 일곱 시에 여는 곳이라 지난 4주간 몇 번이나 찾은 곳이다. 



밖에서 봐도, 안에서 봐도 평범한 대학가 카페다. 그런데도 자꾸 오게 되는 건 영업 시간 때문이기도 한데, 베이커리류가 맛있다는 이유도 있다. 특히, 스콘과 머핀이 촉촉하니 괜찮다. 홈페이지에서 봤는데, 이곳은 커피뿐만 아니라 빵도 자체적으로 매일 굽는단다. 



호박 초코칩 머핀과 드립 커피를 주문했다. 머핀은 안까지 엄청 촉촉한데다 초코칩이 아낌없이 들어 있었다. 호박과 계피향도 많이 났다. 저번에 호박 스콘을 먹어봤는데, 스콘보다 머핀이 더 내 취향이었다. 그렇게 야금야금 머핀을 베어 먹고, 따뜻한 커피를 호로록 마시며 눈으로는 창밖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_

날이 밝아지고 머핀 먹은 게 무색하게 다시 허기가 느껴질 때즈음,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약속한 장소에서 20분 후 만나자고.


사실 친구는 생일에 뭐 먹고 싶냐고 며칠 전부터 물어봤다. 미국에 와서 이것저것 실컷 먹어서인지 딱 하나로 생각이 모이지 않았다. 그러다 갑자기 꽂힌 음식이 생겼으니, 

"팬케이크! 팬케이크를 먹어야겠어!"


그래서 생일 브런치를 먹기로 약속한 장소는 'Le Peep Pancake House'란 곳이었다. 패밀리 레스토랑이 카페라 되면 이런 느낌이겠구나, 싶은 곳이었다. 내부는 편안하면서 북적이는 분위기였다. 가족 단위의 방문객이 가장 많고, 혼자 와서 신문 보는 할아버지들도 계셨다. 



메뉴는 전형적인 브런치 카페 같았다. 여러 종류의 계란 요리, 팬케이크와 와플, 커피와 주스 등이 있었다. 제일 먹고 싶었던 팬케이크 섹션을 보니 달마다 한정 메뉴가 있었다. 10월은 '호박 피칸'인데, 구황작물도 견과류도 엄청 좋아하는 나에게 아주 딱이다. 여기에 따뜻한 계란 요리를 곁들이면 좋곘다 싶어 오믈렛 중 하나를 골랐다. 계란 흰자와 시금치, 버섯, 베이컨, 치즈 등을 넣어 구웠단다. 


15분 정도 기다리니 두 음식이 한번에 나왔다. 토마토를 빼면 모두 노릇하게 구워져 있어 군침이 싹 돌았다. 팬케이크는 기대한만큼 버터리하고 두툼해서 만족스러웠다. 호박맛은 별로 안 났는데, 피칸이 반죽에도 토핑으로도 많이 들어가 있어 좋았다. 오믈렛은 잉글리쉬 머핀과 해시 브라운이 함께 나왔다. 아는 맛인데도 갓 만든 걸 먹으니 참 맛있었다. 



미역국 대신 팬케이크로 기념하는 생일이라니, 꽤나 특별하잖아?


_

신나게 브런치를 먹고 친구는 팀플 때문에 학교로, 나는 다운타운으로 향했다. 전날 가려고 했지만, 지상철이 갑자기 운행 정지되어 못 갔다. 다행히 하루 만에 운영이 재개됐다. 


그래서 찾은 곳은 미국 문학의 역사를 다양한 테마로 전시해두었다는 'American Writers Museum'이다. 입장료는 일반 성인 기준 14달러였다. 한 층으로 되어 있는, 규모가 크지 않은 공간이었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꽤 알찬 구성의 박물관이었다. 



티켓 오피스 바로 옆엔 6세기에 걸친 미국 문학의 역사를 작가들 연대기로 쭉 보여주는 공간이었다. 모르는 작가가 훨씬 많지만 대표 작품, 유명 문구, 문체 등을 자세히 설명해두어 하나하나 읽는 재미가 있었다.



박물관을 시계 방향으로 돌다 소파 있는 라운지를 발견했다. 그냥 쉬는 곳인 줄 알았더니,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품들이 종이책으로 진열된 방이었다. '미국인들이 사랑한 작품' 코너도 따로 마련되어 있어, 생소하지만 읽고 싶어지는 작품도 여럿 생겼다. 



바로 옆은 '작가의 마음'이 테마인 전시관이었는데, 이곳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우선, 고전적인 디자인의 타자기를 실제로 사용해볼 수 있었다. 타닥타닥... 띵! 글자마다 소리가 나니 예전 작가들은 더 신중하게 한 문장 한 문장 써내려가지 않았을까? 반대쪽 벽에는 작가들의 가치관이 담긴 이야기들이 적혀 있었다. 그중 마음에 드는 구절 두 개를 골라 곱씹어보니 모두 꾸준한 글쓰기의 중요성을 말하더라. 어떤 상황에서든 지치지 않고 뭐라도 써야겠단 생각이 더 강해졌다. 



기념품 숍은 작고 딱히 살 건 없었지만, 박물관을 관람하며 독서와 글쓰기에 대한 의욕을 되찾은 듯한 든든한 기분이었다. 


_

박물관에서 나와 10분 정도 걸으니 시카고의 대표 공원, 밀레니엄 파크에 도착했다. 도심 한복판에 있는 공원이라 다운타운 갈 때마다 지났던 것 같은데, 이번이 마지막일수도 있단 생각에 괜히 천천히 돌아보게 됐다. 


10월 초엔 한창 공사하던 콩 모양의 조각품, '클라우드 게이트(Cloud Gate)'가 어느새 절반 이상의 모습을 드러냈고, 들쑥날쑥한 건물들을 배경 삼아 정원의 풀들도 가을을 맞았고, 산책로 양쪽으로는 은행나무가 쭉 늘어서 있었다. 



걷다 보니 출출해져 간식을 사 먹어야겠다. 시카고를 대표하는 먹거리로 딥디쉬 피자와 핫도그가 있다면, 간식거리로는 뭐니뭐니해도 팝콘이다. 그중에도 최고는 '가렛팝콘(Garrett Popcorn)'이다. 


마침 밀레니엄 파크 근처에 매장이 있었다. 디자인도 분위기도 힙한 느낌이라 들어가기 전에 살짝 망설였지만, 막상 버터와 캐러멜 냄새를 맡으니 안 왔으면 어쩔 뻔했냐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유명한 건 치즈와 캐러멜이 반반 들어간 '가렛믹스(Garrett Mix)'지만, 캐러멜 코팅의 견과류가 듬뿍 들어간 'Nut Caramel Crisp'도 맛있다길래 작은 봉지로 하나씩 샀다. 



_

집에 돌아오니 날은 어둑해졌다. 얼마 후, 친구는 녹초가 되어 돌아왔다. 책상 앞에 앉아 오후에 각자 뭘 했는지 이야기했다. 샤도네이 와인에 팝콘을 곁들이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빵과 커피로 시작해 책의 공간을 거쳐 와인으로 매듭짓는 서른 번째 생일은 좋아하는 것들로만 알차게 채운 날이었다. 타지에서의 소박한 생일 파티는 즐겁고 특별했다. 


30대의 나, 이날을 돌아보며 씩씩하게 잘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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