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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인 May 29. 2019

모르는 사람들이 자꾸 말을 건다

포르투 사람들, 오지랖이 넓은 걸까

포르투에 자리를 잡고 며칠 뒤, 좋은 동네 카페를 찾았다. 좋은 원두로 맛있는 커피를 만들고, 콘센트 있는 자리가 있어 눈치 안 보고 작업을 할 수 있는 드문 곳이다. 상당수의 포르투 카페들은 다른 유럽과 마찬가지로 김이 모락모락 나는 에스프레소를 호로록 마시고 자리를 떠야 했다.


@Combi Coffee


카페에 방문한 첫날, J는 일러스트 작업을 위해 콘센트가 있는 벽 쪽 자리에 앉고, 나는 맞은편 벽에 앉아 내 일을 했다. 크지 않은 가게라 열심히 그림을 그리는 J를 관찰할 수 있었는데, 어느 순간 나와 J 사이의 테이블에 다른 손님이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그가 돌발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순간포착


핸드폰을 꺼내 J를 촬영하기 시작한 것. 그림에 열중하느라 주변에 도무지 신경 쓸 겨를이 없어 보였던 J는 기척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작업에 빠져있었다.


‘왜 무례하게 남의 사진을 찍는 거지? 저 사진으로 뭐 하려고 하는 거지? 인종차별인가? (매번 나오는 질문)’ 


화가 치밀어 오르기도 잠시,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J에게로 향했다. 그때 나눈 대화는 J의 그림일기에 기록되어 있다.


그는 포르투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사진작가로, J와 한참 이야기를 나누고 나에게도 다가와 포르투 맛집을 잔뜩 알려주었다. 나중에는 카페 주인까지 가세해 수첩에 리스트를 적어주었을 정도다.


‘외국인 친구 사귀기를 좋아하는 외향적인 예술가군.’

그렇게 생각했다.




며칠 뒤, 집 근처 버거집에서 야식을 먹었다. 퍽퍽한 포르투갈식 빵 위에 오래 삶은 돼지고기를 넣은 별미를 파는 곳이다.


@Casa Guedes


주방이 보이는 바 자리에 앉아 감자튀김에 맥주까지 곁들여 한참을 흡입하고 있는데, 옆에 앉은 남자가 내 팔을 톡톡 두드리곤 인사를 했다. 그 역시 포르투에서 꼭 가봐야 할 곳을 잔뜩 짚어주곤 더 궁금한 게 있다면 연락하라며 번호까지 남기고 사라졌다.


‘식당에서 옆자리 사람에게 꼭 말을 걸어야 직성이 풀리는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군.’

그렇게 생각했다.


그날 저녁 내가 먼저 연락하기도 전에 그에게서 먼저 문자가 왔다. 함께 내일 아침 식사를 하자는 내용이었다. 마다할 이유가 없던 우리는 다음날 아침 그가 알려준 카페로 향했다.


@Leitaria da Quinta do Paco


커피와 에끌레어를 함께 파는 곳이었다. 아침 햇살이 쏟아지는 테라스에 앉아 커피 한 잔을 곁들인 에끌레어를 먹고 있자니 천국이 따로 없었다. 구글맵에 의존해 이곳을 여행했다면 알 수 없었을 장소다. 프랑스도 아니고 포르투까지 와서 에끌레어를 먹어야겠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을 테니까. 이곳 에끌레어가 프랑스보다 낫다는 미구엘의 말은 동의하기 어려웠지만, 좋은 가격에 훌륭한 맛을 내는 멋진 장소였음에는 틀림없다.


아침을 함께 한 게 끝이 아니었다. 미구엘은 포르투에서 가장 전망이 좋은 곳을 알려주겠다며 돌연 앞장섰다.


@Mirador de Victoria


카페에서 도보로 10여분 떨어진 전망대는 보석 같은 곳이었다. 야경 명소로 알려진 모후 정원(Jardim do Morro)보다 접근성도 좋고 고요해 마음에 들었다.



전망을 감상하고 내려오는 길에서도 미구엘은 가이드처럼 기꺼이 포르투의 구석구석에 담긴 이야기들을 알려주려 애썼다. 포르투갈 전통 타일 아줄레주의 제작공정부터 이탈리아 마지막 왕이 죽었다는 건물, 아라빅 창문을 구별하는 법까지 해박한 미구엘의 설명을 따라가다 보니 한 시간짜리 투어를 마친 기분이었다.


왜 이런 호의를 베푸는 걸까?


모르는 사람들과도 스스럼없이 스몰토크를 하는 것은 유럽의 잘 알려진 문화다. 프랑스 교환학생을 했을 때도 슈퍼에서 계산을 기다리며 학교 가는 메트로를 기다리며 주변 사람들과 시시콜콜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하지만 이곳 사람들이 접근하는 방법은 조금 다르다. 이런저런 사는 이야기로 붕 뜨는 시간의 무료함을 달래려는 것이 아니라, 이 어리둥절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외국인을 구제해주겠다는 명확한 목표가 있다.


‘트립 어드바이저와 가이드북 밖의 진짜 포르투를 알려줄게.’


그런 사명감이 포르투 사람들 유전자에 들어있기라도 한 듯, 북한에 여행 가봤냐고 물어볼 정도로 내가 사는 나라 한국에는 관심도 흥미도 없지만 이 도시 포르투의 이야기에는 열을 올린다.


기꺼이 자신의 귀한 주말 오전을 지난 저녁 버거집에서 만난 외국인 여행자에게 할애하는 것, 그 마음을 나는 잘 모르겠다. 서울에서 길 헤매는 외국인에게 지름길을 알려주거나 숨은 맛집 정도야 알려줄 수 있겠지만, 아침식사를 함께 하고 경복궁과 시청 일대를 돌아다니며 한국의 역사에 대해 열과 성을 다해 설명해줄 의향은 아직 없기 때문이다.


포르투 사람들이 유럽에서 특출 나게 친근하고 상냥한 사람들인 것도 맞지만, 외부인에게 대뜸 말을 걸고 가이드를 자처하는 이들의 태도에는 이 오래된 도시의 겉모습만 알고 가는 관광객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분명 존재한다. 쌓아온 세월만큼 수많은 이야기를 간직한 곳이기에 속속들이 들여봐 주었으면 하는 바람.


오지라퍼들이 아니었다. 이 사람들은 단지 포르투를 너무너무 사랑하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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