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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인 Jun 18. 2019

디지털 노마드를 위한 리스본 여행 꿀팁

포르투갈 국립도서관에서의 하루

포르투갈에서의 한 달은 출장과 자유여행 사이 어디쯤이었다. 유명한 음식을 먹어보거나 전망이 기가 막히다는 관광 명소를 방문하며 보낸 날들도 많았지만 하루 종일 나는 스케치북을, P와 H는 노트북을 붙들고 숙소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않은 날들도 수두룩했다. 


포르투 숙소는 좁아도 소파와 좌식 테이블이 있는, 침실과 분리된 공간이 있어 '재택근무'가 가능했다. 그런데 리스본에서는...


"라운지 어딨지? 설마 없는 건가?"

생각지도 못했다. 라운지 없는 호스텔이 있을 줄이야, 그리고 그것이 우리의 리스본 숙소일 줄이야. 


우리가 일주일 간 머문 'Ambiente Hostel'은 침실과 욕실, 그리고 작은 부엌이 전부였다. 저렴한 가격대에 위생 상태도 나쁘지 않은 곳이었지만 작업 공간이 전혀 없어 당황했다. 


당장 떠오른 대안은 넓고 한적한 카페를 찾는 것. 그러나 포르투갈의 카페 문화는 우리나라와 다르다. 카페는 정말 먹고 마시는 곳일 뿐, 책을 읽거나 노트북을 펴놓고 일하는 사람은 찾기 어렵다. 혹여 있더라도 30분 이상 앉아 있는 법이 없다. 그나마 스타벅스에는 시험공부하는 대학생들이나 업무 미팅하는 회사원들이 있지만, 애석하게도 숙소에서 거리가 멀었다. 게다가 스타벅스에서도 1시간 이상 작업하는 건 양심상 무리였다. 


고민 끝에 찾은 곳은 포르투갈 국립도서관(Biblioteca Nacional de Portugal)이다. 학창 시절엔 동네 도서관을, 대학생 때는 학교 도서관을 드나들며 공부를 한 게 생각나서 '리스본도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아주 단순한 이유로. 결론부터 말하자면 '유레카!'였다. 

 



포르투갈 국립도서관



포르투갈 국립도서관은 넓은 잔디밭을 앞에 둔 직육면체 건물이다. 



일단 정문으로 들어오긴 했는데 열람실이 있는지, 있다면 어떻게 이용할 수 있는지, 또 유료인지 무료인지 등을 누구에게 어떻게 물어봐야 할지 막막했다. 읽지 못하는 포르투갈어 안내문을 따라 로비에서 황망하게 돌아다니는데 관리인으로 보이는 남자분이 다가왔다. 


"First time?"

반팔 셔츠를 바지에 단정하게 넣어 입은 그는 서툰 영어로 첫 방문이냐 물었다. 숱이 적은 머리카락을 한쪽으로 넘긴 그는 아주 선한 인상의 중년 남성이었다. 그렇다고 답하니 이리오라는 손짓을 하며 앞장섰다. 안내한 곳은 락커룸이었다. 


"Put in, here."

가방은 락커룸에 두고 도서관에 가지고 들어갈 것만 커다란 비닐봉지에 넣으면 된다. 비닐봉지를 들고 나오는 나와 H에게 관리인은 한 곳을 가리키며 'that way'만 반복해 말했다. 그의 친절함에 감사하며 그 방향으로 직진했다. 


"열람실 어딨는지 안 여쭤봤잖아."

"영어로 열람실이 뭔지 몰라..."



'레퍼런스 룸(Reference Room)'에 들어왔다. 중앙 데스크에는 두 명의 직원이 앉아 있고 주위엔 일반인들이 노트북을 사용 중이었다. 


"Can I use my laptop here? (=여기서 노트북을 사용해도 될까요?)"

단발머리에 반무테 안경을 쓴 여자 직원은 내가 말을 붙이자마자 상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 사용하는 건 무료고, '다른 방(알고 보니 열람실이었다)'에서는 유료라는 말도 덧붙였다. 이 방의 남은 자리에는 콘센트가 없었다. 


"How can I pay for the other room? (=다른 방을 이용하려면 어떻게 지불하면 되나요?)"

"You can sign up for a membership. (=멤버십에 등록하면 돼요.)"


직원은 한 장의 서류를 건네며 일주일에 3유로라는 말을 덧붙였다. 이름, 주소, 연락처 등 개인정보를 기입하면 된다. 외국인은 추가로 국적과 여권번호까지 써야 한다. 



서류 작성을 완료하면 그 자리에서 직원이 멤버십 카드를 만들어준다. 레퍼런스 룸의 컴퓨터에서 카드에 적힌 멤버십 번호를 입력하면 열람실 자리를 지정할 수 있다. 한 번 지정한 자리는 하루 종일 이용할 수 있다. 



열람실은 100명 이상 수용 가능한 넓은 공간이다. 천장은 높고 채광은 좋아 답답한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자리마다 바닥에 콘센트가 있고 의자도 푹신해 장시간 작업하기에 딱이다. 무엇보다 독서나 문서 작업 등 각자의 업무에 열중하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있으니 나도 집중력이 덩달아 높아지는 기분이었다. 


한화로 4000원도 안 되는 돈으로 일주일 동안 이런 혜택을 누릴 수 있다니, 리스본 여행을 계획하는 디지털 노마드가 있다면 꼭 추천하고 싶은 곳이다. 단점이 있다면 와이파이가 느리고 한두 시간에 한 번씩 비행기 지나가는 소리가 들린다는 것인데 이쯤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사정 상 3일밖에 도서관을 방문하지 못했지만 조금의 후회도 없다. 오히려 '3유로를 가장 알차게 쓰는 방법'으로 널리 알리고 싶은 마음이다. 






*포르투갈 국립도서관 열람실 이용법

1. 정문으로 들어오자마자 락커룸에 짐을 맡긴다. (디파짓 : 1유로)

2. 필요한 물품을 비닐봉지에 넣어 안으로 들어간다. 

3. 레퍼런스 룸에서 직원에게 멤버십 가입을 문의한다. 

4. 서류를 작성하고 멤버십 카드를 발급받는다. (일주일권 : 3유로)

5. 레퍼런스 룸 컴퓨터로 열람실 자리를 지정한다.

6. 마음껏 이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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