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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인 Jun 09. 2019

포르투풍 내장 요리 먹기

포르투갈 전통음식 트리파스(tripas) 도전기

페르난두 페소아를 화나게 한 음식



여행할 때는 반드시 책을 챙긴다. 이번에는 포르투갈의 대표 시인 페르난두 페소아의 산문집 <페소아와 페소아들>과 시집 <초콜릿 이상의 형이상학은 없어>를 한 권씩 들고 왔다.


첫날, 시집에서 재미있는 구절을 발견했다.



사랑을 주문했는데 식은 포르투풍 내장 요리가 나왔다니. 차게 먹는 음식이 아닌데 차게 나왔다니. 페소아의 비범한 은유가 마음에 들었다. 그래, 사랑을 주문했는데 식은 내장 요리가 나왔다면 허망하고 화도 날 법 하다.


이내 궁금해졌다. 그 내장 요리라는 거, 따뜻하게 먹는다면 사랑의 맛이 날 수도 있는 걸까?



포르투 사람들은 내장을 먹어


페소아가 ‘포르투풍 내장요리’라고 이야기한 음식은 소 내장과 콩 등을 푹 끓여 만드는 포르투갈 전통음식 ‘트리파스 아 모다 두 포르투(tripas à moda do porto)’로, 마침 집주인 마팔다가 추천해준 집 근처 식당 트리페이루(Tripeiro)의 대표 요리였다.



포르투 여행을 하다보면 여기저기서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는 단어인 ‘트리페이루(Tripeiro)’는 ‘내장을 먹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내장 요리의 역사가 15세기부터 시작된 포르투 지역의 주민들을 이르는 말이다. 한 도시 사람들을 싸잡아 내장 먹는 사람들이라고 부를 정도라니, 이곳의 내장 요리는 특별할 것이 분명하다.



한국에서 내장요리라 하면 순대국이나 곱창구이 정도가 있고, 그런 음식을 파는 곳들은 왁자지껄하고 정겨운 분위기가 있기 마련이다. 트리파스 역시 서민 음식이지만 방문한 레스토랑이 꽤 근사한 곳이었던지라 어수선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한껏 낮춘 조도와 공들여 고른 듯한 실내 장식들, 정장을 차려 입은 손님들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마침내 맛본 페소아의 ‘포르투풍 내장요리’는 생각보다 담백했다. 오래 끓인 듯한 부드러운 소 양은 입에 넣는 순간 스르르 녹았고, 작은 감자 식감인 통통한 콩과 양배추가 속을 무척이나 든든하게 만들어줬다. 해장이나 보양식, 그런 말들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따뜻하게 나온 트리파스는 먹는 도중 점점 식어 차가워졌다. 내장 요리고 사랑이고 뜨끈하게 속을 데워주는 모든 것들은 식으면 느끼하고 텁텁해지기 마련인 거다. ‘사랑을 주문했는데 식은 포르트풍 내장요리가 나왔다’며 황망해 하던 페소아 시 속 화자의 기분이 짐작되어 괜시리 즐거운 식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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