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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인 May 24. 2019

머물 곳은 운명처럼 찾아온다

우리의 포르투 에어비앤비

포르투에는 좋은 숙소가 아주 많다. 에어비앤비를 켜기만 하면 인테리어 잡지에 나올 법한 아름다운 아파트들이 줄지어있다. 지은지 백 년이 넘은 건물이라든가, 이름난 건축가가 지었다든가 저마다 개성을 가진 집들이 도심에 옹기종기 모여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우리가 바쁜 탓에 떠나기 며칠 전까지도 예약을 마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계속 일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던 데다 예산이 많지도 않은 주제에 따지는 건 무척 많아 마땅한 집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우리가 따지는 조건들은 이랬다.


-       1박 1인당 3만원을 넘지 않을 것. 

-       침대가 두 개 이상일 것.

-       조리도구를 갖춘 주방이 있을 것.

-       랩탑 작업 공간이 있을 것. 

-       웬만한 곳은 걸어 다닐 수 있을 것.


요약하자면 저렴하고 위치 좋고 넓은 아파트를 찾았던 건데, 몇 달 전부터 서치를 시작해도 모자랐을 판에 출발이 눈앞에 닥쳐서야 예약을 시작했으니 괜찮은 곳이 남아있을 리 만무했다. 한숨 나오게 비싸거나, 심각하게 외곽이거나, 금방이라도 빈대가 출현할 것 같은 지저분한 집들만 남아있었다. 하나를 만족하면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 서울에서 방을 구할 때 경험했던 딜레마가 또다시 우리를 덮쳐왔다. 


출발 이틀 전 카페에 모인 우리는 몇 가지 조건을 포기하더라도 오늘만은 예약을 끝내고 말리라는 결심을 했다. 그때 기적처럼 눈에 띈 것이 바로 이 집이다.


마팔다와 이스라엘의 집


마팔다와 이스라엘이라는 부부가 사는 집의 방 한 칸을 빌리는 조건으로, 우리는 세 명인지라 방 한 칸이 아닌 집 전체를 빌리는 것을 염두에 두고 숙소를 찾아 여태 눈에 띄지 않았던 곳이었다. 하지만 나름 우리만 쓸 수 있는 거실과 화장실이 있고, 공용주방도 충분히 널찍해 마음에 들었다. 더 이상 따지고 자실 것이 없던 우리는 이곳을 예약했다. 가격은 1박에 7만원 꼴로, 우리가 세 사람이니 인당 1박 2만원대로 묵을 수 있는 셈이었다.




서울에서 포르투까지는 만 하루가 걸렸다. 리스본 공항에 밤중에 도착하는 바람에 노숙까지 해버린 우리는 넋이 반은 나가버린 채로 늦은 오전 포르투에 도착했다. 베개에 머리만 대도 곯아 떨어질 수 있는 컨디션이었지만, 체크인 시간까지 한참 남았으니 숙소에는 일단 가방만 두고 밖에서 밥을 먹기로 했다. 


수동으로 문을 여닫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근사한 현관문이 보였다. 집에 있던 이스라엘은 엘리베이터 소리를 듣고는 문을 열고 우리를 반겼다. 집에 작업실을 두고 일한다는 그는 말쑥한 검은 자켓에 스니커즈 차림이었다. 안내에 따라 집에 들어서자마자 느낄 수 있었다. 


여긴 찐이다.’




집안의 액자들, 화분들, 카펫 하나까지 허투루 놓인 것이 없었다. 커다란 TV 옆의 DVD장과 침실 책장은 비디오 에디터인 이스라엘의 아카이브로 빼곡했다. 주방 테이블 위 마른 과일들까지 모든 것이 연출된 듯 아름다운 공간이었다. 


빛이 잘 드는 부엌


이곳의 호스트인 무용수 마팔다와 비디오 에디터 이스라엘은 힙하지만 소탈한 부부로, 부엌에서 마주치면 빵 한 조각이라도 나누어주며 갈 곳 먹을 곳을 열심히 추천해주는 좋은 가이드이기도 하다. 찬장에 쌓아둔 갖가지 향신료로 늘 좋은 냄새를 풍기는 저녁을 만들고, 수수하지만 아름다운 커트러리로 식사를 하는 것을 보면 생판 남인 나조차 저렇게 단정하게 살아야겠다 마음 먹게 만드는 고요한 에너지를 가졌다. 



에어비앤비의 묘미 중 하나는 호스트의 라이프스타일로부터 영감을 얻을 수 있다는 것. 이스라엘의 작업실 문틈으로 흘러나오는 음악부터 책장 가득한 필름 관련 서적, 부엌 한 켠에 덩그러니 놓인 먹다 만 치즈까지 몇 십 년을 예술가로 살아왔을 이들의 내공을 마음껏 엿보는 중이다. 




우리 셋은 모두 이 집이 우리와 운명이라는 것을 단번에 눈치챘다. 한국에서 가져온 행운의 대부분이 이곳을 찾아내는데 쓰였어도 괜찮다. 포르투라는 오래되고 사랑스러운 도시를 마팔다와 이스라엘이라는 잘 다져진 예술가들의 눈을 통해 읽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만으로 감사하다. 이 집을 둥지 삼아 포르투를 유랑하는 앞으로의 여정도 운명이 우리를 좋은 곳으로 데려다 줄 것이라 믿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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