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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인 Jul 04. 2019

장기여행자의 포르투

여행에도 일상이 필요할 때

지난번 포르투에 가야 하는 이유를 발행한 뒤 잠시 생각했다. 글에 쓴 장점들은 포르투를 처음 방문하는 지인들에게는 '이래서 가야해!'하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들이지만, 나에게는 해당되지 않았다. 나의 여행에서 가장 편안하고 즐거웠던 순간들은 저 지점에 있지 않다.


내게 이번 포르투 방문은 두 번째였고, 기간은 한 달이나 되었다. 풍경이 아름답고, 물가가 저렴하고, 치안이 좋다는 식의 장점들은 오래 지내다 보면 공기처럼 익숙해져 나중에는 의식적으로 감각하지 않는 이상 무뎌지는 것들이다. 첫 날에는 너무 아름답다며 한참을 사진 촬영에 골몰했던 장소도 몇 번 마주하다 보니 눈길도 주지 않고 지나칠 수 있는 곳이 되었다.


포르투라는 도시에 잔뜩 익숙해진 상태에서 좋아했던 장소들을 몇 군데 꼽아보았다. 정말 별 거 없어 보일 수 있겠지만 내 입장에서는 다음에 또 오게 된다면 반드시 재방문할 의사가 있는 곳들이다. 글쓴이의 세 가지 특성을 먼저 주지하면 다음 장소들을 본인도 좋아하게 될지 판단하는데 도움이 될 수도 있다.


1. 사람 많은 곳에서 곤란해 한다

: 아무리 핫플레이스라도 좁고 붐비는 곳에는 발을 들이기 어렵다.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는 곳이라도 충분한 개인 공간을 확보할 수 있는 장소가 마음에 든다.


2. 여행에도 일상이 있다

: 반드시 매일 다른 장소에 갈 필요는 없다. 장기여행인 만큼 마음에 드는 장소가 있다면 내일도, 내일 모레도 간다. 나름의 최애 루트를 만들어 반복해서 방문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3. 아무 것도 안 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 사나흘에 하루는 아무 일정 없이 흘러가는 시간이 있어야 한다. 무엇을 반드시 해야 한다거나 어디에 가야 한다는 강박 없이 인적 드문 동네를 유령처럼 떠돌다 공원에 앉아 생각에 잠기는 날이 있어야 몸과 정신이 완전히 회복된다.


위 세가지 특성을 기반으로 내가 좋아했던 장소 세 군데를 공개한다. 포르투는 매우 작은 도시라 도보 30분~1시간 이내로 대부분의 관광지를 둘러볼 수 있지만, 다음 장소들은 다소 외곽이라 웬만하면 메트로나 우버를 탈 것을 추천한다. 앞 두 장소는 네덜란드 건축가 렘 쿨하스가 디자인한 것으로 유명한 건물 '까사 다 뮤지카(Casa da Musica)'와 가까우니 해당 건물을 관광할 때 함께 들러도 좋다.




▲ Mercado Bom Sucesso


포르투 전역의 맛집들을 푸드코트 형식으로 모아둔 곳이다. 처음 건물이 만들어진 1949년에는 시장을 목적으로 건축되었지만, 재래시장의 필요성이 감소함에 따라 2011년 현재의 푸드코트형 목적으로 리모델링 됐다. 리스본의 타임아웃 마켓과 비슷한 컨셉이다.



사람들이 주로 찾는 매장은 새끼돼지구이가 들어간 버거를 파는 O Forno do Leitao do Ze다. 촉촉한 버거를 감자칩과 맥주를 곁들여 와구와구 해치우면 든든한 한 끼가 된다. 이외에도 포르투의 100년 된 에끌레어 맛집 Leitaria da Quinta Do Paço와 제주이따(Jesuita,누네띠네 비슷한 포르투 전통 빵)로 유명한 Pastelaria e Confeitaria Moura 등이 입점해 있다.



포르투 곳곳에 흩어져 있는 유명 로컬 맛집을 한 번에 만나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지만, 스시나 파스타, 각종 샐러드 등 다양한 국적의 음식들도 합리적인 가격으로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이곳에 서너번 정도 들러 끼니를 해결했는데, 간단한 파스타를 6.5유로에 파는 이탈리안 코너에서 먹었던 카프레제 뇨끼가 무척 맛이 좋았다.


구글맵에서 발견한 재미있는 리뷰


리뷰에서 알 수 있듯 대단한 미식을 위해 일부러 방문하기보다 근처를 둘러볼 일이 있을 때 들러야 아쉬움이 없을 것이다.




▲ Starbucks Peninsula Boutique Center


Mercado Bom Sucesso의 맞은 편에 있는 페닌슐라 부티크 센터의 1층에 있는 스타벅스다. 포르투에는 스타벅스가 세 군데 있는데, 그중 가장 규모가 큰 곳이라 할 수 있다. 쇼핑몰 안쪽에도, 바깥 테라스에도 자리도 있다.


페닌슐라 부티크 센터 자체가 사람이 많지 않은 곳이기 때문에 스타벅스 또한 붐비지 않는게 가장 큰 장점이다. 공부하는 대학생들이 주로 찾아 차분하고 콘센트 자리도 많아 책을 읽거나 랩탑으로 작업할 것이 있을 때 시간을 보내기 안성맞춤이다. 작업하다 배고프면 맞은편 푸드코트에서 밥 먹고 다시 돌아오기도 했다.



포르투 스타벅스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그란데 사이즈가 2.45유로에 불과한데다 음료 50% 쿠폰을 자주 나눠주기 때문에 하루에 두세잔을 사 마셔도 커피값이 그다지 부담스럽지 않았다. 6월에 방문했을 때는 한국어를 공부하는 파트너가 있어 (시행착오 끝에)컵에 이름을 한글로 적어주기도 했다.




▲ Museo Serralves


포르투갈을 대표하는 건축가 알바로 시자의 디자인으로 유명한 세할베스 미술관. 이곳 역시 포르투 도심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한적한 곳이다. 전시 관람은 물론 아름다운 세할베스 정원을 거닐고 미술관 내부 카페테리아에서 런치 뷔페를 먹으며 한나절을 보낼 수 있다.



내가 갔던 때에는 마침 조아나 바스콘셀로스(Joana Vasconcelos)의 전시가 한창이었다. 그는 포르투갈 전통 아줄레주나 심장 문양(Coração de Viana)을 작품에 활용하며 포르투갈을 대표하는 아티스트로 자리 잡은 작가인데, 안 그래도 전에 시내에서 그의 벽화를 지나친 적이 있던 터라 관심이 갔다.



(그의 벽화는 놀랍게도 렐루서점 근처 수제버거 가게에 있다. 2017년 이곳 steak'n shake가 오픈했을 때 함께 콜라보했다고. 실제로 보면 8000장의 타일을 이어붙여 만든 매우 거대한 작품이다. 쉽게 지나칠 수 있는 길거리 버거집의 벽에도 즐거운 이야깃거리가 참 많은 도시다.)



알바로 시자 특유의 차분하고 건조한 분위기를 풍기는 미술관 안에서 조아나 바스콘셀로스의 대담하고 컬러풀한 전시를 감상하는 것은 무척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사람이 워낙 적어 전시장 안에 나와 직원뿐인 상황이 계속해서 연출되었는데, 직원들도 무료했는지 작품을 더 잘 볼 수 있는 위치나 비디오 작품의 시작 시간 등을 상냥하게 알려주어 가이드를 대동한 것 같이 알찬 관람을 할 수 있었다. 도심에서 조금 벗어나 아름다운 정원과 건물을 둘러보며 머리를 식히고 싶을 때 들르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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