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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인 Jul 25. 2019

리스본이 싫어요

포르투 후유증 극복기

포르투 살이를 끝냈다. 한국에 가려면 리스본에 가야 했다. 귀국 일정이 리스본에서 파리를 거쳐 인천으로 가는 루트였기 때문이다. 이왕 리스본에 들러야 한다면 조금 머물다 가자고, 우리는 덜컥 리스본에 일주일치 숙소를 예약해버렸다.




리스본에 도착하고 이틀을 앓았다. 새 도시에 적응하기에는 포르투가 너무 각별해진 상태였다. 이제는 눈 감고도 찾을 수 있는 우리들의 집과 주인과 안부인사를 나눌 정도로 드나든 카페, 와이너리 위치까지 외워버린 도루강을 뒤로 하고 떠났으니까.


보통 유럽여행을 하는 사람들의 포르투갈 여행 루트는 리스본->포르투인 경우가 많다. 리스본이 수도이다 보니 진입하기 쉽기 때문이다. 리스본에서 포르투갈이라는 나라에 대해 대충 감을 잡고, 포르투에서 이곳에 영영 사랑에 빠져버리는 경우를 자주 보았다.


그런데 포르투>리스본 순으로 여행하게 된다면? 나처럼 호된 향수병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 향수병을 넘어 리스본이라는 도시에 도저히 정이 안 붙고 급기야 진절머리 나는 지경에 이를 수 있다.


이유야 많겠지만, 우선 포르투는 우연한 여행의 기쁨을 맛보기 좋은 아기자기한 도시다. 작고 다정한 곳이라 하루 종일 계획 없이 산책하고 도루강 한 켠에 앉아만 있어도 충만해지기 쉽다. 리스본에서는 좀 걸으려면 두 블록마다 공사 소음이 진동했고, 목적 없이 방랑하면 음산한 골목에 당도했다. 게다가 머무르는 내내 온화했던 포르투와는 달리 리스본에는 6월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찬바람이 몰아쳤다.


‘그래서 어쩌라고…. 리스본 가지 말라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약간의 적응기를 거치고서야 리스본을 좋아하게 됐다. 정 붙이기 어려웠던 까닭들이 있지만, 샛길로 새면서 그것들을 극복할 수 있었다. 막 리스본에 도착해서 도무지 이 도시의 무엇을 사랑해야 할 지 모르겠거나, 곧 리스본에 갈 예정인데 나와 맞는 도시일지 고민 중인 여행자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며 내가 심신의 안정을 얻었던 장소들을 공유한다. 




       벨렝지구


리스본이 붐벼봤자 파리나 로마, 런던 같은 관광도시에 비할 수 있겠느냐만은 포르투에서 온 관광객들에게 리스본은 상대적으로 혼잡하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너무 여러 번 말해서 괜히 민망해지지만 나는 사람 많은 곳에서 쉽게 패닉하는 편이라 인기 관광지에 발을 잘 못 들여 리스본이 더더욱 어려웠다.



특히 리스본에 가면 반드시 방문하는 코스 중 하나인 제로니무스 수도원과 원조 에그타르트 집(Pastéis de Belém), 벨렝탑 등이 있는 '벨렝 지구'로 향할 때 그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다. 벨렝 지구행 대중교통마다 사람이 꽉꽉 들이차 있어 트램을 몇 번이나 그냥 보냈다. 수도원 앞은 타들어가는 볕에도 바글바글한 줄이 한눈에 훑기 어려울 정도로 길게 늘어서 있었다.



Tip1. ‘그’ 에그타르트를 반드시 가게 안에서 먹을 필요는 없다


제로니무스 수도원 옆, 에그타르트 레시피의 원조 Pastéis de Belém에는 언제나 그 유명한 원조의 맛을 보기 위해 유럽 전역에서 몰려온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사실 내부가 워낙 넓기도 하거니와 회전율이 빠른 편이라 기다리는 시간이 길지는 않지만, 어쨌든 사람 많고 테이블 작고 정신 없는 장소에서 디저트를 즐기고 싶지 않다면 테이크아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포장지에 함께 끼워져 있는 것은 설탕과 시나몬 파우더예요


테이크아웃을 해서 어디서 먹냐고? 근처에 벨렝 정원(Jardim de Belem)이 있다. 풀밭에 앉거나 누워 잔디에 뒹구는 강아지들의 모습과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배경으로 에그타르트를 베어 불면 천국이 따로 없다. 하지만 역사가 숨쉬는 가게 안에서 분위기를 즐기며 커피 한 잔과 에그타르트를 곁들여 먹는 것도 특별한 경험이니, 취향에 따라 장소를 선택하는 것이 좋겠다.


Tip2. 인파에 지친 몸과 마음에 휴식이 필요하다면



제로니무스 수도원 맞은 편에는 쉽사리 지나칠 수 없는 무척 아름다운 건물이 하나 있다. 바로 리스본의 컨템포러리 아트 뮤지엄인 Museu Coleção Berardo다. 현대 미술을 좋아하고 파리의 퐁피두 센터, 런던의 테이트 모던이 좋은 기억으로 남았던 여행자라면 들러봄직 하다.



미술에 별 관심이 없더라도 피카소, 바스키아, 폴락, 워홀까지 이름만 들으면 알 법한 작가들의 컬렉션이 상설 전시되어 있기에 흥미롭게 둘러볼 수 있다. 굳이 작품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도 공간 자체가 주는 쾌적함이 있어 사람과 땡볕에 지친 몸과 마음을 차게 가라앉힌다. 무료입장인 토요일에 방문했는데도 방문객이 거의 없었다.



*입장료 5유로 (토요일 무료)




여행기를 하나 하나 써나갈 때마다 늘 '너무 주관적이라 아무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다' '나랑 같은 성향이 아니면 완전히 쓸데 없겠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하지만 꿋꿋하게 글을 이어 나가는 이유는 어차피 웬만한 건 다 인터넷에 있으니 나는 나에게 중요했고 필요했던 이야기들을 하고 싶어서다. 앞으로도 이런 이야기만 자꾸 쓰게 될 것 같다. 


'리스본이 싫어요'는 시리즈로 이어갑니다! 다음에는 리스본에서 만난 사람들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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