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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인 Nov 17. 2023

시카고 한달살기 얼렁뚱땅 준비하기

2023년 9월 28일

2023년 10월은 통째로 해외에서 보내게 되었다. 

목적지는 미국 시카고다. 


여행지를 고르는 데엔 고민이 필요 없었다. 인생의 반을 알았고, 2년 반을 논현동 투룸에서 동고동락한 친구를 만나러 가는 게 여행의 명분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다른 명분은 뭐, 굳이 생각하자면 봄엔 영국을, 여름엔 태국을 다녀왔으니 가을은 반대쪽으로 눈을 돌려보자는 거였다. 


추석 연휴에 개인 휴가 4일을 썼더니 약 2주 정도의 자유 시간이 생겼다. 나머지 2주는 일을 해야 한다. 친구 집과 같은 건물에 있는 공유 오피스, 혹은 카페들에서 일할 생각이다. 반은 여행자로, 반은 직장인으로 시카고에 머무는 셈이다. 


_

디지털 노마드라고 스스로를 여기저기에 소개하지만, 사실은 '반(半) 디지털 노마드'다. 


<디지털 노마드를 꿈꾸는 당신이 알아야 하는 모든 것>(지은이: 이도해)에 따르면, 

디지털 노마드는 통신 기술(인터넷, 원격 기술 등) 및 PC, 랩탑, 스마트 기기 등을 이용하여 시간이나 위치에 구애받지 않고 업무를 수행하는 사람을 의미하는 단어다. 즉, 디지털 노마드는 어떤 형태로든 돈을 벌 수 있는 직장은 있으나 출퇴근은 없는, 유목적인 방식의 삶을 사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나는 일하는 시간이나 공간에 딱히 제약은 없지만, 월급쟁이 회사원이기에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다. 슬프지만 경제적으로는 특히 아니다. (ㅠㅠ)


그래서 아무 때나 훌쩍 떠날 순 없다. 까닥하면 앉은자리에서 한 달 월급을 날릴 수 있다. 장기 여행은 일 년에 최대 두 번이라고 스스로와 약속했다. 


상반기엔 출장 겸 여행으로 유럽에 3주 정도 머물렀으니, 꾹 참고 하반기까지 기다렸다. 중간에 짧게 방콕을 다녀오긴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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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멀다고만 생각했던 여행 일정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내일이면 시카고행 비행기에 오른다. 무얼 봐야지, 무얼 해야지, 무얼 먹어야지 라는 생각은 머릿속에만 둥둥 떠다닌다. 


구체적인 일정은 거의 세우지 않았다. 도시는 물론 숙소 이동도 하지 않을 거라, 여행지에서의 일정은 가서 생각하고 싶다. 휴가 전에 회사 일 마무리하느라 에너지를 다 쓴 탓이다. 


그래서, 미리 하지 않으면 큰일 나는 것만 미리 했다. 시카고 여행 준비물은 곧 미국 여행 준비물이기에, 이렇게만 준비했다. 

- 항공 (+오토체크인 신청)

- ESTA

- 트래블월렛과 트래블로그 충전 (카드결제용)

- 환전 신청 (현금결제용)

- e-sim 구매 (QR코드로 개통할 수 있어 일반 유심보다 확실히 편함)

- 필요 서류 인쇄: 여권/신분증 사본, 항공권, 승인된 ESTA 등

* 숙소는 한 달 내내 친구 집에 머물 예정


여기에 자리를 비우는 회사원답게 아래 세 가지도 해놨다. 

- 인수인계서 작성

- 부재중 자동회신 메일 설정

- Temporary Work Location Request 제출 (근로계약서에 명시된 나라가 아닌 곳에서 일할 때 제출해야 하는 서류)


또, 친구에게 가져다 줄 물품들도 챙겼다. 

- 어머님을 뵙고 깻잎무침과 고춧가루를 받았다. (저만 믿으세요)

- 올리브영에서 화장품을 잔뜩 샀다. (코덕 기다려)

- 친구가 인스타그램에서 봤다는 명란 김도 샀다. 

- 친구가 우리 집으로 배송시킨 버킷햇도 옷가방에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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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행은 기록을 최대한 많이 남길 생각이다. 글로도, 그림으로도, 어쩌면 영상으로도. 


미국은 2017년에 2주간 다녀온 뉴욕 이후로 처음이다. 설레는 것 같기도, 아무렇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휴가 기간은 걱정이 안 되는데, 근무일에 차질 없이 업무를 진행할 수 있을지가 조금 걱정이다. 안 되면 되게 하라...


김영하 작가는 시칠리아 여행 에세이, <오래 준비해 온 대답>에서 이렇게 말했다. 

늙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세상과 인생에 대해 더 이상 호기심을 느끼지 않게 되는 과정이다. 호기심은 한편 피곤한 감정이다. 우리는 어딘가로 움직이게 하고 무엇이든 질문하게 하고 이미 알려진 것들을 의심하게 만드니까. 


회사에도 집에서 일하고 놀고 공부하는 라이프스타일에도 적응한 지 오래다. 이러한 일상이 기분 좋은 날에는 평온함으로, 그렇지 않은 날엔 지루함으로 느껴졌다. 나는 어쩌면 나이 들어가고 있었던지도 모른다. 


호기심을 재충전해서 회춘하련다. 내가 아는 한, 여행은 호기심의 가장 좋은 연료다. 


이번 시카고 한달살기가 나에게 호기심을, 풍부한 감성을, 그리고 시야의 확장을 가져다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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