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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인 Nov 22. 2023

아이폰15 핑크와 펌킨 크림 콜드브루

2023년 9월 30일

아이폰15 홍보 영상을 보고 결심했다.

되도록 빨리 핑크를 손에 넣으리.


아이폰15 시리즈의 한국 출시일은 10월 13일인데, 나는 10월 내내 한국에 없다. 하지만 미국은 9월 22일에 이미 출시했고, 그럼 답은 나왔지.


온라인 애플 스토어에서 재고가 뜨는 걸 주기적으로 확인하다, 친구집에서 가까운 지점이 ‘픽업 가능’으로 뜨길래 바로 주문했다. 선택한 옵션은 ‘아이폰15 핑크/256GB/자급제/애플케어플러스 선택 안 함’이었다. 여기까진 한국과 다른 점이 없었다. 그런데 가격 책정 방식이 달랐다.


아이폰15 256GB는 899달러부터 시작하는데, 자급제를 선택하면 30달러가 더해진다(?). 여기에 일반 택스 58.06달러에 세일즈 택스 46.45달러가 또 붙는다(??). 결국 최종 금액은 1033.51달러인데, 한화로는 140만원이니 한국과 똑같다. 나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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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일 픽업이 가능한 지점은 ‘Apple Old Orchard’라는, 아웃렛 같은 쇼핑센터 한가운데에 있는 매장이었다. 엄청 두근거리며 방문했는데, 매장은 평범했다. 들리는 언어가 다르다는 것 외엔 가끔 가는 가로수길점과 인테리어 디자인도 비슷했다. 아주 북적이지도, 직원들이 특별히 친절하지도 않았다.


Apple Old Orchard의 외관과 내부


픽업존은 매장 안쪽에 있었다. 직원분에게 눈짓을 하니 응대하러 다가왔다. 이메일로 받은 주문확인서를 보여드리니 곧 물건이 왔다.


우버를 타고 와 집에서 포장을 뜯었다. 상자 하나에 휴대폰과 C to C 케이블이 전부였다. 무광 딸기우유색의 뒤판이 신기해 한참을 구경했다. 한국에서 미리 사온 투명 케이스도 끼고, 액정 필름도 붙였다. 친구와 외출해 새 휴대폰으로 풍경과 사람을 이리저리 사진에 담았다.


아이폰15 개시한 날 더 레이크필에서 찍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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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분이 가라앉으니 문득 애플 스토어에서의 경험이 떠올랐다. ‘미국에서 아이폰 사기’는 나의 막연한 미국여행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다. 막상 달성하고 나니 감흥이 덜했다. 물론 새 휴대폰을 손에 넣으니 신나고 만족스러웠다. 근데 카메라에서 소리가 안 난다는 걸(나에겐 별로 안 중요함) 빼곤 한국에서의 구매 경험과 크게 다르지 않아 살짝 김샜다. 아, 다른 게 또 있네. 기본 가격에서 세금이 두 번 붙는다는 것.


여행자에서 본업인 마케터로 모드를 살짝 바꿔보자면, 매장에서의 고객 경험이 특별하지 않았다는 거다. 뉴욕에 있는 ‘Apple Fifth Avenue’나 밀라노에 있는 ’Apple Piazza Liberty’처럼 외관이나 건물 자체가 화려한 매장들을 제외하곤 애플 스토어에서의 제품 구매 과정은 어디에서나 비슷하다. 애플답게 직관적이고, 깔끔하다.


외관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Apple Fifth Avenue(왼), Apple Piazza Liberty(오른), 출처: Apple


사실 애플의 매장 운영 전략은 ’프로그램 제공‘이 핵심이다. 많은 충성 고객을 보유한 애플은 커뮤니티로 그들을 관리한다. 오프라인으로 애플 기기를 활용해 배울 수 있는 영상, 코딩, 디자인 등 다양한 영역의 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게 그 관리의 연장선이다.


애플의 안젤라 부사장은 한 인터뷰에서 “모든 애플 스토어의 중심에는 우리가 속한 지역 사회 일원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고 영감을 불어넣어 주고자 하는 열망이 있다”라고 말했다. 즉, 각국의 애플 매장들은 그 ’지역 사회‘ 구성원들과 관계를 쌓아가는 게 목표인 거다. 나처럼 스쳐 지나가는 여행자는 주요 타깃이 아니다.


찾아보니 시카고의 다른 매장에선 여러 가지 ‘데일리 세션’을 운영하고 있다. 주변을 돌아다니며 아이폰이나 아이패드로 건물을 잘 찍고, 원하는 분위기에 맞게 보정하는 ‘Photo Tour’도 있고, 아이폰 시네마틱 모드로 짧은 영상을 제작하는 ’Video Tour’도 있다. 여행자가 참여하기엔 평이한 주제의 세션들이지만, 주민이라면 애플 스토어 들르는 김에 한 번쯤 참여해 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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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 여행한 지 이틀밖에 안 되었는데 급히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 동네 스타벅스를 두 번이나 왔다. 타지에서 보면 가장 반가운 로고가 스타벅스다. 초록색 인어 아이콘이 주는 익숙함은 여행자의 낯섦을 완화해 준다.

이곳의 스타벅스는 9월 말부터 할로윈을 기념하는 분위기다. 가을 한정으로는 펌킨 크림 콜드브루, 펌킨 크림 차이티 라떼 등 호박을 내세운 메뉴들을 프로모션 중이다. 심지어 매장 한가운데에 커다란 (진짜) 호박이 덩그러니 놓여 있기도 하다. 같은 시기에 스타벅스 코리아에선 호박 대신 밤으로 만든 메뉴를 선보였다. 스타벅스 재팬은 호박 푸딩을 넣은 검은색 프라푸치노를 할로윈 기념 음료로 내세웠다.


미국 스타벅스의 펌킨 크림 콜드브루
한국 스타벅스의 마롱 헤이즐넛 라떼(왼), 일본 스타벅스의 버터카라멜 앤 펌킨 푸딩 프라푸치노(오른)


메뉴뿐만 아니라 나라, 혹은 도시마다 굿즈도 다르다. 여행 기념품으로 시티컵을 모으는 사람도 흔하다. 이곳에도 시카고와 시카고가 속한 일리노이주의 일러스트가 그려진 머그와 텀블러가 있다. 음료부터 굿즈까지 스타벅스는 여행 중에 몇 번씩이나 들러도 매번 새롭다. 일상에서의 스타벅스는 편안함과 익숙함의 공간이다. 반면 여행에서의 스타벅스는 편안함과 새로움이 반반 정도로 섞인 곳이다.


물론 애플 스토어와 스타벅스를 같은 선상에서 비교할 순 없다. 상품의 관여도나 가격대도, 매장 운영 방향도 아예 다르기 때문이다. 그저 전 세계가 무대인, 미국 태생의 두 글로벌 브랜드를 현지 매장에서 경험해 볼 수 있다는 게 흥미로웠다.


아무튼, 펌킨 크림 콜드브루는 기대보다 더 맛있었다. 바닐라 크림 콜드브루와 비슷한데, 연한 주황색 크림에선 달달한 호박 맛이 나서 신기했다. 이틀 연속으로 스타벅스를 들렀는데, 파트너 두 분 다 ‘Jane’이라 이름을 써줬다. 원래의 철자는 ‘Jaein’인데 영어 발음은 거기서 거기이니 아무렴 좋다. 해외 스타벅스에선 주문 시 이름을 물어보고 컵에 매직으로 써주는데, 각양각색의 손글씨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여행하는 동안 다섯 번은 마신 펌킨 크림 콜드브루


그래서 주문을 기다리는 줄이 길어도 사이렌 오더 대신 파트너와 대면하기 위해 줄의 맨 마지막에 기꺼이 합류한다. 난 별로 급할 게 없는 장기 여행자니까. 펌킨 크림 콜드브루를 주문하고, 이름을 말하고, 지갑에서 카드를 꺼냈다. 파트너의 눈이 다람쥐 패치가 달린 여행용 천 지갑으로 향했다.


어머, 그 지갑 너무 귀엽다. 고마워, 여행 핑계로 샀어. 어디서 왔는데? 한국에서. 멋지다! 고마워. Have a good one!


Have a good ‘one’? 처음엔 ‘day’를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친구에게 물어보니 이곳에선 ’Have a good one‘을 끝인사로 자주 사용한단다. 그 후에도 하루에 몇 번씩이나 이 문장을 들었고, 마치 주문처럼 매번 기분이 좋아지고 진짜 좋은 하루를 보냈다.


이 글을 읽는 분들도, Have a good 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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